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30106 복 있는 사람(시1:1-6)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6. 3. 16:18

 

130106  있는 사람 ( 1:1~6)      

성경본문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요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에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지난 런던올림픽에서 체조 금메달을 딴 양학선 선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제 나이 스물인데 얼마나 고난도 기술을 펼치는지 그의 이름을 따서1’이라고 하는 그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을 펼쳐 보였습니다. 정말 새처럼 날아서 무릎을 꺾지 않고 공중에서 몇 바퀴나 회전을 하고 사뿐히 내려 앉는, 그것도 인간이 꿈꾸는 하나의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지는 장면이죠.

그는 대표선수가 되어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가 내 꿈이 이루어졌으면, 내 꿈은 과연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의 꿈은 압축해서 행복한 삶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전통적인 유교에 오복이 있습니다. () 오래 사는 것이고, () 부유하게 사는 것이고, 강령(?) 평안하게 사는 것이고, 유호덕(攸好德) 사는 동안에 덕을 베풀면서 덕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고, 마지막 고종명(考終命) 수명대로 살다가 마지막에 죽는 것이죠.

성경도 인간이 어떻게 해야 행복한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시편에 복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은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눌 수 있어요. 모세오경, 율법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서부터 역사서가 있고, 또 선지자들의 이야기인 선지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서와 선지서는 구분하기도 하지만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역사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 속에 어떤 일을 펼치시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행동하는 계시라고 한다면, 선지서라고 하는 것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직접 드러낸 계시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둘 다 묶어서 예언서, 선지서라고 하는 것이죠. 마지막 하나는 뭐냐면 거룩한 문서들, 성문서라고 얘기합니다. 인간의 신앙에 관한, 삶에 관한 고백들을 담아낸 책인데 성문서에 해당하는 것이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입니다. 마치 다른 말씀들이 율법서와 선지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주시는 말씀이라고 한다면 이 다섯 가지 책은 그러한 하나님의 계시와 역사와 말씀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어요. 그것도 다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잠언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분위기가 느껴지셔요? 사회가 안정되고 탄탄하게 희망찬 미래를 가지고 나아가는 그런 분위기를 깔고 있어요. 그런데 벌써 전도서를 읽으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다 헛되도다왜 이런 얘기를 할까요? 앞을 볼 수 없는 불안정한 시대가 된 거예요. 혼탁한 시대가 된 거예요. 이럴 때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라.’ 악인이 되지 말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의인도 되지 말라, 뭘 다 아는 것 같이 이야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세상이 불확실하므로 그러므로 너는 이제 모든 것이 다 때가 있으니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니 그 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니 너는 겸손하게 마음을 낮추고 오늘 하나님이 너에게 나누어 주신 그 복을 받아서 수고하고 땀을 흘리고 하나님이 주신 그 복을 가지고 네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겸손을 얘기해요. 시대가 불확실하므로. 이제 하나 더 들어갑니다.

욥기가 되면 고난의 시간이에요. 나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은 도대체 설명할 길이 없어요. 심지어는 주위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다 했던 그 아내까지도 말하기를 당신이 그런 고통을 당하고도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하느냐?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까지 말할 정도로. 그러니 욥이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이 고난의 까닭은 무엇입니까 하며 가슴을 찢는 것이죠. 고난의 시대를 맞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깊은 뜻이 욥기서에요.

아가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노래라고 하는 뜻이에요.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에요. 거기에는 한 청춘남녀의 아주 깊은 사랑이 있어요. 그래서 연애하는 사람들이 아가서에 있는 글귀를 따다가 연애편지를 쓴다고 하지 않았어요? 양주동 박사가 예수 믿는다는 얘기는 제가 듣지 못했습니다만 오래 전에 TV에 나와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 젊은 시절에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연애편지를 자기가 아가서에 있는 구절을 끌어다가 편지를 써주었노라는 얘기를 합니다. 사랑이에요. 그 사랑은 뭘 말하느냐 하면 물론 당연히 우리의 삶 속에 젊은 날에 있었던 그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 사랑은 다시 한 번 말하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불 붙는 사랑을 청춘남녀의 사랑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뜨뜨미지근한 것이 아니에요. 성경이 말해요. 네가 젊은 날에 그토록 사랑했던 그 여인, 그 남자와의 사랑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은 그런 사랑으로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는 것이 아가서에 드러난 뜻이에요.

그러면 시편은 뭐냐 하면, 이와 같이 다양한 상황 속에 하나님을 향하여 사람이 펼쳐내는 응답을 다 모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시도 있고 기도도 있고 노래도 있고 찬송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편 첫머리 1편은 이 모든 인간응답의 주제를 함축해서 딱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 우리가 왜 예수를 믿습니까?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 세상 속에 재난도 많고 사고도 많고 어려움도 많고 또 많이 먹고 입는다 하더라도 만족을 얻기 어려운 이 세상 속에 어떻게 해야 정말 우리가 복 있는 인생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과 주제에 관해서 1편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의 이미지를 그려줍니다. 한 여름에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가지는 울창하고 열매를 맺고 그 곁에 물이 흐르고 땀을 뻘뻘 흘리다가도 나무그늘에 들어가서 쉴 수 있는, 그런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인생이 복 있는 인생이다. 그런 인생이 어떻게 가능한가? 악인의 꾀를 버리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즐겨 읽고 듣고 묵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런 복을 주시겠다. 여기 묵상한다는 표현, 히브리어로 하가라고 하는데요, 단어를 찾아보면 여러 용례가 있지만 이런 표현도 있습니다. 마치 개가 뼈다귀를 하나 얻었어요. 개한테 가장 행복한 거죠. 이 뼈다귀를 누구한테 빼앗길까 봐 이것을 물고 구석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뼈를 핥는 거예요. 그리고 잘 모셔놨다가 동네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뼈다귀 생각이 나면 들어가서 뼈를 핥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하나님 말씀 속에 네가 그토록 갈망하고 구하던 모든 것이 다 담겨있다. 그렇다면 말씀을 어떻게 읽을까? 똑 같은 말씀도 어떤 사람은 자잖아요. 신약보다 구약이 약효가 더 좋아서 잠이 안 올 때 구약을 읽으면 한 장도 넘기기 어렵게 자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을까? 제가 지난 성탄절 밤에 <Jesus Christ Super Star>라고 하는 유명한 뮤지컬이 있잖아요. 그게 얼마나 유명한지 여러 버전의 DVD가 나왔어요. 그 중에 좀 고전적인 것 하나를 골라서 봤습니다. 한 번 보세요. 사실은 그건 가룟 유다의 눈으로 본 예수에요. 그러니까 그 말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아주 평범한 몸을 입고 살아가는 인간의 눈으로 본 예수라는 것이죠. 거기에 겟세마네라고 하는 대목의 노래는 제가 그것을 듣고 정말 회개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는 대목을 우리가 다 알죠. “내 마음이 심히 답답해서 죽게 되었노라.” 평소에 하시지 않던 말씀을 하셔요. 제자들에게 너희도 같이 나와 함께 기도하자.”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같이 기도한다고 했지만 땀을 흘리고 땀이 피가 되도록 그렇게 기도하고 돌아와보니 제자들이 자고 있는 거죠. “이 짧은 시간도 너희가 나와 함께 기도할 수 없느냐? 정말 마음에는 원이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그렇게 말씀하시고 또 돌아가서 기도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내용을 팀 라이즈 라고 하는 사람이 당시에 20여세의 청년이었어요. 이게 71년도의 작품이니까. 그것을 표현해 낸 그 글귀를 보면 그 창의성이 너무 풍부해요. 정말 인간 예수로서 십자가를 져야 할 그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어요. 막 의심과 갈등과 그 죽음의 쓴 잔 앞에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든 인간의 모습을 대표한 한 인간의 처절한 고통이 있어요. “내가 하나님 당신과 함께 지난 3년 여기 이렇게 달려 왔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쏟아 부은 이 모든 것은 다른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했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 여기까지 왔건만 이제 내 앞에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시라 하시니 도대체 나는 이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과연 꼭 이것을 마셔야 합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나에게 밝혀 주십시오.” 정말 설명이 부족합니다. 창의력이에요. 제가 그걸 보니까 성경을 보는 눈이 넓어지더라고요. 성경을 다시 봐야 되겠다. 내가 너무나 피상적으로만 봤구나. 정말 단세포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성경을 봤구나. 좀 입체적으로 봐야 되겠다.

그러나 여러분 그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죠. 성경을 보는 눈을 열어주는 거죠.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성경을 보면 죽은 사람들이 가는 지옥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다시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려 하늘에 올라가셨다고 하는 것은 성경이 말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의 형제가 되시고 마치 하나님의 많은 자녀들 가운데 맏이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동생들이 되어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께서 경험했던 모든 고통과 함께 승리와 하나님의 은혜를 약속 받았다고 로마서에서 얘기하고 있어요. 예수님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뼈 아픈 고통도 겪으시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만족과 행복을 경험하신 분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과 우리의 모든 지식과 우리의 모든 것은 예수님이 몸으로 겪으셨던 경험 안에 다 들어와 있다, 그런 말이죠. 그런데 여러분, 누가복음 2 1절부터 보면 아기 예수 탄생의 드라마를 볼 때 놀라운 사건이 있어요. 거기 보면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가이사는 시이저, 아구스도는 아우구스투스, 여러분 세계사에 보면 줄리어 시저의 양아들이 옥타비아누스잖아요. 그래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제국을 통일하고 첫 번째 제국의 왕이 되잖아요. 황제가 되잖아요. 그래서 로마 원로원에서 그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존호를 바치잖아요. ‘이는 거룩한 자다. 이는 이제 인간이 아니고 신이다.’ 이게 아우구스투스 시대에요.

누가복음 2장의 예수탄생 이야기를 보면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시리아 지방 총독은 구레네였는데 그 시리아 총독이 다스리는 유대라고 하는 한 지방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 로마황제가 모든 로마제국 내 식민들은 다 자기의 본적지에 가서 호적하라. 호적하는 것은 세금을 거두고 군인을 징발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조사하는 거죠. 그 명령을 따라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의 본적지로 가야 되는데 거기 한 젊은이 요셉이 있죠. 그는 다윗의 후손이기 때문에 다윗의 본적지인 베들레헴으로 나사렛을 떠나서 약혼한 아내와 함께 가는 거예요. 아주 평범한 한 젊은이의 일상이 있어요. 거기에 정치가 있어요. 그 시대 상황이 있어요. 연도가 있고 장소가 있어요. 마치 신문기사에 나오는 것 같은 6하원칙이 있어요.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무엇을, 왜 했는가 하는 것이 낱낱이 그려져 있어요. 그들이 그렇게 갈 때 이미 마리아는 출산할 때가 가까웠어요. 모든 사람이 자기 고향을 떠나 호적을 하러 몰려드는 통에 여관에 묵을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마구간 말구유에 아기를 낳았다. 참 그것만 떼어서 보자면 눈물 나는 이야기죠. 그러나 여기 보세요. 동시에 성경은 그 다음 대목에서 이 땅에서 그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하늘의 광경을 다 보여주는 거예요. 베들레헴 빈 들에서 추운 밤에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시죠. 너희는 저 베들레헴에 들어가서 마구간 말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찾으라. 그 아기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다. 천사가 그 말을 선포하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천군천사들의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이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오늘 이 밤이 평화의 밤이로다. 이건 하나님의 뮤지컬이에요.

그리고 이 장면이 사라진 다음에 목자들이 어떻게 해요? “우리가 지금 본 이것이 과연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빨리 베들레헴 읍내에 들어가보자.” 같이 가서 말구유의 아기를 찾죠. 아기를 발견하게 되고 요셉과 마리아를 발견하게 되고 자기들이 이제까지 보고 들은 바를 다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했어요. 그리고 놀라워했다고 했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마리아는 이제까지 되어진 모든 일들과 연결시키면서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생각했다고 했어요. 말구유에 누워있는 어린 아기. 인간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가장 불쌍한 아이에요. 어쩌다 이렇게 어려운 세상에 태어나서 누울 때가 없어서 말구유에 누워야 했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증거로 말구유에 누워있는 거예요. 가장 가난한 자보다 더 가난하게, 병든 자보다 더 어려운 상황 속에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자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 빌립보서 2 13절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원과 하나님의 뜻이 함께 가는 인생,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고 남녀를 달리하고 빈부가 다르고 모든 상황이 다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자기의 인생 속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만나주시고 그들을 이끌어 주시고. 이제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자기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눈을 열어 보고 듣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았어요. 오늘 우리가 듣는 말씀들이 이게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에요. 여러분이 다 출생했고 이제까지 다 자랐어요. 그 모든 삶의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어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저 땅에 떨어질 수 없다고 하나님이 단언하셨어요.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고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우리의 모든 일이 하나님 손 안에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내가 예배하고 비즈니스를 하고 가정을 살아가고 하는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담겨져 나아가는가 하는 것을 깊이 살펴야 할 것입니다.

말씀 속에 내 인생의 행로가 있어요. 그러므로 올해 우리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말씀을 깊이 붙들고 읽기로 작정하고 성경읽기표를 나눠드린 거예요. 부지런히 읽으세요. 차례대로 읽는 분이 물론 제일 잘 하는 거지만 그렇게 되지 않잖아요. 그러지 마시고 여러분 마음대로 읽으세요. 그리고 부지런히 행하세요. 그리고 말씀을 주의해서 들으세요. 사실은 그것 다 여러분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안에 여러분의 인생이 다 있어요.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스토리를 읽을 때에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겠다는 거예요. 욥과 같은 고난 속에서 욥의 말씀을 읽을 때에는 여러분이 욥과 같은 고난 속에 들어갈지라도 내가 욥을 구원했던 것 같이 너를 구원하겠다고 하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생각을 여세요.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