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죽은 자와 남은 자[세례요한과예수님,하나님의시간표를알아야]/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07:50

죽은 자와 남은 자 (마태복음 11:1-6)

2008 6 22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한 중년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통닭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부부가 나란히 암에 걸린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중학생 외동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곱 번 유산한 끝에 극적으로 얻은 사랑하는 딸이었습니다. 투병하다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그 아내는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제 앞으로 홀로 살아가게 될 딸을 위하여 또 병실에 누워서 꼼짝할 수도 없으므로 모든 일을 딸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합니다.

   이제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더도 말고 딸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 볼 수 있다면’하고 바라게 됩니다. 3개월 시한부였습니다만 3년을 넘겼습니다. 딸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새로운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꽃피는 봄이 와서 5월에 네가 다니는 대학 캠퍼스에 너와 함께 갈 수 있다면.’그러나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병상을 지키는 딸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다가 딸에게 말합니다.“나를 위해 기도해줘.”그 기도를 받고 그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 먼저 죽는 자가 있고 뒤에 남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입니다. 거기에는 안타까움도 있고 아쉬움도 있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죠. 이미 우리 앞에 앞서가신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서 또 우리 가운데 먼저 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간 사람과 뒤에 남은 사람. 먼저 간 사람은 뒤에 남은 자를 향한 간절한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이 엄마에게는 열아홉 살에 혼자 된 딸이 어찌하든지 밝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기를 열망하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또 남은 자에게는 먼저 간 사람들이 남겨준 소중한 꿈을 이루어 갈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세례 요한예수님이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 역시 먼저 죽은 자와 뒤에 남은 자로 구별됩니다.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입니까. 세례 요한은 어지러운 세상에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선포에 요단강으로 몰려들어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일반 백성들도 나오고 군인들도 나옵니다. 세례 요한은‘나실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을 깨끗하게 섬기기로 서약하고 구별된 사람이에요. 세례 요한은 날 때부터 머리카락에 손을 대지 않았고 술을 마시지 않았고 시체와 같이 더러운 것을 만지지 않았던 사람이죠. 한 평생을 깨끗하게 하나님께 드리겠노라고 서원했던 사람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얘기를 하시면서‘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보다 큰 자가 없다’, 그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그날까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깨끗함을 지키며 살았다 라고 세례 요한을 아주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헤롯 왕의 잘못된 행실에 대해서 거침없이 비판했기 때문에 그는 감옥에 들어갔죠. 그는 선지자였습니다마는 정치적 이유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 고립되었습니다. 그는 감옥 깊은 곳에서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특별히 예수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 예수는 자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에 어느 날 자기 앞에 나타나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죠. 예수가 나타났을 때에 미처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고, 저는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셔서 그대로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감옥 속에서 들어보니 세례 요한이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부분이 있어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이 금식을 철저히 준수한 사람들이에요. 세례 요한이 한평생 요단강 빈들에 살면서 약대 털옷을 입고 들 꿀을 먹으며 거친 생활을 하면서 깨끗함을 지키려 했기에 그의 제자들도 선생을 본받아서 금식을 하며 여러 가지 율법의 규정을 지키되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형식으로만 지켰지만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그것을 지켰던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보면 예수님은 금식하시기 보다는 세리와 죄인 같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시며 그들과 포도주를 함께 하시고 음식을 나누시며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 신랑과 신부의 비유를 들어가며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을 지키는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신랑을 맞이하듯이 넘치는 기쁨 속에 사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기에서 세례 요한이 혼란에 빠졌어요. 심지어는 내가 비록 그를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했지만 과연 그가 메시야이신가 의문이 생겼어요. 그래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거예요. 그리고 물어 봅니다.‘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됩니까.’그때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너희는 지금 이 현장에서 듣고 보는 바를 세례 요한에게 가서 말하라. 지금 소경이 눈을 뜨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입고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있지 않느냐.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무슨 말이에요. 내 말을 듣고 내가 행하는 이 일로 인해 혼돈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 메시야의 사건이 무엇인가를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여러분, 이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과 전혀 다른 생명의 약동이 있어요.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고 수준이 다른 거예요. 여기에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했어요.‘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지만 그러나 천국에 있는 자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도다.’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인물이에요. 율법을 통해서 열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요. 천국이 열렸어요. 그 천국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원초적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져서 우리가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율법을 넘어선 사랑의 세계.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구약의 많은 왕들과 선지자들이 오늘 너희가 보고 있는 것들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도다. 그러므로 오늘 이 사건을 보고 듣는 너희는 복이 있도다.

   , 세례 요한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감옥 속에 있는 세례 요한을 심방했다는 얘기가 없기 때문에, 면회했다는 얘기가 없기 때문에, 이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문제예요. 공은 세례 요한에게 넘어갔어요. 얼마 후에 세례 요한은 목 베임을 당하고 죽었어요. 세례 요한의 피 흘림이 있었어요.

   우리가 언젠가 세상을 떠날 때, 그저 내가 바라던 대로 모든 일들이 다 평안하고 잘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조금 무리일 것입니다. 여전히 문제가 있을 거예요. 그러나 나의 한평생을 한없는 사랑으로 지켜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의거하여 내가 미처 다하지 못하고 뒤에 남긴 이 일까지도 하나님께서 내 자녀들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시리라 믿고 우리는 떠나야 돼요. 믿음을 가지고 마지막 순간을 맞아야 돼요. 우리 주님께서도 이 말씀을 하시고 세례 요한의 죽음의 소식을 들으셨어요. 인생은 언젠가는 심장에 흐르던 피가 멎게 됩니다.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병으로 죽을 수도 있고, 언젠가는 피가 멎음으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사실 신앙은 거기에 있는 거죠.

   저에게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이모할머님이 계셔요. 그분은 일제 말기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옥에 갇히기도 하신 분이에요. 그때 그분은 젊은 아낙이었고 어린 아이들이 있었고, 공교롭게 그 남편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만주를 나그네같이 떠도는 사람이었어요. 감옥에 들어가니 애들은 다 친척집으로 흩어졌어요. 신앙을 지키느라 굉장히 고생했어요. 아마도 그 어린 자녀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전쟁 이후에 피난 내려와서 사셨지만 가난을 벗지는 못하셨어요. 평생 가난을 벗지는 못하셨어요. 그 자녀들은 교회는 다니지만 그렇게 썩 믿음 있게 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나중에 대학생이 되고 집안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그 할머니에 대해서 웬일인지 애틋한 마음과 함께 그를 향한 간절한 소원이 생기더라고요.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더라고요.‘하나님, 젊은 시절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의 깨끗한 믿음을 지키려고 수고하고 애를 쓰신 우리 이모할머님이 오늘도 여전히 가난을 벗지 못하고 또 평생 가난을 벗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하여 그가 하나님 앞에 보였던 믿음이 퇴색되거나 물러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마지막에 원망하는 말이라든지 후회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 이모할머님이 홀로 단신 월남한 우리 아버지를 아들같이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정작 우리 할머닌 자기 동생이 그렇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고 가정이 흩어지고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못마땅해 하셨대요.‘예수를 믿어도 좀 조용히 믿지’그러셨대요. 우리 할머님은 결국 그 재산이 아까워서 끌어안고 있다가 공산치하에서 못나오셨어요. 그래서 이모할머님을 대할 때마다 우리 할머님의 부족한 신앙을 그분이 메워주고 계시는구나 하는 마음도 있고, 또 나라도 똑바로 예수를 믿어서 그분이 이렇게 한평생 가난 속에 살지만 소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바램을 가지는 거죠.

   여러분, 뒤에 남은 자에게 책임이 있어요. 먼저 가는 사람들은 뒷일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고 떠나야 할 것이고 뒤에 남은 자들은 먼저 가는 자들이 미처 못 한 부분들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러시아를 다녀왔는데요, 그 짧은 기간에 뭘 봤겠습니까. 그러나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에서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느꼈던 것이 있습니다. 러시아가 뭘 자랑거리로 삼고 있느냐 하면 나폴레옹 전쟁 때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 나폴레옹 전쟁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때 그 처참한 전쟁의 상황과 모든 기록들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박물관이 있는데, 2차 세계대전 승전박물관, 독일이 소련을 무너뜨리려 하지 않았습니까. 특별히 레닌그라드, 지금의 뻬쩨르부르그, 그 도시를 900일 동안 포위했어요. 백만 명이 갇혀서 아사했어요. 완전히 피로 범벅이 됐죠. 그러나 그러한 위기 속에서도 자기들이 끝까지 버텨가지고 결국은 오히려 독일을 패퇴시키고 수많은 독일군을 포로로 잡았다, 이것을 자랑합니다마는 피의 역사예요. 뻬쩨르부르그 자체가 300년 전에 왕의 도시로 지어진 완전한 계획도시에요. 대단합니다마는 저는 그것을 볼 때에 저것을 짓느라고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죽었을까, 고통을 당했을까, 피의 역사에요.

   어느 나라도 예외 없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에요. 20세기 우리나라 역사를 아시잖아요. 청일전쟁, 러일전쟁, 3.1독립만세, 또 태평양전쟁, 드디어는 6.25전쟁까지. 어느 나라 못지않은 전쟁과 재난과 기근과 아픔과 눈물을 가졌던 것입니다. 아주 피가 내를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루는 그런 비극의 역사의 모퉁이를 우리가 이제 막 돌아온 것 뿐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놀랍게도 두 가지 피의 역사가 있습니다. 인간은 탐욕과 욕망을 가지고 나와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죽이는데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고 목숨과 모든 것을 빼앗고 그것을 정당화하고 자랑하는, 인간의 피의 역사가 있는 반면에, 십자가의 피의 역사가 있어요.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그 나라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랑하고 베푸는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있어요. 그것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도 내어놓는 순교의 역사가 있는 것이죠.

   특별히 우리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어요. 우리 민족이 원래 단일민족을 자랑하면서 어디 갈 생각을 안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나 복음이 들어온 150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말할 수 없는 전쟁과 재난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수많은 동포들이 만주로 연해주로 중국으로 하와이로 미주대륙으로 막 퍼져나갔어요. 지금 유대인 다음으로 본토 인구에 비해서 해외 교민이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에요. 미국에도 2백만이 넘죠. 중국에도 조선족이 2백만이 넘죠. 일본에도 재일교포가 70만이 넘죠. 러시아에 가보니까 온통 고려인들이죠. 세계 강국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흩어놓으셨어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게 하셨어요. 온갖 무시와 차별을 당하면서도 신앙으로 이기는 민족이 되었어요. 6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 6년 됐나요, 이제는 해외 한인교포들 안에‘한상韓商’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졌잖아요. 유대인과 중국사람 다음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통해서 땅 끝까지 고속도로를 까는 거예요.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는 고속도로를 까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경제적 부흥을 주시고 엄청난 변화를 일으켜 주시는 것은 한인교회와 한인교민들을 통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거기에다가 복음을 실어 나르는 거예요.

   이번에 촛불집회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런 스타일의 집회는 세계 유례가 없는 거예요. 현지 생중계요, 일인방송이잖아요. 그건 어느 나라도 시도해 보지 못했던 가장 첨단의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기술의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과 나와의 소통이 중요해요. 이런 우스개가 있어요. 앙드레 김이 아들하고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어요. 그런데 이 아들이 장난꾸러기였나 봐요. 자꾸 돌아다녀요. 그러니까 앙드레 김이“찰~, 제자리에 앉아야지.”잠깐 앉더니 또 돌아다닙니다.“찰~, 그러면 안되지.”스튜어디스가 지나가다가‘역시 앙드레 김은 국제적인 인물이다. 애 이름도 저렇게 영어로 지었구나.’그러면서 그 개구쟁이를 지나치면서 묻습니다.“네 이름이 찰스니?”“아니요, 철수에요.”잘 들어야지요. 소통이 돼야지요. 여러분, 하나님이 세계 역사를 지금 주도하셔요.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우리 민족을 들어서 세계에 흩어 뿌리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지금 미국의 선교사가 퇴조하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선교의 책임을 맡겠다고 겁도 없이 막 뛰어들고 있어요.

   이곳 인도네시아의 한인역사는 제가 현재까지 책을 읽으면서 확인해 본 바로는 대략 제일 빨리 들어온 사람이 1943년에 들어왔어요. 65년 된 거죠. 다 징병, 징용을 왔어요. <젊은이여 세계로 웅비하라>는 책이 있네요. 2년 전에 돌아가신‘신교환’한인회장님의 자서전입니다. 그분이 동경제대 다니다가 징용 당했어요. 44년에 징용당해서 암본 섬에 왔어요. , 일본이 패망이 가까워오면서 보급이 다 끊어져 가지고 인도네시아에 주둔하는 수만 명의 일본군이 다 굶어죽게 됐어요. 이분이 열대농학을 전공했기 때문에‘여기에 나오는 작물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이 군인들을 먹여 살려라’이게 그분의 임무였죠. 그 섬에 가기까지 숱한 죽음의 위기를 넘깁니다. 이미 일본이 밀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수 없는 공습을 피해가면서 갑니다. 이분이 똑똑하고 논리적인 분이어서 자기 누이가 예수를 믿으라고 말할 때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떻게 믿느냐고 하더니만 수 없는 공습과 위기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뱃전에 엎드려서‘하나님 나를 살려주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엉겁결에 예수를 믿었더라고요.

   그리고 전쟁이 끝나 2년 만에 46년도에야 겨우 자기 고향에 돌아가요. 가까스로 고향에 도착해 동네에 들어가니 동네 사람들이 너무 놀라는 거예요. , 그날 바로 자기 영혼결혼식이 집에서 열리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부모가 근래에 죽은 처녀귀신하고 엮어가지고 영혼결혼식을 동네 사람들하고 치르고 있는데 장본인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잔치가 된 거죠. 그 젊은 날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그가 68년에 이곳에 원목개발을 하러 들어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우리나라 첫 번째 수출 1억불 탑을 수상한 동명목재, 거기에는 이분이 원목을 공급했던 뒷이야기가 있는 것이죠. 40여 년 전 이 땅에 왔던 우리의 교민들은 엄청난 수고를 했어요. 정말 눈물과 땀과 피를 쏟았어요.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곳에 무엇을 위해서 삽니까.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아야죠. 어차피 이 긴 역사를 내가 다 보지는 못할 겁니다. 나도 언젠가 뒷일은 맡기고 떠날 거예요.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보고 어떻게 흘러 갈 것인지를 보고 오늘 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올바로 감당하고 가는 것이 중요해요. 그럴 때에 믿음으로 맡기고 갈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이러한 것을 읽으면서 너무 감사한 거예요. 여기에 일이 있어서 나를 보내셨구나. 우리의 예배는 그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말할 수 없는 은혜 속에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셨어요. 이것을 알 때에 내 안에 하나님이 부어주신 생명이 약동하고 감사가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삶의 여유가 생기는 거예요. 여러분 여유를 가지세요.

   <골프가 내 몸을 망친다> 그런 책이 있더라고요. 아마추어 골퍼들이 운동 전날 회식하고 늦게까지 술 마시는 것, 몸 망치기 십상입니다. 식사도 하지 않고 골프하는 것, 라운드 도중에 시원한 맥주 한잔이 기분은 좋아도 몸을 망친다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건강한 골프를 하려면 카트를 타지 말고 걸어라.’결정적으로 중요한 게 있어요. 샷을 할 때 70%의 힘만을 실어라 이거예요. 그걸 무리해서 120%를 실으면 어떻게 되느냐, 척추에 무리가 와서 나이 들어서는 골프 못한대요. 그 말은 뭐예요. 좀 여유를 가지고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좀 즐기면서 하고 감사함으로 하고 여유로 하라. 골프도 신앙도 넉넉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