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나의 평안을 주노라[의사결정원리3S1B,평안의비밀=보혜사성령]/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07:35

20080706 나의 평안을 주노라 ( 14:25-29)

성경본문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오래 전에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제목은 <U 571>, 2차 대전 때 독일의 U 보트라고 하는 잠수함과 맞서 싸우는 미 해군 잠수함부대의 특수작전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테일러라고 하는 중위가 나옵니다. 그는 잠수함의 부 함장입니다. 함장지원을 했다가 떨어졌습니다. 그가 떨어지게 된 결정적 원인은 자기의 직속상관이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를 만나서 왜 써주시지 않았습니까? 하고 항의하듯이 묻습니다. 그때 함장이 말합니다. 자네는 아직 부족하네. 저는 제 목숨을 내어놓을 각오가 돼있습니다. 자네 목숨을 내어놓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함장은 부대 전체의 생명을 위해서 부하의 생명까지도 요구하는 결단력이 있어야 되네. 이것은 한번 생각해볼 문제가 아니라 함장의 임무이네. 배에서 지휘관은 신과 같은 존재이네. 절대로 I dont know, 나는 모른다는 말은 결코 해서는 안되네. 그 말 세 마디는 모든 대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네. 20세기 격심한 전쟁터에서 있었던 지휘관의 리더십이죠.

또 하나의 전쟁터였던 20세기 경영환경 속에서도 똑같은 이치가 적용돼요. 20세기 대표적인 경영인 잭 웰치의 의사결정 원리라는 게 있어요. 흔히 3S1B 로 요약됩니다. Simple, 상황을 복잡하게 보는 사람은 참모는 될 수 있어요. 그러나 복잡한 상황을 단순 명쾌하게 집어내는 능력이야말로 CEO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지요. Self-Confidence, 자신감이 있어야 되고 Speed, 신속하게 결정해야 된다. 그리고 Boundless, 조직의 부서간에 벽이 없어야 된다. 누구의 의견이든지 잘 소통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20세기 최고기업을 이끌었던 잭 웰치의 의사결정 원칙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서울대 산업공학과의 김성희 교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20세기의 이론이었다. 21세기 경영 정보환경은 너무나 변했다. 예를 들어서 Wikipedia라고 하는 인터넷 사전이 있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브리태니카는 벌써 무너졌어요. 수 많은 사람이 작업을 해서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인터넷 사전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사전이에요. 마찬가지로 이제는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위키디시젼Wikidecison, 활짝 열린 의사결정 구조를 가져야 된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 결정할 수 있어야 돼요.

우리가 흔히 Win-win을 얘기합니다. 두 사람이 다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그러나 이제는 Win-win-win시대라는 거예요. 모든 관계에 있어서 정보가 공유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나와 당신만이 아니에요, 우리예요. 요즘 한국의 인터넷세상을 보세요. 아무도 못 속여요. 대통령, 장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깨끗해야 돼요, 속일 수 없어요. 그런 자리를 제의 받는 많은 사람들이 못나간다고 하잖아요. 망신당할 일 있느냐구. 그런 세상이 됐어요. 누가 나를 어디서 어떻게 보는지 완전히 다 노출돼 버렸어요. 상대를 속일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투명하게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서로를 대할 때 서로의 상황을 깊이 공감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감성경영이 나옵니다.

여러분, 요즘 한국에 나오는 광고들을 보세요. 마음을 향합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물건을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미는 광고는 수준이 떨어지는 광고예요. 호기심을 잔뜩 이끌어 냈다가 마음에 감동을 살짝 던져주고 가는 거예요. 상상력으로 승부하라 그렇게 말합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는 올라갈 만큼 다 올라갔어요. 훌륭해요. 그런데 이제 마지막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거기에 감동이 있기를 원합니다. 감동을 주려면 깊이 들어야 돼요. 공감해야 돼요. 아내와 남편도 마찬가지잖아요. 공감해야 되는데 말 첫마디가 나오기가 무섭게 알았어, 알았어. 또 시작이네. 이거 틀린 거예요. 빵점이에요.

여러분, 우리 주위에 내 인생에 대한 답이 가득 있어요. 네잎 클로버 보셨어요. 네잎 클로버는 꽃말이 행운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최근에 배웠어요. 세잎 클로버는 행복이래요. 그래서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나는 네잎 클로버는 싫어. 나는 세잎 클로버가 좋아. 지천으로 널려있는 행복을 놔두고 왜 눈이 빠지게 행운을 찾으려 해. 내 삶의 일상 속에 가득 넘쳐나는 이 행복을 가꾸는 사람이 되겠어. 여러분, 사람과의 일이 그러하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어요. 모든 것에 대한 답을 하나님이 다 예비해 놓으셨어요.

30대 중반의 주부가 있어요. 직장생활을 하다가 늦게 결혼하고 늦게 출산을 하게 됐어요. 아기를 가지고 출산을 기다릴 때에 등도 아프고 몸이 아팠던 거예요. 출산을 하면 괜찮겠지. 기다렸다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낳았건만 여전히 몸이 아프길래 검진해 본 결과는 벌써 유방암 말기,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어요. 한 팔로는 생명을 안고 다른 팔로는 기가 막힌 현실을 껴안게 되었어요.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습니까. 그게 인생이에요. 그는 모든 일을 다 내려놓고 건강을 관리하면서 생활 하게 됩니다. 봄날에 산자락에 갔다가 찔레꽃을 봅니다. 늘 다니는 길인데 그 찔레꽃에 눈길이 머무는 순간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터인데 그것이 마치 자기의 운명인양 느껴져서 한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자기의 바램을 얘기해요. 죽는 것을 피할 수는 없지만 너무 고통스럽게 앓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하나 무럭무럭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는 아기를 보면서 내가 엄마의 책임을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떠나가게 되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지만 아이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6개월 시한부였었는데 벌써 1년이 지났어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나 이제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죽음을 직면하고 나서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너무나 감격해요. 오늘도 나에게 하루가 허락됐구나. 풀잎 하나, 해와 달, 바람소리, 모든 것이 다 새로워요. 모든 것이 다 깨어서 그에게 다가오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언젠가 우리도 죽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위의 모든 만물이 살아 움트면서 하나님의 솜씨를 노래하고 있는데 우리는 자그마한 일에 빠져가지고 모든 걸 다 잃어 버렸어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유월절 만찬을 통해서 주시는 마지막 말씀이에요. 십자가 전날이에요. 흔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그 능력으로 죽음도 이기셨다 라고 말하지만 너무 단편적인 생각이에요. 성경은 오히려 솔직하게 예수님이 자기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보여주고 있어요. 히브리서 5 7절 말씀을 보니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드렸다. 내가 왜 이 잔을 마셔야 합니까. 왜 지금 마셔야 합니까.

혹 그 뮤지컬 보셨어요? Jesus Christ Superstar라고 하는 뮤지컬의 겟세마네라고 하는 대목을 보면요,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가 너무 예수님을 추상화시켜서 얘기하는 것 같아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그대로 느끼시고 공감하셨던 그 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죠. 그런데 그런 분명한 고통과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늘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평안을 남겨주고 가겠노라. 나의 평안을 주노라. 세상이 주는 평안과 전혀 다른 평안을 주노라. 그러므로 두려워하지도 말고 근심하지도 말라. 여기에는 뭔가 비밀이 있죠. ,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아요.

이런 우스개가 있어요. 부자는 회원권을 쥐고 있고 가난한 사람은 회수권을 쥐고 있다. 부자는 맨션에서 살고 가난한 사람은 맨손으로 산다. 부자는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고 가난한 사람은 사우디에서 땀을 흘린다. 부자는 헬스클럽을 다니고 가난한 사람은 헬쓱한 얼굴로 산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똑같은 거예요. 그러므로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명예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이 부분의 비밀을 알고 준비가 끝난 사람, 이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오늘 그 평안의 비밀이 뭐냐, 성령이 계시다. 그 분은 보혜사保惠師이시다.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그런 말이에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랬어요. 여러분, 아주 상식적인 얘기죠. 하나님이 지금 눈에 안보이시지만 우리와 함께 하신다. 어떻게? 영으로 함께 하신다. 그분이 성령이시죠. 그분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어떤 방식으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므로 문제를 해결하신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시지만 그 깨달음은 어떤 깨달음이냐 하면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응답이 되게 하시고 능력이 되게 하시고 지혜와 소망이 되게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성령이 오시면 그가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모든 말을 깨닫게 할 것이다.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를 가르칠 것이며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무슨 말이에요.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왜 부활하셔야 했는가.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야 했는가 하는 것을 우리로 깨닫게 하는 것이죠. , 그 안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음의 해답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경은 아주 신비한 말을 했어요. 오늘 본문에 보니 예수님이 내가 갔다가 다시 너희에게로 올 것이다. 어떻게? 성령으로 오실 것이다. 그래서 성령을 다른 표현으로는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아서 몇월 며칠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일으키시는 가장 중요한 역사는 예수님 그분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고 구주가 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하시는 거죠.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봤어요. 철수, 너는 장래 희망이 뭐냐? 저는 우주 과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숙이, 너는 뭐냐? 저는 그저 평범하게 애 낳고 살고 싶어요. 그래, 영철이 너는 장래 희망이 뭐냐? 저는 별로 큰 꿈은 없구요, 영숙이가 애 낳는데 협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런 꿈을 가지고 있어요. 몇 날이 남았던지 마지막까지 이제까지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비틀비틀 했어요. 그러나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될런지 모르지만 좀 뜨겁게 살고 싶어요. 삶을 정리하고 살고 싶어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건 좀 접어두고 싶어요. 꼭 필요한 것 그것에 마음을 쏟고 살고 싶어요. 특별히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살리시는 이 일에 쓰임 받고 싶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하고 나누면서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일에 협조하고 싶어요. 우리의 희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순간순간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요.    

<가르침의 순간>이라고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미국에 존이라고 하는 사람이 멀리 외출을 나갔다가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뉴스를 들어보니까 자기 집이 위치한 곳이에요. 허겁지겁 달려갔어요. 이미 벌써 불이 다 지나가버렸어요. 22년 동안 살았던 통나무 집이 잿더미가 되었어요. 소방관들도 벌써 다 지나가버렸어요. 17살 된 아들과 함께 너무나 허탈했어요. 자기들이 돌로 쌓아 올렸던 돌계단에 주저앉았어요. 아들이 발끝으로 돌을 툭툭 치다 보니까 돌 사이에 종이쪽지가 보이는 거예요. 뭔가 하고 뽑아서 펴봤어요. 그랬더니 거기 소방관이 남긴 글이 있었어요. 저는 당신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들의 아픈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 13절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실망하지 마시고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알래스카 소방관 더그로부터 휘날려 쓴 글이 거기 있었어요. 아버지가 말합니다. 얘야, 정말 중요한 것, 사랑하는 가족, 좋은 이웃 그리고 하나님은 잃어버리지 않은 것 같구나. , 아버지.

여러분, 현실에 매몰되어서 그것만 보지 마세요.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세요. 은혜의 눈으로 볼 때 지난 모든 일들이 인간의 허물과 실수와 거짓과 죄악이었지마는 그 속에 오늘 이 자리로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있었어요.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미래라고 정치, 경제, 사회가 이야기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내가 마지막 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너에게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라. 내가 다시 너희에게 오리라. 그 약속의 증거로 성령을 우리 가운데 주신 것이죠.  

저는 간혹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광고를 종종 봐요. 얼마나 신기합니까. 전세계 구석구석의 빈민가 아이들도 공 하나 가지면 모든 가난을 잊고 그저 막 공을 쫒아 다니면서 웃고 떠들면서 살잖아요. 공 하나의 놀라운 마력이에요. 그것이 나중에는 월드컵으로 발전해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보지 않습니까. 여러분, 눈을 들어보면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셔요. 성령의 이런 비밀에 마음을 열고 사는 사람들을 통하여 오늘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셔요. 날마다 나가서 공을 차고 그럴 때 튼튼해지고 삶의 소망을 얻고 자신감을 얻듯이 성령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그 분의 증거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분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거예요. 들어앉아서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신학자들에게 맡기세요. 축구 이론가가 되려고 하세요? 아니요, 저 같으면 당장 공 하나 가지고 운동장에 나가서 뻥하고 내차겠어요. 그럴 때 내 마음이 상쾌해지고 기쁘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는 순종하는 자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놀라운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부자로 살 수도 있고 모자라게 살 수도 있고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 잘나고 못나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우리 인생의 여러 가지 일들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생명의 길을 여셔서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순간순간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위로와 소망과 용기와 지혜를 주시니 그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감사합니다. 마음을 활짝 열게 하시고 축구공을 따라가는 어린아이들같이 성령의 역사를 믿음으로 따라가고 순종함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증거를 맛보는 우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