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21230 에벤에셀의 하나님(삼상7:9-14)[WPA기도성회 섬긴 것 기념비적 사건]/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6. 3. 11:33

121230 에벤에셀의 하나님 (삼상 7:9~14)

성경본문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여러분,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죠. 주일 밤에도 하고 제가 가끔 봅니다. 요즘 즐겨보는데 그 가수들을 한 사람씩 탈락을 시키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긴장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부르겠습니까? 긴장감을 어떻게 이기며 노래를 부르는가도 흥미롭고 더 놀라운 것은 한 5분밖에 안 되는 노래 한 곡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주목하게 됩니다. 얼마나 공감을 하면서, 때로는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게 내용은 다 비슷비슷 하잖아요. 다 깨진 사랑 얘기 아닙니까? 그러나 높든 낮든 그 가사를 담아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벌써 눈물이 고이는 거예요. 왜 그럴까? 그거야 물론 잘 하는 가수들의 최고의 음향시설의 라이브무대를 경험하면 그렇게 되죠. 라이브무대는 대단한 거예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청중들이 이미 예전에 자기들도 즐겨 불렀고 그 노래 속에 담겨있는 그 가사와 그 아픔을 연애와 깨어진 아픔 속에서 이미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그것을 끄집어내어 주기 때문이겠죠. 참 도전이 많이 됩니다.

저는 목사니까 어쩔 수 없이 늘 예배와 연결시켜서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저렇게 집중하고 예배할 수 있을까?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사무엘이 말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 오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비극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요. 여러분 하나님을 얼마나 기대하세요? 말씀을 너무 몰라서. 제가 아까 <나가수> 이야기했습니다만 사실 저는 그런 노래를 불러보지를 않아서 잘 모르겠더라고요. 다행히 가사가 자막에 쓰여져 있으니까 그나마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알죠. 저도 집중해서 들으니까 감동은 오는데 그런 감동이 아니라 이미 그런 노래 속에 젖어서 아픔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예열될 시간이 필요가 없죠. 가수가 와서 서기만 해도 소리를 지르게 되고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몰라서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요. 우리 인생을 부르실 분도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에 대해서 기대감이 없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말씀을 모르니 예배를 소홀히 해요.

여기 이스라엘 백성이 2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법궤가 저 국경 근처 어느 집에 방치되어 있었어요.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법궤를 빼앗겼어요. 그리고도 그것을 제대로 수습을 못했어요. 말씀이 방치되었어요. 엘리제사장은 몸이 비대하고 나이 들고 눈 멀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굉장히 영적인 의미가 있는 거예요. 어두운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그의 자식들은 대를 이어 제사장이었지만 자기의 사욕만 취하려 하는,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께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엘리의 두 아들이 죽게 만들잖아요. 예배를 소홀히 하면 정말 무서운 것이죠. 축복과 권세가 말씀과 예배 가운데 있는데 그런 것을 다 잃어버리고 고통과 탄식 속에 빠졌고 블레셋의 지배 가운데 있어서 그들에게 수탈을 당하고 정치적 억압 가운데 있는 것이죠. 돈이 말라버렸어요.

오늘 우리의 삶이 어떠합니까? 글로벌 경쟁시대인데요, 여러분 가운데 제 아무리 큰 기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장담할 수 없어요. 언제 한 순간에 어떤 폭풍우가 밀어닥칠는지 몰라요. 소니 추락하는 걸 보시지 않았어요? 노키아가 추락하는 걸 보시지 않았어요? 사무엘이 말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 이방신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를 건지시리라. 이 말씀은 사무엘 시대에만 유효한 말씀이 아니에요.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죠. 여기 이방신, 결국 이방신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달라고 우리가 만들어 놓은 나무상, 돌로 깎아 만들어 놓은 석상들이죠. 현대인들은 공부했으니까 그렇게 무식한 짓은 안하지만 자아라고 하는 자기 우상이 시퍼렇게 살아서 돈을 쫓고 있죠. 마태복음 6장 24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셔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과 돈을 함께 주인으로 섬길 수 없다. 다 돈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어요.

그저 용서하고 들으십시오. 저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보기 때문에 헌금보고도 제가 받거든요. 온전히 십일조 해야 됩니다. 적당히 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온전히 해야 돼요. 교회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돈주머니가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다. 그거 맞는 말이에요. 하나님을 그렇게 우습게 알고 적당하게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하시겠어요? 오해죠. 첫째는 오해에요. 내가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이걸 또 덜어내면 어떻게 살까? 사람이니까 그런 염려와 근심이 올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도전하시잖아요.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안 살아계신가 한 번 시험해보라.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내어드려라. 그러면 마르고 마른 그 땅에서도 하나님이 너희의 필요를 채워주시리라. 오해에요.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바로 해야 됩니다. 오늘이 2012년 마지막 주일인데요, 여러분 2013년에 어떻게 예배하시겠습니까? 이것부터 시작하세요. 가장 직접적이에요. 돈을 주인으로 삼는 이 세상 속에 내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긴다고 하는 나의 결단을 담아서 온전한 십일조를 하세요.

또 하나, 우리가 이제 오늘로 이런 방식의 예배는 마지막이에요. 우리가 10년을 이렇게 예배드렸잖아요. 아주 전통적인 장로교회의 예배방식이에요. 그런데 이제 많은 분들이 지금 세상도 많이 변하고 문화도 많이 변해서 그런 예배가 주는 장점이 있지만 예배를 조금 바꾸어서 함께 같이 참여하고 찬양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어느 게 맞고 어느 게 틀린 게 아니에요, 문화적인 선택이니까. 하긴 저도 제가 은퇴하면 가운을 벗겠지 생각했는데 여러분이 뜻을 모아주셨기 때문에 당장 내일 모레 1월 1일 신년예배부터는 가운을 벗게 됩니다. 이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죠. 그리고 우리가 예배 앞부분에 경배와 찬양을 하게 됩니다. 찬양을 드림으로 또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향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을 기뻐하고 하면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또 새로운 예배 순서에 기도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남자분들만 기도했지만 이제는 권사님들도 기도순서에 같이 해서 다시 기도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성경봉독도 모든 집사님들과 교우분들이 참여하실 수 있도록 다 계획을 짰습니다. 그래서 차례차례 한 번씩 기회가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같이 참여하도록. 그리고 이제까지 헌금특송은 성가대원만 했는데 이제 그렇게 하지 않고 성가대원들도 할 수 있지만 구역끼리도 할 수 있고 또 교회 부서들끼리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연결되어서 우리가 전심으로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열린 예배가 되겠지요.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면 안돼요. 예배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참 중요하죠. 문화적인 선택이고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죠. 그러나 전심으로 예배하는 것이 빠지면 안돼요. 그러면 아무리 뭘 바꿔도 소용이 없는 것이죠. 우리가 10년 전에 처음 창립예배를 드리고 시작할 때, 수요예배를 아침에 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아침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몇몇분이 남자들도 참여하게 수요일 저녁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고 그래요. 마음이야 참 아름답죠. 우리 아침에 예배가 있는데 저녁에 예배를 드리면 너무나 많은 여자분들은 다 집에 매여 있어서 오시기가 어려울텐데도 저녁 예배를 드리자고 몇 분이 목소리를 높이셨기에 제가 양보했어요. 그러면 아침 예배는 그냥 놔두고 저녁 예배를 드립시다. 어떻게 됐는지 여러분 기억하세요? 첫 날 저녁에 한 십여 명 왔어요. 그 다음 수요일 저녁에 한 반 왔어요. 마지막 네 번째 날, 세 사람이 왔는데 누가 왔느냐 하면 설교자, 반주자, 회중 한 사람이 왔어요. 대표로. 예전에 제가 책욕심이 있으니까 공부하다가 책이 있잖아요? 그러면 이 책을 사려고 막 돌아다니다가 책을 삽니다. 책을 사들고 감격에 절어가지고 집에 옵니다. 책꽂이 꽂고 나니까 너무 힘이 빠져서 그 책을 못 읽는 거예요. 한 십 년 동안. 우리가 그런 거예요. 마음은 좋은데 그것을 끝까지 지켜야 되잖아요.

예배 스타일이 1월 1일 신년예배부터 바뀝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결정을 했으니 우리가 다 같이 참여해야 돼요. 이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 전통예배는 10년이 지나오는 동안에 교회에도 나이가 있는데, 예배분위기에 나이를 매길 수가 있는데, 우리는 55세 분위기에요. 그래서 이래가지고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 우리는 편하고 이렇게 칠십까지 아무 상관도 없지만 우리 다음 젊은 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과감하게 벗자고 했어요. 예배의 나이를 35세로 낮추기로 했다고요. 제가 예전에 서만수 목사님이 계실 때, 연합교회에 가보면 찬양할 때 제가 속으로 ‘목사님 참 대단하시다.’ 저는 찬양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도 새로운 찬양곡들이 많이 나와서 따라갈 수가 없어요. 우리 서목사님이야 한 세대 전이니까 더 하시지 않겠어요? 그래도 변화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불편함을 다 감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젊은 세대를 위해서 그런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돼요.

예전에 ‘장윤정’이라고 유명한 가수가 한 번 자카르타에 공연하러 왔잖아요. 말도 잘 하고 관객들을 사로잡는 솜씨가 탁월한데 저는 그때 가지는 못했습니다만 후문을 들으니까 땀을 엄청나게 흘리고 갔대요. 반응이 없어가지고. 자카르타 분들의 특징이 반응이 없다는 거예요. 결정은 내가 했으니까 여러분이 한 번 해보세요. 그러면 안돼요. 저는 이제 두 달은 경배와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정 여러분이 못마땅하시면 우리가 투표할 수 있는 거니까. 같이 투표해서 전체가 원하는 것을 택하도록. 우선 중직자들이 결정을 했지만 전체의 반응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얼마나 감사한지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의 말을 듣기 시작했어요. 7장 2절에 보니까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해서 가난한 마음이 되어서 사무엘의 권고를 들어요. 블레셋에게 짓눌리고 돈이 말라버리고 이 고통 속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기에 이십여 년 이상 지속되는 이 상황 속에 너무나 가난한 마음이 되어서 사무엘의 권고를 받아들입니다. 이방신을 버리고 돈을 버리고 돈주인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건지시리라.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읍니다. 미스바에 모여서 전심으로 같이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새롭게 다스립니다. 믿음으로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죠. 미스바 기도성회에서 사람들이 다 고백합니다. 우리들이 범죄하였습니다.

여러분, 무슨 죄를 범했겠습니까? 두 가지에요. 죄를 크게 나누면 둘이에요. 우리의 몸으로 짓는 우리의 욕망과 욕심을 따라 행하는 몸이 범하는 죄가 있겠죠.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우리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획을 외면하고 내 뜻, 내 방법대로 하는 자기 의를 내세우는 그것은 더 무서운 죄에요. 사람들은 참 잘한다고, 그건 선한 일이라고. 여러분, 선한 일은 세상에서는 선하다고 얘기해요. 그러나 그게 정말 오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하는 것을 잘 생각해봐야 돼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이 말씀에 분명이 있으므로 그 말씀을 듣고 기도하여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기를 가르치고 계시는 것이죠.

사무엘이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법을 가르친 거예요. 그래서 같이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는데 바로 그때 블레셋이 공격해 옵니다. 믿음으로 좀 살아보려고 하면 반드시 시험이 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예수 처음 믿는 사람들이 어려운 거예요. 교회에 못 갈 일이 매주 생기는 거예요. 그것을 딱 디디고 넘어서야 되는데 꼭 그런 날 손님이 찾아온다든지 아프다든지 그것을 이를 악물고 한 번 넘어서야 되는 것이죠. 믿음으로 살려할 때 시험이 와요.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물러서지 않고 쉬지 않고 부르짖어 전심으로 기도할 때 마지막 순간에 응답이 돼요. 자동문과 같아요. 자동문이 있습니다. 고급빌딩일수록, 멋있는 빌딩일수록 문은 자동문이에요. 여기서 아무리 쳐다봐도 문은 열리지 않아요. 그냥 죽 걸어가서 마지막 감지기가 있는 그 자리에 서면 정확하게 열려요.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그것을 경험한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큰 돌을 세우는 것입니다. 기념비를 세우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오늘 이 시간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에벤에셀의 하나님’ 하는 겁니다. ‘에벤’이라는 말은 돌이라는 말이에요. ‘에셀’이란 말은 돕는다는 말이에요. 도움의 돌이에요.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도우셨다. 저는 2012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올해 우리가 WPA세계기도성회를 섬긴 것은 우리 교회와 우리 신앙의 역사에 있어서 우리 개인의 인생의 역사에 있어서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기억할 만한 기념비를 세운 것과 같아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우리교회는 사실 별로 잘 하는 게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우리 교회를 들어가지고 하나님이 그 놀라운 일에 쓰셨을까? 여러분 가운데 참여하신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보신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그러나 사람의 눈은 하도 어두워서 사람이 많이 모이고 또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다고 하는 것만 보지 그 진정한 의미를 잘 보지 못해요. 그러나 언젠가는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그저 비유해서 말한다면 2002년 한일 월드컵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여서 응원하셨던 것을 기억하세요? 거기 나가셔서 응원해보셨어요? 만약 그러셨다면 그 뛰는 가슴을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놀라운 사건이 WPA였던 것이죠. 그걸 하나님이 우리로 마치 물을 떠다 날러 포도주로 바꾸는 하나님의 사건에 심부름을 맡은 종들 같이 우리를 쓰셨어요. 너무나 감사해요.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블레셋을 막으셨고 블레셋에게 빼앗긴 모든 땅을 회복하게 하시고 진정한 평화를 주셨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사무엘이 기도하는 사람이잖아요. 우리가 믿음으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셔요.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깨어진 부부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가정에 평화를 주시고 일터를 회복시키시고 건강을 회복시키시고 삶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부족하지만 올 한 해는 우리가 기도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2013년에는 신앙의 기본을 다시 세운다는 뜻으로 말씀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우리가 성경을 말하지만 정작 성경을 열어 말씀을 읽고 또 공부하고 또 그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오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새해 계속해서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실 수 있도록 성경읽기표를 드렸습니다. 다 하나씩 쓰시고 부지런히 읽어서 내세요. 제일 빨리 내는 분에게 상을 드리고 제일 늦게 내는 분도 상을 드리고 구역별로도 모아서 우수구역을 시상할 것이고 또 부서별로 어느 부서가 제일 열심히 했는지 시상할 것이고, 마치 어린 아이 같이. 제가 도전받은 말이 있어요. 예수 믿는 건 좀 미련하게 믿어야 돼요. 그렇게 자기 머리를 굴려가면서 예수를 믿으면 그건 나중에 박이 깨져요. 우직하게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