장영수 목사 설교집

111030 조선의 바울 ( 행 16:22~34)[한국인 최초의 목사 김창식(머슴 출신)]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0. 15. 19:26

 

111030 조선의 바울 ( 16:22~34)

성경본문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지진이 나서 옥토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사람과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가족이 세례를 받은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그와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얼마 전에 어떤 죽음에 관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30 A씨는 부산 광안리에서 술을 마셨는데 많이 마셨어요.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벌써 새벽 2, 만취상태가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해운대에서 내렸습니다. 길을 건너다가 그만 대로변에 누워버렸어요. 그런데 공교롭게 잠깐 후에 승용차가 그를 덮칩니다. 승용차도 술을 마신 사람이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출발하고 방향을 틀면서 A씨를 덮친 거죠. 대리운전 기사가 차가 하니까 사고가 났나 보다놀래서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니까 아무 것도 안보여요. ‘아무것도 없네하고는 다시 차를 몰고 갔습니다. 그만 그때 A씨의 허리띠가 앞부분 견인고리에 거예요. 차바닥에 걸린 그냥 가는 거예요. 그제야 정신이 들어 몸부림을 치지만 차소리에 들릴 리가 없죠. 피가 나도록 몸부림을 치며 차바닥을 긁지만 소용이 없었죠. 휴대폰이 떨어지고 구두 짝이 벗겨지고, 차는 멈추어서 사람들을 내려 주고 대리운전 기사도 보내고 마지막에 승용차 주인이 약간 취한 상태로 자기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시키고 내려보니 사람이 있는 거예요. 놀래가지고 119 부른 겁니다. 급히 응급실로 옮겼습니다만 결국 죽고 말았어요. 

저는 처음에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미련할 수가 있는가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TV에서 친구를 잘못 만나서 부도를 당했다가 재기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사기를 당해서 재산을 날리고 사업이 망한 것에 너무 괴로워서 날마다 술을 먹고 길바닥에 누웠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똑같이 길바닥에 누워도 그대로 죽는 경우도 있고 재기하는 경우도 있구나. 저렇게 있구나. 나도 살면서 괴롭고 힘들다고 길바닥에 누웠는데 하나님이 은총으로 붙들어 주셔서 오늘을 사는 뿐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인생이 괴로워서 머리끝까지 술을 마시고 집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고 길바닥에 드러누웠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품는 곳이죠. 남을 비난하려 했습니다만 알고 보니 그게 나의 모습이었다는 것이죠.

 오늘 여기 빌립보 교회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 사도행전 16장을 1절부터 천천히 읽어보면 교회 하나가 서는 데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어요. 사도 바울이 디모데, 의사 누가와 함께 팀을 이루어서 소아시아, 터키지방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데 성령이 막았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하는데 성령이 막으실까? 없어요. 그래서 기도해요.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걸음을 인도하셔서 유럽이 바라다보이는 터키의 드로아, 우리가 흔히 트로이 목마 알고 있는 바로 곳에 왔을 때에 바다 건너 유럽에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라고 부르짖는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봐요. 영어로는 Vision이라고 그랬어요.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유럽으로 부르시는 구나하고 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요.

하나님 손길에 이끌려 곳이 마게도니아의 빌립보였어요. 빌립보에 며칠간 머물면서 빌립보가 어떤 곳인가 살펴보게 되요. 안식일에 조용한 강가에 나아가서 기도해야 되겠다. 강가에 나갔다가 여인들을 만나게 되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전했더니 가운데 루디아라고 하는 여인이 있는데 그는 의류를 판매하는 사람이에요. 멀리 터키에서 그리스 빌립보까지 와서 장사를 하는 여인이었죠. 성경을 보니 주님께서 여인의 마음을 여셨다고 했어요. 그가 원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곳까지 나와서 장사를 하면서 돈은 벌었지만 하나님 만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순간 주님께서 여인의 마음을 여셨어요. 그래서 예수를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는 말은 율법을 듣고 지킴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다는 말이지요. 이제 새롭게 들은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을 말해요. 이제까지는 내가 열심히 하고 바르게 살고 깨끗하게 삶으로 나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이른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바로 종교에요. 그러나 사도 바울을 통해서 발견한 것은 그렇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는 연약한 인생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늘문을 여시고 아들을 우리 가운데 보내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셨다는 사실이지요. 예수를 믿고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위로부터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생명의 은혜를 발견하게 거예요. 종교와 복음을 정확하게 구별해야 되요. 이걸 모르면 예수를 믿는다면서 엉뚱한 길로 가는 거예요.

이름은 같지만 지역이 다르잖아요.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엄청나게 다른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믿을 때에 그가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삶을 이끄시는 , 이게 예수 믿는 거예요. 열심히 일하고 교회를 섬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갈 나타나는 하나의 외적인 표징이라고 하는 것이죠.

루디아가 말합니다. 우리 집에 오셔서 머무십시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어찌 다른 데로 보내겠습니까. 집으로 모셔서 그들과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대접하는 거예요. 이제는 사도 바울과 함께 다니는 거예요. 귀신들려서 점치는 여종을 만나게 되요.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고 그를 회복시키지 않습니까. 이렇게 드러나게 역사하는 귀신도 있지만 성경대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이건 하나님이 내게 바라시는 일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라고 하는 분명한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로마서 14장에 보면 죄라고 했어요. 이걸까 저걸까 흔들리는 것은 죄라고 했어요. 그러면 그때 사단이 우리를 흔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을 마땅히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는 것을 우리 양심이 알고 있어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사단의 종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사기를 당하는 거예요. 우리 양심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연약함을 사단이 타고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의 일상 속에 순간순간 우리가 어리석어서 사단에게 눌리는 때가 있는 거예요. 속는 때가 있는 거예요. 우리의 영적 재산을 사단이 순간순간 속이면서 빼앗는 일들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귀신 들린 여종을 고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됩니다. 그런데 귀신들린 여종을 통해서 점쳐서 돈을 벌던 주인들이 고소를 해서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감옥에 갇힙니다. 매를 맞게 됩니다. 고통을 당하게 되요. 그런데도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했다고 했어요. 사도 바울이 이렇게 하는 것은 이미 터키에서 선교를 경험한 있어요. 돌을 맞고 죽는 알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도전을 주어 교회를 세우셨던 것이죠. 억울한 일을 당할 , 고난을 당할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세요. 사람의 자연적인 반응으로는 원망하고 불평할 밖에 없죠. 그러나 우리는 그저 육신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눈을 들어 보세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권세가 함께 하는 사람이에요. 눈을 들어 보세요. 시간에 기도하고 찬송할 것이에요. 그랬더니 감옥이 흔들리고 지진이 나고 문이 열리고 사건으로 인해서 간수가 나와서 엎드립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간수와 가족들이 예수를 영접하게 됐어요.

오늘 말씀의 마지막 구절에 보니까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하니라’. 이게 바로 교회의 비밀이에요. 사람들이 빌립보 교회를 이룬 사람들이에요. 사도 바울과 디모데와 누가와 실라라고 하는 선교팀이 기도하면서 들어갔을 때에 비즈니스우먼이었던 루디아를 만나게 되요. 귀신 들려 치며 고통 당하던 여종이 회복되어 예수를 믿게 되요. 포악한 간수가 예수를 믿고 회개하게 되요. 이들과 이들의 가족들이 빌립보 교회를 이루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고난이 열쇠에요. 오늘 여러분의 속에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눈을 떠야 되요. 그런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더불어 사는 것이 고난의 진정한 목적이에요. 자동차 밑바닥에 끌려가서 피를 쏟고 머리가 깨지고 결국 죽을지라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고난이에요. 허망하게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하는 , 이게 교회의 비밀이에요.

빌립보 교회가 이런 사람들로 구성됐어요. 사도 바울 일행은 다른 데로 갔잖아요. 빌립보서를 읽어보면 빌립보 교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가 하는 것을 있어요. 간수가 예수를 믿었고 귀신 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여종이 예수를 믿었지만 이제 그들의 변화는 시작일 뿐이죠. 빌립보 교회는 여러 가지 갈등이 많았어요. 빌립보 교회만이 아니라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교회들이 갈등이 많았어요. ? 연약한 인생들이 하나님을 믿고 은총 가운데 들어온 것이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치시는 병원 안에 들어와 있는 환자들이에요. 병명도 제각각이에요. 고치는 기간도 다르고 증세도 다른 거예요. 다른 거예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을 고치시는 예수님이 의사가 되셔서 우리 사람을 돌보신다는 사실이에요. 병원에서 환자들끼리 너는 바보 같이 다쳤느냐고 비난하지 않아요. ? 처지가 똑같잖아요. 병명과 증세 모든 것이 다를지라도 주님께서 고쳐주시는 은혜를 사모하고 낫는 거죠.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안타까워하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서로에게 소망을 주면서 살아가는 거죠. 여전히 문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고치시는 의사되신 예수님을 함께 바라보고 나아가는 거예요.

이게 성경에 나와 있는 교회의 모습이요, 교회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죠. 원리는 어떤 시대를 만나든지 불변이에요. 120 전에 우리 나라 초기에 선교사들이 들어와 있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목사는 감리교에서 나왔어요. 기록에 의하면 1901년에 김창식이라고 하는 분이 우리 나라 최초의 목사에요. 그분은 황해도 시골출신입니다. 시골에 살다가 21살에 집을 나왔어요.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방랑자로 살아갑니다. 돈이 떨어지면 막노동을 하기도 하고 남의 머슴살이를 하기도 해요. 29살에 결혼을 합니다. 결혼을 하고 마음을 붙들어 매고는 둘이 함께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런데 그때 서울은 어떤 상황이었느냐 하면 언더우드, 아펜셀러 선교사들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 지나지 않은 때에요. 1888 영아소동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 소동이란 말이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선교사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렸어요. 선교사들이 어린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 부모 잃은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서 학교를 시작했어요. 그게 경신학교가 되고 이화학교가 되는 것이지만 그걸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어떤 유언비어를 퍼뜨렸느냐 하면 선교사들이 애들을 데려다가 잡아먹는다고 거예요. 눈을 빼서 잡아 먹는다. 그래서 무식한 사람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서 몽둥이를 들고 와서 학교고 집이고 때려부순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을 영아소동이라고 해요.

김창식이란 분도 분개했습니다. 이럴 수가 있느냐, 이런 나쁜 놈들. 마침 일거리를 찾아야 되는데 누가 제의하기를 새로 올링거라는 감리교 선교사가 왔는데 일할 사람을 찾는다. 그랬더니 내가 그럼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서 애들을 잡아먹는 실상을 알아봐야 되겠다.’ 마당쇠로 집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선교사들이 도대체 무슨 못된 짓을 하는가 지켜보게 됩니다. 드디어 집의 주방장이 되요. 일하다 보니 모든 것이 거짓이고 헛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국 땅까지 와서 나라 백성을 섬기려고 하는 선교사들의 헌신을 보고 회심을 하게 되요. 예수를 믿게 되고 세례를 받게 되요. 

올링거 선교사가 떠나간 다음에 사람이 다른 선교사와 함께 일을 하게 됐는데 제임스 이라고 하는 의사선교사에요. 부인 셔우드 의사에요. 부부가 의사에요. 여러분 나중에 보면 사람에게 외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이 자라나서 의사가 되고 여의사와 결혼하고. 그래서 2대에 걸쳐서 부부 명이 의사에요. 우리 나라에 결핵병원을 시작하고 크리스마스 실을 도입한 분이 아들이에요. 그런 집안이죠. <조선회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2대에 걸쳐서 한국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가족의 이야기에요.

제임스 홀이 우리 나라에 들어왔을 평양에는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니까 평양에 선교기지를 개척하라고 하는 과제를 맡게 됐어요. 이것을 김창식과 함께 하게 것이죠. 평양에 갔습니다. 제임스 홀이 부인과 갓난 아들, 어린 아기를 데리고 갔어요. 그랬더니 평양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요. 서양사람들을 처음 보는 것이거든요. 얼마나 여자와 아이들이 구름떼 같이 모여들었는지. 기록을 읽어보면 1,500명이나 모였대요. 파란 눈의 여자와 갓난 아기를 구경하려고 얼마나 사람이 모여드는지 도저히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방으로 밀려드니까 없이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제임스 홀이 제의합니다. “줄을 서시오. 조에 10명씩 차례차례 나와서 5 동안만 관찰하시오.” 쳐다만 보라고 했는데도 자꾸 손가락으로 얼굴을 만지고 눈을 건드리는 해프닝이 있었어요.

평양 감사였던 사람이 민비의 친척이었어요. 아주 배타적인 사람이었어요. 서양선교사를 어떻게 해서든지 내쫓으려고 함께 갔던 김창식을 비롯해서 한국 사람들을 붙들어다 감옥에 집어 넣습니다. 서양선교사를 건드리면 문제가 될까봐 그들을 돕는 한국사람들을 감옥에 끌고 가서 매로 치는 것입니다. 제임스 홀이 급하게 서울에 전보를 치게 됩니다. 서울에 있는 선교사들이 미국 공사관, 영국 공사관에 찾아가서 소식을 알립니다. 그래서 이미 조미수호조약, 조영수호조약에 의거해서 한국 외무부에 문제를 알리고 명령을 내리게 해서 이들을 구출하게 되는 거죠. 김창식이 매를 맞아서 죽게 됐어요. 가까스로 풀려나게 됩니다. 마지못해 옥에서 풀어주면서도 사람들을 시켜서 저놈들을 때려 죽이라고 해라. 김창식이 돌아올 무지한 사람들이 돌멩이를 던져 돌에 맞아 머리가 터지면서 가까스로 집에 돌아와요.

그가 다음날 겨우 몸을 일으켜서 선교사를 비롯해서 모여 있는 사람들과 다같이 예배를 드립니다. 그때 김창식이 성경말씀을 펴서 읽어요. 사도행전 16, 오늘 우리의 본문을 읽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갔을 때에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죽기까지의 고통을 당하였어도 주님을 의지하였는데 오늘 우리에게 이런 영광을 주셨다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모습을 보고 부인이 말합니다. “, 하나님. 여기 조선의 바울이 있습니다.” 제임스 홀은 말했습니다. ‘이러다가 김창식이 죽겠구나.’ “, 하나님이 우리의 목숨을 찾으신다면 기꺼이 우리의 목숨을 드리겠습니다. 견고하게 문을 닫아 평양성문을 여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희생제물을 찾으신다면 김창식이 죽든지 내가 죽든지 죽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목숨을 받으시고 성의 문을 열어주십시오.” 드디어 사건 이후로 평양의 문이 열렸어요. 놀랍게도 10 후에는 한국교회 역사에 잊을 없는 사건이 일어나요.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렇게 알의 밀알이 심어지는 사건을 통해서 아름다운 결실이 있었던 거예요.

평양성에 문이 열린 1894 바로 가을부터 청일전쟁이 터지잖아요. 청일전쟁이 평양성 싸움으로 시작하거든요.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많이 죽어갑니다. 서울에서 빨리 철수하라고 했는데 제임스 홀은 수많은 환자들을 두고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그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전염병에 걸리게 되요. 급히 서울로 후송됐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여보, 사랑합니다.” 마디를 남기고 죽어요. 한국에 들어온 3 만에 목숨을 잃습니다. 부인은 어린 아들과 속에 7개월 딸이 있었어요. 시집인 카나다로 돌아가요. 그러나 도저히 남편을 잊을 없고 그가 평생에 가졌던 뜻을 외면할 없어서 딸을 출산하고는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다시 들어와요. 평양에서 남편의 유지를 이어받아 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후에 4 어린 딸이 그만 평양에서 병에 걸려 죽게 되요. 먼저 죽은 남편은 서울 양화진에 묻혀 있어요. 죽은 딸을 남편 곁에 묻어주고 싶지만 환경이 허락하지 않아요. 그것을 김창식이 어린아이의 관을 짊어지고 서울까지 걸어요. 일주일이나 걸리는 길을 관짝을 메고 와서 양화진, 아빠 옆에 어린 딸을 묻어 준거죠. 부인은 영원히 은혜를 잊을 없다고 기록해요.

여러분, 선교사와 한국인이 함께 평양의 문을 열었던 거예요. 사람이 바로 머슴 출신으로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김창식이에요. 그는 평생 순회목회를 하면서 47개의 교회를 세운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2천년 빌립보 땅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도 바울팀을 통해서 루디아를 만나고 고침 받은 여종을 만나고 포악한 간수를 만나고 빌립보 교회를 이루었던 하나님의 선교전략이 120 전에 평양의 문을 때에도 똑같이 그렇게 역사했어요. 그렇다면 당연히 120년이 지난 오늘 시간 이곳 자카르타에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어요. 당연히 일을 하시죠.

제가 10 전에 한마음교회에 처음 때에 기도한 있어요. 하나님, 어디로 보내시든지 제가 가겠습니다만 혹시 하나님이 저한테 물으시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하고 3가지 생각한 있었어요. 첫째, 새로 시작하는 교회가 좋겠다. 여러분 짓는 보셨죠. 원래 집에다가 덧씌워서 집을 고쳐 짓는 얼마나 머리 아픕니까. 빈터에다가 집을 올리는 낫지. 기존 교회도 좋지만 처음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익히고 배운 대로, 꾸고 바라는 대로 교회를 세울 있지 않겠어요. 번째, 제가 겪어보니까 죄송합니다만 공무원, 이런 분들하고 일하기 힘들어요. 너무나 원리원칙에 매여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해요. 사업가가 제일 나아요. 그래서 하나님, 이왕 사업가들하고 같이 있게 해주십시오. 그랬더니 여기 보내주신 거예요. 그리고 번째, 하나님 제가 배운 대로, 말씀중심 목회를 하게 해주십시오. 지금 세상이 변했어요. 교회로 오라고만 있는 세상이 아니에요. 교회 와서 예배를 드려야 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흩어져서 우리의 일터와 비즈니스 현장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발견해야 되요. 루디아 같이 기업을 통해 복음 안에서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되는 아니겠어요.

자카르타도 똑같습니다. 빌립보 같이 허브도시에요. 도시에요. 인도네시아 교회에 마침 부흥과 역사가 일어나고 있어요. 인도네시아 교회는 일어나는데 한인공동체는 교회 출석률이 가장 낮은 데가 자카르타에요. 한국사람이 나와서 제일 살기 좋은 데가 자카르타라고 말해요. 신앙생활 가장 게을리 하는 데가 자카르타다 말이에요. 그렇다면 오늘 곳에 우리를 보내시고 예배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우리 가운데 루디아가 있어요. 우리 가운데 귀신 들려 고통 당하던 여종이 있어요. 우리 가운데 간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예요. 우리 가운데 디모데 같은, 아버지는 헬라사람이고 어머니는 유대인인 이런 사람도 있어요. 이방인 의사인 누가 같은 사람도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사도 바울과 동행하면서 사도 바울의 모든 일을 낱낱이 기록한 사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 같은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사도 바울과 실라 같은 사람도 있어요. 하나님의 선교전략을 보고 나아가는 거예요.

사도 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죠. 사울은 크다 뜻이에요. 복음을 발견하고 자기의 이름을 바꾸었어요. 바울로 바꾸었어요. 바울은 작다 뜻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도 바울이었지만 자기를 작은 사람으로 얘기했어요. ?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하고 깨닫고 보니 하나님의 구원과 선교의 전략은 너무나 오묘해요. 하나님이 우리 사람을 향한 계획이 있어요. 우리 자녀를 향한 계획이 있어요. 우리 기업을 향한 계획이 있어요. 우리 가정을 향한 계획이 있어요. 우리 교회 공동체를 향한 계획이 있어요. 우리 한인사회를 향한 계획이 있어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전략을 따라가는 사람이 승리해요.

받는 자리에 같이 있기만 해도 복을 받아요. 기도가 되는 사람은 기도하세요. 돈을 벌어서 헌신할 사람은 그렇게 하세요. 몸으로 사람은 그렇게 하세요. 중요한 것은 말씀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마음을 두세요. 하나님께서 역사하세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따라가는 사람이 승리자에요.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에, 증인으로 있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이 멋있는 일을 하실 때에 박수 치며 기뻐할 있게 해주십시오.’

소걸음이라도 같이 손잡고 나가는 중요해요. 그럴 하나님의 역사가 열려요. 우리가 지금 홍해 가까이 왔어요. 정작 홍해 가까이 왔더니 하나님께서 배를 만들어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아요. ‘가만히 서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일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기도하는 자리에 있으라고 하는 것이죠. 이럴 빌립보의 바울, 조선의 바울을 쓰신 하나님이 오늘  자카르타의 작은 자들을 찾으셔요. 바울 같이 나를 낮추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들을 찾으셔요.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