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10515 복음의 능력 (롬 1:13~17)[사도 바울의 열정, 하나님의 불붙는 열정에 눈 떠야됨]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0. 20. 10:46

 

110515 복음의 능력 ( 1:13~17)  

성경본문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들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올해 교회 달력은 인상파 모네의 작품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작년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가지고 달력을 만들었지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을 보면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자라도 아주 불붙는 열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그러했습니다. 그는 아주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우울증으로 고통 당한 사람입니다.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자기의 갈 길을 찾아 화랑에서 일하고 또 벨기에 남쪽 보리나지 라는 탄광촌에 들어가서 환경이 열악한 불쌍한 광부들과 함께 살기도 합니다. 그들의 처참한 실상을 가슴 아파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세상에 알릴 수 있을까 하다가 그것을 스케치하기 시작하는 거죠.

나이 스물일곱에 작정을 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여러 도시를 전전하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불화하게 되고 부딪히게 됩니다.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그는 서른일곱에 자살했습니다. 10년 동안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려서 1,900점의 작품을 남기게 됩니다. 생전에는 거의 그림을 팔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두가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작품들이 됐죠. 그가 스쳐 지나간 곳, 그가 화폭에 담았던 교회라든지 건물이라든지 모든 장소는 유명 관광지가 되어서 고흐의 이름을 걸고 고흐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의 불꽃 같은 열정, 철저하게 세상과 불화하고 세상으로부터 내동댕이쳐진 그의 성격과 삶 속에 그 열정이 아니면 살 수 없었기에 그것을 붙들고 살았구나. 안타깝게도 그 열정이 자기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고비에서 무너져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숨만 쉬고 산다면 사는 게 아니죠.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되죠. 우리의 열정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또 한 사람의 열정의 인물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에요.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을 때에 멀리 떨어진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여러 번 로마에 가려고 했고 일을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길이 막혔다고 했어요.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할 수 없이 편지로라도 그들과 만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어서 빨리 여러분과 만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행여나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내 속에 불타고 있는 복음을 여러분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로마서는 기독교 신앙을 가장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풀어놓은 편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하는 것과 또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가 하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듣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으로 전단지를 풍선에 넣어서 날려보내지 않습니까. 반드시 1달러를 끼워 보낸다고 해요. 한 장이라도 버리지 않도록. 1달러의 위력 아닙니까? 여러분,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열정의 사람 사도 바울은 빈센트 반 고흐와는 또 달라요.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의 학문을 한 사람이요 집안은 명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스스로도 흠이 없다고 생각할 만큼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깨닫고 보니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가리는 역할을 했었구나. 나의 학문과 가문과 모든 조건들이 나로 자기만족에 빠지게 해서 생명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었구나.

사도 바울은 나는 복음에 빚진 자라고 말합니다.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헬라, 그리스 사람들이거나 그리스 사람들이 무시하는 바르바로이, 이방인들이거나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 원하노라. 과연 사도 바울의 일생을 살펴보면 죽음도 막을 수 없었던 불붙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열정의 핵심이 바로 복음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뭡니까? 첫째는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게 복음이에요.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다. 메시야이시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이 되신다. 어떤 문제냐?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에요. 죄인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게 돼요. 그런 죄인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유케 돼요. 우리는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어서 그 율법을 볼 때마다 좌절하게 돼요. 어리석은 사람은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자기만족에 빠지고 허위의식에 빠지게 되죠. 복음은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요. 죽음으로부터 자유케 해요. 사단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해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고 그 이름을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예요.

이것은 사람의 힘이나 도덕 또는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거예요. 사람의 공로로 얻을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의 지혜로 이루신 일이고 그의 능력으로 이루신 일이죠.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의로움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를 사랑하사 이러한 계획을 세우시고 그의 지혜와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이루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삼으신 사건이죠. 하나님의 의예요. 만약 구원이 기업에 주식 투자하는 것 같이 하나님이 대주주가 되시고 나는 소주주가 되어 나의 노력도 10%, 20%가 합쳐져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 구원은 불완전한 구원이 돼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가 하는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만약에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구원은 불완전하고 불안한 구원이에요.

여러분, 이단은 두 갈래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구약 율법을 철저하게 지킴으로 구원을 얻어야 된다는 주장들이 나타나요. 안식일, 유월절, 여러 가지 먹고 마시는 규례들을 문자적으로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죠. 또 반대로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 같은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신비주의 집단들이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와 심판과 율법과 죽음과 사단의 권세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간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계획, 지혜,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이고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에요. 구원은 선물이에요. 선물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놓으시고 우리에게 주시기에 감사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도덕적인 의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옳다고 인정하는 사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걸 정확히 알아야 돼요. 그러므로 의인은 하나님의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하나님께서 너 참 잘했다, 네 결정이 옳다고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었으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에요.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꼭 필요한 것이죠. 그러나 우리의 생명부터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부어주셨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어요. 여기 부르심의 은총이 있어요. 선교사로 나오시는 분들 가운데 선교훈련을 받으면서 내가 어느 나라로 나갈까 생각하게 되죠. 부지런히 정보를 모으며 생각합니다. 물론 필요하죠. 그러나 여러분, 그것을 내가 결정하려고 하면 쉽지 않아요. 그 다양한 것을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잘 알지 못하죠. 또 만약에 그렇게 해서 결정을 하고 들어왔다고 합시다. 어느 곳에 가나 어려움이 있죠. 사람이 어려움에 부딪히면 자기의 결정에 대해서 회의가 일어나는 거예요. ‘내가 그때 잘못한 게 아닐까?’ 삶이 어려운 이유는 현실이 어려운 게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혹시나 잘못된 결정은 아닐까 하는데 있는 거예요.

저는 인도네시아에 올 때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부르셨어요. 이것은 굉장히 극단적인 경우니까 여러분이 따라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겁니다. ‘, 하나님이 나를 인도네시아로 보내시는구나.’ 그것을 느꼈을 때 두려움은 전혀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 하나님이 나를 인도네시아로 보내시는구나.’ 굉장히 기뻤어요. 감사하고요. ‘하나님이 하시는구나하는 확신이 있을 때 나머지 문제는 다 내려놓으면 되요. ? 부르신 분이 알아서 책임지실 테니까. 이게 바로 부르심을 받은 인생의 축복이에요. 모든 결정을 내가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에요. 사도 바울이 말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종에 대한 결정적 책임은 주인에게 있는 거예요. 종은 주인에게 순종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이게 종의 자유함이에요.

오늘 교사주일입니다. 교회에서 여러모로 수고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이 우리 선생님들이에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유대인들은 생각하는 게 아주 남달라요. 히브리어로 라마드라는 말은 배운다는 뜻이에요. 라마드의 강조형이 있어요. ‘림메드많이 배운다는 말인데, 그 말을 어떻게 쓰냐 하면 가르치다로 써요. 가르치려고 하다 보니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집중해서 듣게 되니까 많이 배우는 거예요. 지난 한국교회 100년 동안 교사들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고 이어져 내려왔어요. 교사로 부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각별한 은총이에요. 그걸 기억해야 돼요.

여러분, 사도 바울의 열정을 보세요. 그러나 여기서 하나 더 발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죽음도 불사하는 열정으로 한평생을 살게 하셨던 분이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의 열정에 눈 떠야 돼요.

얼마 전에 윌리엄 영국왕자가 세기의 결혼식을 했어요. 30년 전에 그의 아버지가 다이애나 비와 20세기 세기의 결혼식을 했는데 30년 만에 그 아들이 또 다시 세기의 결혼식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점이 있어요. 다이애나는 귀족의 신분이었지만 이번에 윌리엄의 신부가 된 케이트 미들턴은 평민 출신이래요. 그래서 더 많은 처녀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거예요. 어떤 처녀가 그러더라고요. “윌리엄 왕자가 결혼해서 참 아쉽지만 그래도 아직 해리 왕자가 남아 있잖아요.” 평민들에게 아직 기회가 열려 있다 이거죠.

역대하 169절에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살피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능력은 하나님께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불같이 눈을 밝히시고 자기에게 전심을 향하는 자를 찾으셔요. 하나님의 열정을 생각해보세요.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인생들을 지으시고 우리를 죄와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순간마다 낙담과 좌절과 실망 가운데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불붙는 열정.

하나님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것이 내 마음에 평강이 되고 능력이 되는 거예요. 진정한 능력은 세상이 다 뒤집어지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이 최고의 능력이에요. 전심으로 주님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