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1일 주일예배
만남의 축복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후 그를 보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0:34~43)
오늘은 우리 찬양대에 감사를 드립니다. 늘 찬양을 귀 기울여 듣고 은혜를 받는바 이지만 오늘 불러주신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축복의 찬양이 되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지순례를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시내 산이 있습니다. 그 시내산은 바위 돌산이고 낮에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해가 너무 뜨거워서 보통 밤 11시, 12시에 올라가는데 너무 높기 때문에 낙타를 타고 올라가다가 중간에 낙타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지점에서는 이제 내려서 한없는 돌계단을 밟아 몇 시간이고 올라가다보면 정점에 서게 되죠.
그리고 조금 기다리면 이제 동이 터 오르는데 그 어둠이 물러가고 동이 트는 순간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주위에 눈에 걸릴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바위들밖에 없어요. 그래서 역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로구나 하는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사람 눈에 아름답고 많은 것이 눈에 걸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없죠.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주실 때 그 바위산 꼭대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나타나시고 저를 만나주셨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우리 한마음교회에 온지 오늘로 정확하게 10년 됐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지난 10년을 이렇게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다시 한 번 바위산 꼭대기에 하나님 앞에 홀로 선 것 같은 그런 마음입니다. 오늘 찬양이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셨던 그 첫사랑의 음성을 다시 기억하고 첫사랑을 회복하고 초심을 다시 한 번 회복하는 그런 시간이 되라고 하나님이 벌써 제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제가 남은 시간을 그렇게 살아가고자 다짐하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며칠 전에 반둥을 다녀오다 보니까 한 열대 이상의 관광버스들이 경찰차를 앞세우고 좍 길을 열고 나가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거기 글귀가 있어요. 성지순례 가는 차량이에요. 반둥지역에서 성지순례를 가는 팀들이 가는 것이죠.
여러분, 이번 주간이 이 회교도인들의 성지순례 '하지(hajj)' 기간 이예요. 정확히 얘기하면 23일 밤부터 시작해서 27일까지 성지순례라고요. 회교도인들의 다섯 가지 신앙원리를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첫 번째는 우리의 사도신경 같이 그 사람들도 신앙고백이 있잖아요. 알라만이 참신이고 무하마드는 그의 선지자다. 날마다 고백해야 되죠. 두 번째,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해야 되죠. 세 번째는 일 년에 한 달은 단식해야 되죠. 원래는 물도 마시지 말고 기도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 구제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평생에 적어도 한번은 성지순례를 해야 되잖아요. 다른 때 갈 수도 있지마는 특별히 이 기간에 가는 성지순례를 ‘하지(hajj)’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메카에 또 200만 정도가 모였어요. 매년 전 세계에서 모여들고 또 간혹 그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압사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죠. 그래서 나라마다 인구의 1%를 제한해서 쿼터(Quota)를 배정하는데 인도네시아가 가장 회교도 인구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쿼터(Quota)가 크다고 그래요. 20만 할당을 받아서 간다고 합니다.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오고가는 먼 길이고 그런 길에 죽는 사람도 많이 있죠. 또 가서 5일간 이루어지는 성지순례에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거냐? 메카에 신전이 있지 않습니까? ‘카바(kaaba)’라고 하는 검은 돌을 중심으로 세워진 신전인데 그들은 아브라함이 그걸 지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 그 성지순례에 여러 가지 오고가고 움직이고 하는 여러 가지 행위들이 있습니다마는 그 가운데 보면 아브라함의 첩이었던 하갈이 이스마엘과 더불어 집에서 쫓겨나간 후 광야에서 물을 찾아 헤매던 그 고통을 기억하기 위해서 거기 몰려든 사람들이 일곱 바퀴나 왔다 갔다 하면서 물을 찾는 그 동작을 재현하기도 하죠. 그리고 드디어 하이라이트는 26일 ‘Idul Adha’ 희생제에요. 그날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소, 양 잡고 예배를 드리고 짐승을 잡지 않습니까? 피를 뿌리고 고기를 나누고 뭘 의미합니까?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희생 제물로 바쳐야했던 그 상황을 재현하는 거예요. 바로 그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에서 있었던 그 사건이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 것을 역설적으로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오히려 알게 되는 것이죠. 생각해 보십시오. 100세에 얻은 아들을 이제 어느 정도 자라서 청소년이 된 그 아들을 하나님이 ‘내게 제물로 바쳐라’ 요구했다는 말씀이에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해할 수 없어요. 왜 하나님이 이방신같이 아들을 바치라고 할까? 거기엔 의도가 있는 것이죠. 이해할 수 없는 그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거죠. 내 이성과 내 판단과 내 경험으로는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 이제까지 내 삶을 이끌어왔던 하나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내가 그분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이성과 경험과 판단에 의거해서 내 스스로 결정할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모순 가운데 서게 하신 거예요.
우리 성도들 구역마다 기도제목을 받아서 죽 읽어보면 사실 하나하나가 다 제 마음에 다가옵니다. 다 낯선 이야기들이 아니거든요. 남편사업이 잘되기를, 지금 잘된다 할지라도 내일을 알 수 없음으로 잘되기를, 또 직장을 바 꾸시는 분들도 있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또 아이들 공부하는 일, 학교에 잘 적응하는 일, 특별히 입시를 맞아가지고 지금 좋은 결과를 애타게 기다릴 때 그 엄마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차례가 정해져 있듯이 기도제목을 보면 가족가운데 아픈 분들이 있어요. 연로하신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또는 형제 친척가운데 아픈 사람이 있거나 또는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손쓸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기도제목들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하나님 앞에 바치라는 그 명령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 상황은 몇 천 년 전 옛날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이에요. 또 우리가 혹 남 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일는지 모릅니다만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사업이 되고 안 되고 혹 이런 것은 능력의 문제라고 얘기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사실 그것도 노력의 부분도 있지만 타고난 부분도 있는 거잖아요. 이번에 그 성품과 인격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능력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인격이에요. 우리의 기질의 문제에요. 이것도 상당부분은 타고난 부분이에요. 어려워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게 하나님의 은혜다’ 고백해요. 어떤 분들은 그러더라고요. 저를 잘 모르니까 절보고 아주 목사로서는 딱 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기분 좋으면 제가 교만할 땐 ‘그런 가 봅니다’ 그래요. 그러나 냉정하게 하나님 앞에 서면 ‘당신도 틀렸고 나도 틀렸다’ 아니요 알 길 없어요. 제가 가장 은혜 받는 대목이 모세를 하나님이 부르신 사건이에요. 모세는요 성경을 잘 읽어 보면 성격유형으로 아주 날카로운 사람이에요. 우울질이에요 우울질 나 같으면 하나님이 나타나서 그런 이적을 보이고 하라고 하면 할렐루야하고 따라갈 것 같은데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못한다는 거예요. 난 말 못한다는 거예요. 왜 이제 나타나서 날 이렇게 번거롭게 하느냐는 거예요. 사실은 모세는 하나님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거예요. 내 80년 인생 다 망가뜨려놓고 나타나가지고 뭐 무슨 가나안이고 뭐고 난 못한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이렇게 너무 땡깡부리는 사람은 하나님도 방법이 없으니까 좀 달랩니다. 형을 붙여주기도 하고 마음을 달래기도하고 내일 혼낼지라도 오늘은 할 수 없어서 그 마음을 사려고 하죠.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너무나 인간적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이 시퍼런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시면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아마 다 엎드려져 죽었을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만 광야에서 엎드려진 게 아니라 우리가 다 그렇게 됐을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 그리하지 않으세요. 정말 그분은 우리를 피를 쏟으며 아기를 낳은 엄마의 마음으로 우리를 끝까지 끌어들이시는 거죠.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뭘 발견 합니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여러분, 저나 여러분이나 간절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오늘 기도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그 약속을 믿음으로 붙드세요. 그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그 원형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하나님 앞에 희생 제물로 드리려했던 그 일의 원형이에요. 하나님이 그런 거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먼저 그의 아들을 그렇게 내어놓는 그런 사랑을 베푸셨기 때문이에요. 한번 깊이 병들어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마음이 찡해요. 저는 안수 받고 단독목회를 할 때 너무너무 어려운 과정을 겪은 경험이 있어요. 목회라는 게 이게 자기 잘나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 그 연약한 목회로 인해서 고통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제가 절대로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 하나님의 연단 속에 있는 거예요. 누구는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죠. 뭘 잘못하고 뭐가 틀렸고 그게 맞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고요.
성공의 네 가지 비결이 있어요. 첫째는 지능이에요. 아무래도 이건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거예요. 머리 좋게 태어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야 낫겠죠. 두 번째는 지식이에요. 그 다음에 배움의 기회를 얼마나 갖느냐가 또 얼마나 중요해요. 우리가 이미 우리부모님 세대로 그렇습니다만 참 그분 똑똑한 분인데 그만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해가지고 이 세상사는 동안 딱 맞는 일을 못하고 그냥 고생한 경우를 얼마나 많이 봅니까? 그러나 그 다음 단계는 지혜에요. 이상하죠. 사람이 많이 배운 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정말 지혜가 되는 건 또 다른 얘기에요. 꼭 많이 배웠다고 지혜로운 게 아니에요. 배움이 별로 없는데도 참 지혜로운 분들이 많아요. 차라리 그거 덜 배웠으면 사람이 겸손해 질 텐데 그거 배운 거 때문에 교만해 가지고 자기를 망치고 사람을 망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거예요. 지능과 지식과 지혜 그리고 마지막은 태도에요. Attitude 태도에요. 인생을 바라보는 자세에요. 우리의 삶은 내 노력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은총 속에 생명도 건강도 가정도 모든 일이 하나님이 붙들어주시고 인도해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이 결론이기에 기쁜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고 뭐 이런저런 많은 일이 있지마는 그 마음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겸손한 것 자세라고요. 자세에요. 그건 하나님만 아세요. 그 자세가 되어 있느냐 하나님이 결국 언젠간 죽을 우리 인생을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살게 하시면서 이 땅에 살게 하시고 저리로 보내시고 이런 사업을 하게 하시고 이렇게 하시고 하는 이런 모든 것은 어찌 보면 알고 보면 이거는 겉모습이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갖춰야 할 자세를 배우는 인생으로 걸어가게 하시는 거예요. 몇 년을 살던지 어디서 살던지 무슨 일을 했던지 그런데 참 우린 연약해서 있으면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자랑하게 되고 그것이 과하면 교만하게 되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육체에 다 가시를 하나씩 주신 거예요. 그게 건강이든 그게 늘 사업을 해도 실패를 하게 되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늘 깨지게 되던 그런 것이 결국은 다 내 책임이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어요. 나로 하여금 결국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오늘 우리가 이 사도행전 10장의 말씀을 죽 읽어보니 베드로와 고넬료를 이렇게 만나게 하는데 하나님이 아주 절묘한 방법을 쓰세요.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만나게 하신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그토록 만나기를 소원했던 고넬료에게 하나님께서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가장 인생의 결정적인 말씀을 하세요. 그게 사도행전 10장 38절이잖아요.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이란 말이죠. 우리가 어디서 살든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상황 속에 있든 지금 이 모든 일에 잘못과 원인은 나에게 있지만 이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내가 가난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을 사모하게 하고, 하나님을 부르게 하고, 찾게 하고 그럴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새롭게 믿음으로 붙들도록 예수님께서 모델이 되셔서 그 일을 하셨고 우리는 예수를 믿고 따라가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가도록 이게 핵심이에요.
그런데 오늘 여기에는 더 놀라운 일이 있어요. ‘고넬료가 이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회심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도 아주 여기에 중요한 내용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정작 그런 말씀을 전한 사도 베드로의 눈을 하나님이 활짝 열어주신 거예요. 즉, 하나님의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았던 이방인을 향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불붙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신 거예요. 여러분, 사도행전 2장부터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의 이야기를 한번 죽 읽어보세요. 성령이 충만하고 방언을 비롯한 많은 은사가 나타났고, 이적이 베풀어졌고, 사람들이 너무너무 기뻐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뭔가 2% 부족하지 않아요? 뭔가 부족한 거에요.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 속에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유대인을 위한 구원으로 이해한 거예요. 이 모든 것은 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이방인은 하나님의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성령으로 충만했는데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고방식의 틀은 이렇게 무서워요. 이거 벗어나기 어려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교회의 으뜸가는 지도자인 베드로의 생각부터 고쳐주시기 위하여 베드로를 이끌어 가세요. 사도행전 9장 뒷부분에 보면 베드로가 전도여행을 다닐 때에 저 지중해에 면한 바닷가에 있는 자그마한 룻다라고 하는 곳에 가서 보니 중풍병자 애니아를 만납니다. 8년 동안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예수이름으로 그를 고쳤어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거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하게 됐죠.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아요. 룻다 보다 조금 더 바닷가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욥바라고 하는 곳인데 욥바에 주님을 잘 섬기던 다비다 라고 하던 사람이 그만 죽었어요. 그를 너무너무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이웃동네에 베드로가 온 것을 알고 급히 사람을 보내가지고 그를 불렀어요. ‘빨리 오셔서 여기 다비다가 죽었는데 이를 어떻게 좀 손을 데어 주십시오.’ 말도 안되는 요청을 한거죠. 베드로가 와서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어떻게 합니까? 저를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잖아요. 그리고 놀랍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선포하죠. ‘다비다야, 주께서 네게 명령 하신다 일어나라’ 그런데 다비다가 일어났단 말이에요. 살아났단 말이에요. 그러니 어떻게 됐겠어요. 그 소문이 막 퍼져나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에요. 이제 더 중요한 일이 일어나요. 그 욥바라고 하는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이번엔 가이사랴가 있고 가이사랴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로마군이 거기에 머물고 있었어요. 사실 로마군은 예루살렘에 머문 게 아니고 가이사랴에 머물고 있었어요. 거기가 해군사령부요 육군사령부에요. 거기에 리더 백부장이 바로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뜻밖에 이 고넬료라는 사람은 아주 학식이 깊은 사람이고 경건한 사람이어서 유대 땅에 와서 유대인의 문화를 살피다가 하나님에 관한 것을 알게 되었고 경전을 읽게 되었고 더 깊이깊이 날마다 들어가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제 베드로와 고넬료가 서로 만나도록 역사 하십니다. 먼저 베드로가 기도할 때 환상을 보여주시잖아요. 점심시간이 되어서 기도하는 중에도 배고픔을 느끼고 있을 때 하늘에서 웬 바구니가 내려오고 거기에는 그릇이 담겨있었는데 그 안에 보니까 구약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걸 잡아먹으라.’ 베드로가 말 합니다 ‘주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약말씀에 보면 이런 것들은 부정한 것이니 절대로 손대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이런 더러운 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하시죠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왜 더럽다고 하느냐’ 이 일이 이런 환상이 세 번이나 반복 되요.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이지?’ 할 때에 문밖에 사람들이 와서 베드로를 찾는 거예요. 만나서 얘기를 해보니 고넬료라는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이에요. 고넬료 역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말씀하시기를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서 베드로라는 사람을 찾아라. 그를 데리고 와라 그가 너에게 전할 말씀이 있다’ 이렇게 해서 만난 거예요. 놀라운 만남이죠.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한 거예요.
여러분, 이제 잘 들으세요. ‘정말 예수가 내 인생에 그리스도요 주님이시다 ’라고 고백하는 것은 8년 중풍병으로 고통당하다가 고침 받은 것보다 죽은 다비다가 살아난 것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에요. 다비다가 살아났지만 그는 또다시 죽었어요.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의 육신이 죽어도 다시 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누리게 되요. 그리고 천국 가서 있을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천국을 미리 맛보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게 된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에요. 그리고 이제 베드로가 말합니다.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이렇게 말하잖아요.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이렇게 오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나를 보내셔서 내가 여기 왔는데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는가?’ 고넬료의 얘기를 다 듣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아, 내가 이제 알았노라.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아니하시고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찾는 모든 자에게 구원이 되심을 내가 발견했노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에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셨어요.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요. 그리고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에 돌아가서 이 이야기를 하게 되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던지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고넬료가 환상을 보고, 서로 만나고, 복음을 전하고, 예수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임하시고 하는 사건을 사도행전 10장과 11장에 거듭해서 반복해서 다시 설명하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다시 그것을 구구절절 다시 다 설명하는 거예요. 베드로가 말해요 ‘내가 이제 깨달았도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하나님이 하신 이 모든 일을 전할 때에 비로소 예루살렘 교회가 그 문제를 공식적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아,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시도록 계획을 세우셨구나. 이거는 아주 놀라운 일이에요.
이번 금요일에 ‘한마음 대잔치’를 하는데 이게 ‘Idul Adha’ 그 날이에요. 회교도인들은 다 가서 소 잡고 양 잡는 그 결정적인 의식을 하는 그날 우리는 여기서 예수 믿은 자로서 하나님의 부름 받은 백성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예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예요. 의미가 있지 않아요? 그저 공휴일이라고 시작은 그렇게 했지만 알고 보니 그렇게 된 거예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날 준비하는데 보세요. 기도하는 분은 기도하는 거고 이제까지도 우리가 계속 기도 해 왔잖아요. 또 앞장서서 준비하는 분은 준비하시는 거고 또 많은 분들이 상품으로 돈으로 후원했어요. 저는 너무 상품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알고 기쁨으로 우리가 다 같이 나누길 원해요. 여러분 다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그 날 우리는 아브라함같이 우리의 인생의 모든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우리가 선포하기를 원하고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과 같이 우리의 앞으로의 모든 일들을 성령께서 인도하신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뻐하면서 우리 교회가 그저 우리만의 교회가 아니라 그런 일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는 한인사회 한복판에서 한인사회를 섬기면서 또 그리고 앞으로 변화되는 한인사회를 우리가 기도하면서 이끌어가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간절해집니다. 그것은 어떤 교회냐 하면 정말 믿지 않는 사람까지도 인정하는 교회 그게 제 기도 제목이에요. 믿지 않는 사람까지도 그래 하고 인정하는 교회 정말 하나님 보실 때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 그러면 어떤 분들이 그러죠. 뭐 말로야 하겠어요. 속으로 그러겠죠. ‘아유 제 주제를 알지. 지금 우리 형편이 이렇고 저렇고......’ 그렇죠. 그걸 누가 모르나요. 그러나 여러분 아세요? 6.25전쟁 때 어떻게 됐어요? 전쟁이 급박하니까 막 차출되어 나갔잖아요. 집안이 평안한 사람 이제 집안문제가 다 해결된 사람 중에서 아들 뽑아서 보냈습니까? 아니요 다 전쟁 와중에 어렵고 힘들어도 또 나라를 지켜야 되니까 아들 하나씩 내보내서 싸우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상황과 문제는 다 있지만 그런 중에서도 우리의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맞추지 않고는 안돼요. 똑같은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비즈니스도 자녀를 기르는 일도 이 모든 거 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운데 이 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실 것인가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한마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철저하게 한인사회를 놓고 같이 기도하고, 협력하고 그렇게 하면서 책임지며 나아가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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