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805 은총의 족보 (마 1:1~11)
성경본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라함을 낳고 라함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오늘 새벽에 영국하고 축구를 한다고 하길래 또 시합에 지면 열 받은 분들이 괜히 아침에 예배드릴 때 짜증을 내시겠구나 해서 일어나자 마자 인터넷을 확인했습니다. 그랬더니 감사하게도 이겼더라고요. 주일 새벽에 축구시합 하는 것을 목사들이 제일 싫어합니다. 이기건 지건. 물론 이기면 다행이긴 하지만.
영국 이야기를 좀 해야되겠습니다. 1992년에 영국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뽑힌 책이 있습니다. <Wild Swan> 야생백조라고 할까요? 그 유명한 여행가 한비야씨가 15년 전에 중국을 여행하려고 하다가 여행길에서 만난 한 캐나다 여성이 여행 중에 읽은 책을 서로 바꾼 거죠. 그러면서 이것은 중국여행의 필독서라고 넘겨준 책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것을 받아 들어 읽는 순간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빠져들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어떤 한 사람이 그 책을 영국의 한 출판사에 주문해서 받아 읽었는데 그도 마찬가지로 빠져들었다. 제가 최근에 이 책을 우연히 도서실에서 찾아서 읽었는데 아주 빠져들었어요. 새벽기도만 아니면 밤을 새워서 봤을 텐데 할 수 없이 억지로 참아가면서 봤습니다.
어떤 내용이냐 하면, ‘장용’이라고 하는 올해 60세인 중국 여자분입니다. 이분은 1976년 마오쩌뚱이 죽고 나서 등소평이 다시 등장하면서 1978년에 1949년 공산화 이후 최초로 15명의 사람을 선정해서 서양으로 유학생을 보내는 그 중에 한 사람으로 뽑힌 사람이에요. 그래서 처음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하고 영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죠. 그리고 나이 사십에 근대 중국역사와 더불어 흘러내려온 여인 3대, 외할머니와 엄마와 자기의 이야기를 기술했습니다. 우리가 세계사를 통해서 중국의 역사를 이해합니다만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참 교과서 한 페이지에 담겨 있는 내용이, 뭐 그렇게 간추릴 수 밖에 없지만 그게 얼마나 우리들에게 피상적인 지식으로 남아있는가 하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여러분, 중국의 100년 근대역사가 어떻습니까?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를 보셨다면 그 분위기를 다 아시죠? 청나라 말기의 대혼란기, 중국은 이제 군사 지도자들, 군벌들이 갈기 갈기 찢어가지고 서로 혼란 가운데 싸우는 혼란 와중에 빠지고 나중에 1912년 손문, 쑨원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일으키고 장개석, 장제스가 국민당정부를 세워서 하나씩 북벌통일을 해가는 그 와중에 모택동, 마오쩌둥이 공산당과 주도권을 놓고 싸웁니다. 그 와중에 일본군이 중국대륙을 침공해 들어옵니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드디어 대동아전쟁, 태평양전쟁, 2차세계대전 해서 45년에 일본은 패망하고 물러가면서 본격적으로 공산당과 국민당간에 내전이 벌어지고요, 드디어 1949년 국민당은 패퇴해서 대만으로 물러가게 되고 거기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죠. 그 수 없는 대혼란과 전쟁, 그 속에서 살아야 했던 중국인들의 삶이에요.
여기 보니 여인3대, 이 저자의 외할머니는 열다섯 나이에 군벌아래 경찰 총수였던 사람에게 첩으로 팔려갑니다. 그 당시에 여자는 물건이에요. 인격이란 존재하지도 않아요. 아버지들이 팔아먹는 거예요. 그런 처절한 사회 속에서 태어난 엄마는, 이번에는 이 사회를 개혁하자고 부르짖는 공산주의에 공감하면서 열다섯 나이에 공산당에 입당해서 아주 골수 공산당원이 돼요. 그리고 자기보다 더 완벽한 골수 남편 공산당원을 만나게 돼요.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이 저자죠. 이 사람은 60년대 문화혁명 홍위병으로, 대광기의 시대 한복판에 젊은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공산당들이 중국을 지배한 이후에 1950년대에 마오쩌뚱이 ‘대약진운동’이라는 것을 펼치죠. 농업공사를 만들어서 다 공동농장제로 다같이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같이 나가서 농사를 짓게, 그리고 나라에서 모든 것을 다 배급제로 운영합니다. 이 집단농장제가 낳은 결과는 뭐냐?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똑같이 나라에서 배급을 주고 나가서 일하게 하니까 누가 일하겠어요? 무책임하게 만들고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대약진운동의 결과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어요.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거짓말하는 이런 허구 속에서 그 사람들을 조정하기 위해서 서로 고소, 고발하게 만들어요. 말도 안 되는 그런 상황 속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 이전에 그 험한 중국의 역사 속에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원한과 감정들을 드러내어서 사람들을 고소, 고발하게 합니다. 오히려 이 집안의 골수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숙청당합니다. 그리고 1960년대에 마오쩌뚱이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인해서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자기에게 저항하는 기존의 공산당 관료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문화혁명이라는 것을 주도하면서 초중고, 대학생 젊은이들을 충동하죠. 그래서 권력을 쟁취하라. 기존질서를 다 무너뜨리는 거죠. 학교에서 아이들이 선생을 고발하고 끌어내다가 때리고 모욕을 주고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무법천지를 만들어 버린 거예요.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패거리를 이루어가지고 서로 충성경쟁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중고등학생들이 홍위병, ‘우리는 마오쩌뚱을 호위하는 부대다.’ 홍위병을 자처하면서 마오쩌뚱을 신격화하는 거죠. 저자도 그랬습니다만 중국 전역에서 수많은 청소년들이 베이징으로 몰려듭니다. 마오쩌뚱을 보려고 몇 달 씩 기다립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한 번 나타나서 마오쩌둥이 저들을 접견하고 지나가면 그들은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위대한 지도자 마오주석을 보았다.” 완전히 미친 세상이죠. 이런 시대에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오쩌둥이 76년에 죽으면서 등소평이 복권되면서 중국은 개방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가까스로 극적인 기회를 붙들어 가지고 영국으로 가서 공부하게 된 거죠. 그리고 10년 만에 자기를 만난 엄마를 통해서 자기 집안의 여인들의 역사를 이야기를 듣고 이것은 반드시 책으로 기록해야 되겠다고 책을 써서 낸 것이 영국에서 ‘올해의 책’ 수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100년 역사가 이 집안을 통해서 아주 확연하게 다 드러난 거예요. 이것을 읽으면서 ‘북한의 공산주의 또한 어떠하겠구나. 오늘도 저들은 어떤 고통 속에서 살고 있겠구나.’ 하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또 다시 오늘 나의 어떤 상황일지라도 도저히 이런 지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오늘 나의 이 모든 조건이 알 길 없는 하나님의 은총임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에베소서 6장 12절에 보면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영적 싸움을 싸우라.’고 말합니다. 꼭 개인이 귀신들린 것만 귀신 들린 게 아니에요. 이렇게 권력을 가지고 남용함으로 인해서 수많은 생명들을 고통 가운데 빠뜨리고 가정을 다 깨뜨리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권력 배후에는 사단의 역사가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성경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 경건함과 평안한 생활이 거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제가 듣자 하니 올 12월에 여기 한인공동체에도 한인회장선거가 있다고 해요. 기도해야 돼요. 그건 남의 일이 아니에요. 누가 되든지 그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지만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에요. 우리가 방치하고 내버려 두면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뺏기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읽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나오는데 여기에도 여인들이 나와요.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죽 내려오는데 아브라함부터 죽 내려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시 다윗 왕부터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또 14대, 바벨론 포로에서부터 예수님까지 14대, 이렇게 맞추어서 족보를 써놨습니다. 그런데 1절에 보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족보라.’ 이렇게 나와 있어요. 다윗은 왕이에요. 다윗 왕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하면 거기서 그려지는 이미지는 예수님은 다윗 왕의 후손인 왕족이고 그분은 왕이시고 그분은 인간을 구원하실 메시아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많은 사람들이 로마 식민지배에 있으면서 그들의 절박한 상황과 고통 속에서 그들은 새로 오실 왕을 간절히 기다렸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많이 불렀어요. 그러나 오늘 이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서는 다윗을 훌쩍 넘어서 그 위로 올라가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아주 깊은 의도가 있어요. 아브라함은 왕은 아니죠. 그러나 그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시는 것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창세기 12장 1절, 3절에서 나와있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너는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그리고 너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겠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겠다고 하나님의 의지를 분명히 밝히셨어요. 복의 근원이 되리라.
그리고 아브라함의 족보를 죽 보니까 여기에 놀랍게도 여인들의 이름이 있어요. 원래 족보에는 여인들의 이름이 안 들어가거든요. 구약에도 족보에는 여인들의 이름이 거의 들어가지 않아요. 그러나 오늘 신약의 마태복음 첫머리 족보에 여인들의 이름을 집어넣는 의도가 있어요. 사실은 같은 유대민족 안에서도 여인들은 이방인과 같이 차별 받는 사람이죠. 그리고 여기 나오는 4명의 여인들의 이름은 각각 독특한 상황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다말이라는 여인이 나오고 또 라합이라는 여인이 나오고 룻이라는 여인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말하죠. 4명의 여인이 나와요. 지난 100년간 중국의 역사가 그러했다면 수천 년 전의 유대땅의 상황은 백 년 전 중국의 상황보다 나을 게 아무것도 없어요. 더 절박하고 더 처절하죠.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혼란 가운데 피해자들이에요.
여러분, 유다와 다말 이야기가 뭔지 아시죠? 모르시는 분은 창세기 38장을 한 번 찾아보세요. 제가 38선을 넘었다, 남녀가 불륜관계를 가지면 38선을 넘었다고 하잖아요. 그것도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륜관계라고 나와있어요. 어떻게 이런 게 다 성경에 실려있냐고 그럴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잘못 본 거예요. 각도를 그렇게 보면 안 되는 거예요. 무슨 얘기냐 하면 ‘형사취수제’, 고대사회에서 그 집안을 유지하고 그 지파의 토지소유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형이 아내를 얻었는데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그 형수와 함께 살아서 얻는 첫 아이를 형의 아들로 입양을 시켜서 형의 집안을 이어주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서 과부가 된 여인을 내쫓지 않고 그 여인을 집안에서 보호해주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라고 받아들인 것이죠. 그러니까 다말은 하나님이 정해놓은 자기의 권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내쫓김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죠. 여인으로서 마지막 생존의 기회를 그는 끝까지 놓지 않고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니 이것을 내게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라고 해석을 해야 됩니다.
라합은 뭡니까? 여호수아 2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게 될 때, 여리고성에 있었던 기생이라고 했잖아요. 영어로는 창녀로 나와 있어요. 그러나 이 라합은 전쟁에 임박한 순간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소문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통해서 홍해를 건넜다고 하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여기서 이렇게 살다가 죽느니 차라리 나는 살겠노라. 그리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면서 뭐라고 합니까? 내가 당신들을 살려주었으니 당신들도 나와 우리 집안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해주시오. 살 길은 그것밖에 없어요. 용기를 내어서 목숨을 걸고 자기와 자기 집안의 생명을 구하려고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소식을 듣고.
룻은 구약 룻기에 잘 나와있죠. 이 사람은 모압여인이잖아요. 이방인이잖아요. 이 상황은 또 기근이잖아요. 다 굶어 죽는 기근 판에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유대땅으로 가는 거죠. 그러면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됩니다. 어머님이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같이 죽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룻은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더 놀라운 것은 또 하나의 여인, 다윗 왕과의 불륜관계에 빠졌던 밧세바라고 하는 여인이에요. 성경은 얼마나 엄격한지 그냥 밧세바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우리야의 아내. 여러분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다윗은 이 땅에 살았던 사람 가운데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또 나름대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한 사람이에요. 그러나 그런 다윗조차도 이런 실패와 범죄에 빠졌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을 숨기지 아니하시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영원히 지울 수 없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기록하게 하셨어요. 이게 인간의 실상이에요. 인간의 실체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런 무서운 범죄 속에 있는 그들에게도 또 은총을 베푸셔서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도록 역사하셨어요.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어요. 어떤 고통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항상 구원의 문을 열어놓고 계셔요.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들어야 돼요.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깊은 무거운 짐들, 말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 다 꺼내놓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되요. 하나님이 구원하셔요. 여기에 생명의 계보, 생명의 족보가 흐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의 족보가 흐르는 거예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런 족보에 들어있는 거예요. 사실 고백하면 저도 족보가 없어요. 저희도 아버님이 이북에서 단신월남 하시다 보니 족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학과를 다니는 사람인데 어떻게 집안에 족보가 없냐 해서 제가 대학을 다니다가 대학 3학년 때 신설동 로타리를 지나가다 보니까 ‘당신의 족보를 찾아드립니다.’하며 거리에 나와서 뭘 하는 사람이 있길래 쫓아가 보니까, 용지를 주면서 적어달라고 하면서 수수료 오천 원만 내면 찾아주겠다고 하고는 사무실이 저기에 있으니 일주일 후에 오라고 합니다. 아는 대로 다 적어서 갖다 주고 일주일 후에 사무실에 찾아갔더니 이만한 책을 찾았다고 줬습니다. 드디어 찾았구나 하고 책을 넘겨봤습니다. 넘겨봤는데 조금 마음에 안 들어요. 미심쩍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학교 도서관에 가서 <성씨 대사전>이라는 큰 책을 찾아서 보니까 이 사람들이 거기에 있는 것을 복사해서 옮겨 놓았더라고요. 장사꾼들이 팔아먹은 거죠. 결국 족보는 못 찾았죠. 뿌리 없는 집안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족보 속에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제는 어떤 고난,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자를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으셔요. 이게 우리의 믿음이에요.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바라봐야 돼요. 그리고 두 번째는 오늘 내게 주시는 이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돼요. 여기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발판으로 해서 하나님이 오늘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가셔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려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해요. 은총의 족보 속에 들어있다면 오늘 나의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죠.
지난 100년의 중국의 역사도 처참했지만, 그리고 수천 년 전 마태복음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역사도 처참했지만, 사실은 오늘 우리 사회도 만만치 않아요. 지금 한국사회는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1위요, 출산율 최하위에요. 우리의 상황을 말해주는 거죠. 손에 쥐고도 행복하지 못한 사회가 우리 사회에요.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지 않습니까? 며칠 전에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제가 얻어다가 읽어봤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출마를 해서 표를 얼마를 얻든지, 이리 되든지 저리 되든지 여야간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게 될 거예요. 거기에는 오늘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한국 사람들의 열망과 욕구와 이런 것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죠. 어떤 모양으로든 우리 사회를 한 번 넘어서게 하는 계기가 되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자기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고 자기 자리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서 눈을 열고 거기에 몸을 던지는 그런 자세가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크리스천에게는 더더욱. 우리 사회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셨어요. 마땅히 투표도 제대로 해야 돼요. 우리의 권리를 다 행사해야 돼요.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정말 기도해야 돼요. 정치권력이라고 하는 것만큼 인간의 욕망을 송두리째 다 드러내고 그것을 위해서 남을 짓밟으려고 하는 이런 풍토를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죠.
제가 아는 선교사님 중에 인도에서 10년 사역을 하는 이경훈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저에게 늘 선교편지를 보내는데 최근에 받은 선교편지를 읽어보니 ‘연일 45도씨 이상의 불볕 더위 때문에 땅은 바짝 마르고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비가 쏟아지는데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고 습기가 차서 사우나에 앉아있는 것 같은데 매일 3시간씩 정전이 됩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하루 온종일 정전이었습니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단기 선교팀들이 그곳에 오면 아주 엄청나게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편안하고 평범하던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런 것도 모르고 불평했던 것을 거기에 가서 회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해요. 한국에서는 얼마든지 넉넉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제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고통이면서 동시에 얼마나 은혜인지. 지난 날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필요를 일마다 때마다 다 채워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불평하며 살았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가 하는 것을 깊이 고백한다고 하는 편지를 읽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교회를 두셨어요. 그것은 참 놀라운 신비에요. 교회 안에 온 사람들이 거룩해서가 아니에요. 전혀 아니에요. 교회가 거룩한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거룩한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그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늘도 우리의 걸음을 이끌어 우리 개인에게 이런 가정의 문제가 있고 이런 문제 속에서도 이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주목하게 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은혜를 덧입게 하고 이번에는 이 고통을 통해서 나로 하여금 오히려 우리 사회의 아픔을 더 뼈저리게 알게 하고 이젠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다 드려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두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총의 족보 안에 우리의 생명을, 우리의 이름을 기록한 자로 우리가 오늘도 은총 가운데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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