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살아 있으라(미우라아야꼬=빙점, 길은여기에)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7. 31. 14:12

070701-살아 있으라. ( 16 1-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 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내가 너로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 그리스 신화를 아실 것입니다. 비록 철학 이전에 이야기로 표출된 것이지만 거기에는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생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 신화 가운데 오이디푸스는 인생의 비극을 대표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 도시국가가 흥망성쇠를 거듭할 때 그 역사를 보면 아테네가 주도권을 장악한 시대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스파르타, 그리고 그 다음에는 테베가 권력을 쥐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테베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테베 왕이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쁜 나머지 이 아이를 낳게 되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신탁을 물었습니다. 신의 계시를 물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불길한 신탁이었어요. 그 아이가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또 그 가정에 엄청난 불행을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왕은 고심 끝에 그 아기가 태어나기가 무섭게 시녀를 시켜서 산에 내다 버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발 뒤꿈치를 칼로 찔러서 빨리 죽도록 했지요. 그래 발뒤꿈치를 칼로 찔러가지고 내 던진 그 아이. 그러나 놀랍게도 지나가던 목동이 그것을 발견 합니다. 그리고 강보에 싸인 피투성이를 끌어안고 발 뒤꿈치를 치료합니다. 그리고는 몇 달을 끌어안고 있다가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고린도 왕이 아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린도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아이를 내어 놓습니다. 고린도 왕은 그 아이를 자기의 아이로 삼습니다. 이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델포이 신탁을 묻게 됩니다. 그런데 깜짝 놀라게도 ‘너는 네 아버지를 죽이고 네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신탁을 받아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고린도를 떠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정반대 방향의 테베 쪽으로 가게 되는 거지요. 가다가 좁은 길목에서 어느 일행과 마주치게 됩니다. 거기서 시비가 붙었어요. 분을 참지 못해서 그들을 다 때려서 죽였어요. 그리고 여행길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테베에 들어갔어요. 테베에 들어가 보니까 그 도시는 지금 슬픔과 공포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스핑크스라고 하는 얼굴은 예쁜 여자이지만 몸은 사자요 거기에 날개가 달린 괴물이 테베의 길목을 가로막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는데 그것을 풀지 못하면 다 잡아 먹는 것이지요. 그래서 테베는 외부와의 통로가 다 막혀 버렸어요. 교역이 중단 되었어요. 식량이 떨어졌어요. 이 문제를 타개하려고 왕이 몇몇 신하들과 함께 신탁을 물으러 갔다가 그만 뜻하지 않게 죽음을 당했다는 비보를 듣게 된 거지요. 온 도시가 슬픔과 애통에 빠져 있다가 왕비가 결단을 합니다. ‘누구라도 저 스핑크스를 물리치는 자에게 왕위를 주며 내가 그와 결혼하겠다.’ 그래서 이 젊은 오이디푸스가 도전합니다. 자기가 나아가서 스핑크스를 만나요. 스핑크스가 그에게 수수께끼를 냈어요.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 무렵에는 세 발로 걷는 존재는 무엇이냐.’ 뭡니까 여러분. ‘인간이다.’그러자 스핑크스가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절벽으로 몸을 던져 죽습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됩니다. 그 왕비와 결혼합니다. 이제 꿈을 펼쳐 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테베에 가뭄이 들고 불행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게 웬일이냐.’ 결국 알아낸 사실은 자기가 바로 그 테베의 왕의 아들로 태어났었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여행하던 중에 만나서 죽였던 그 일행이 알고 보니 그 왕의 일행이었다. 그리고 왕비가 자기 어머니였다라고 하는 사실. 그는 이 기가 막힌 운명에 좌절하며 자기의 눈을 뽑아 버리고 더 이상 세상 보기를 거부하고 유랑의 길을 떠납니다. 그러다가 죽었다고 하는 것이지요.

,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입니다마는 우리 한평생 삶에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재난과 고통을 비극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만들어 낸 이야기이지요. 인간을 그렇게 이해했단 말입니다.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끝없는 전쟁과 재난 속에서 결코 그 삶이 평탄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이렇게 이야기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리스신화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더라고요. 오늘 우리 현실 속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사회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세속사회의 영화관은 전통사회의 교회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왜 그러냐, 드라마를 통해서 오늘 현실의 문제들을 작가들이 예리하게 찾아내거든요.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공감하면서 그 문제를 함께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 여러분“쩐의 전쟁”이라는 드라마를 보셨어요. 우리 옆집에서 강력하게 추천을 하기에 웬일인가 하고 저도 봤는데요 그 ‘쩐’이라는 게 사채를 말하는데, 1화에서 잘 나가던 펀드매니저의 아버지가 사업하면서 사채를 빌려 쓴 것이 발단이 되어가지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갚지 못해서 끝내는 자살합니다. 그것도 아이러니하게도 신용카드를 갈아가지고 칼같이 만들어서 동맥을 끊어서 자살합니다. 죽으면서 피로 유서를 썼는데 유서를 아들이 받아보니‘카드 빚 쓰지 마라.’그 충격에 엄마는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거지요. 그 드라마를 보니까 좀 황당무계한 면은 있어요. 왜 그러냐면 원래 그게 만화를 원작으로 한 거거든요. 황당무계해요. 그러나 사채 빚에 내몰려서 신체포기 각서를 쓰고 때로는 죽음으로 내 몰리는 것이 우리 주위의 현실이지요. 거기 아주 명언이 나오더라고요.‘사랑은 상처를 남기지만 돈은 이자를 남긴다.그러니 사랑보다는 돈을 택하겠다. 돈이 주인이 된 세상입니다. 그래 제가 그 드라마를 좀 보다가 ‘야, 사채를 안 쓰길 정말 잘했다.’생각했어요.

성경도 말해요.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그 하나는 하나님이요. 또 하나는 맘몬이다. 맘몬이라는 건 헬라어로 돈이란 말이에요. 그러면서 말씀하셨어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돈을 무시하지 않으셨어요. 인정하셨어요. 그러나 순서를 얘기했어요. 우선순위를 얘기하셨어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먹고 마시고 입는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것이다.

그리스신화가 그 당시의 처절한 인간의 실상을 이야기 했고 그 인간의 모습은 오늘 현대 세속사회에 이르기까지 흘러 내려오고 있어요. 그런데 오이디푸스 신화가 그리스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 시간에 하나님은 에스겔서를 통해서 또 하나의 세상을 보여 주셔요. 또 하나의 인생관이 있음을 보여주셔요.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을 통한 하나님의 예언이에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예루살렘에 주시는 거예요. 지금 예루살렘의 상황이 어떻게 됐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해서 홍해를 건너서 40년 광야생활을 거쳐가지고 가나안에 들어 왔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을 빼앗고 그 예루살렘을 자기들의 성으로 삼아서 이름도 예루살렘이라고 고치고, 예루살렘이란 말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드디어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을 건설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어요.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고 그것으로 자랑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기 시작했어요. 말씀을 떠나기 시작했어요. 드디어는 그 세속의 정치와 논리에 휘말려서 앗수르와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이리저리 기울다가 드디어는 나라가 쪼개지고 다 찢겨지고 망하게 되었어요. 바벨론의 포로로 다 끌려간 거예요. 나라를 잃어 버렸어요. 완전한 절망 가운데 빠졌어요. 아무런 소망이 없어요. 하나님이 그때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에요. ‘너의 시작이 어떠했느냐. 네가 가나안에서 시작할 때 그때 그 모습이 어떠했느냐. 마치 갓 태어난 핏덩이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풀밭에 내 던져져서 그 누구도 그를 알아채지 못했기에 숨을 거두기 직전 아니었느냐. 그때에 내가 너를 보고 안타깝게 여겨서 그 핏덩이를 끌어안고 말하기를 너는 비록 피투성이 이지만 살아만다오.

여러분, 다 뉴스를 보셨겠습니다마는 이번에 캄보디아에서 비행기가 추락했어요. 모두 죽어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 영정사진을 보니 아주 어린 애기도 있더라고요.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핏덩이지만 제발 살아만다오.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신 거예요. 그를 키워 주신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가 성숙한 여인이 됐어요. 아주 자랑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또 찾아 오셔서 말합니다. ‘내가 너와 언약을 맺으리라. 너는 내 사랑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사랑해 주셨는데 이스라엘은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을 내버려요. 그리고 바벨론과 앗수르와 이집트와의 관계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가요. 그들을 신랑으로 삼는 거예요. 바람이 난 거예요. 창녀가 된 거예요. 드디어는 창녀가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버림받듯이 끝내는 버려져서 이제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런 비참한 신세가 된 거예요.

하나님이 말해요. ‘내가 끝내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다시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약속을 주고 언약을 했건만 네가 이렇게 넘어지니 이제는 흔들릴 수 없는 영원한 언약을 너와 맺겠다.’ 그 언약이 뭔지 아세요? ‘내가 이제는 내 영으로 네 맘속에 들어가서 네 마음을 새롭게 하겠다. 우리의 변화가 도대체 겉모습을 꾸미는 거 가지고는 그 변화라는 건 잠깐뿐이니 너의 마음을 새롭게 하겠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에요. 그리고 그 마음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에요.

여러분, ‘미우라 아야꼬’라는 작가를 아시지 않습니까. 그가 1964년 일본 아사이 신문에서 천만 엔 현상고료를 걸고 공모했던 신문소설에 당선이 됐지요. 그 유명한 <빙점(氷點)>이지요. 제가 군에 가기 전에 그 소설을 읽고 또 미우라 아야꼬의 자서전 <길은 여기에> 이것은 자기의 청춘 시절의 자서전입니다. <이 질그릇에도> 이것은 결혼 생활의 자서전이고 어떻게 해서 빙점을 쓰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쭉 서술한 것입니다. 30년 만에 다시 그 책을 읽었는데 너무 은혜를 받았어요. , 그렇구나. 군에 가기 전에 그 책을 읽고 ', 나도 정말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했는데 다시 읽어 보니까 그때보다 더 감동이 컸습니다. 미우라 아야꼬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패전한 후에 교사직을 물러나게 됩니다. 그가 열일곱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가지고 7년동안 교사 생활하고 46년에 사직하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뭐냐? 패전 하면서 모든 가치관이 다 뒤집어 졌어요. 천왕을 신으로 알고 모셨던 일본 사람들에게 패전 국민의 그 현실은 너무나 비참했어요. 무엇보다도 완전히 가치관이 뒤집어져서 아이들에게 이제까지 외우게 하고 가르쳤던 교과서를 먹을 들고 지워야 했어요. 그리고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라고 하는 새로운 이념에 사람들이 따라가는 것을 보면서 혼돈을 느꼈어요. 그는 성실하게 교과서대로 가르쳤던 사람이었기에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이제까지 진리인줄 알고 가르쳤던 이 모든 것이 다 헛것이었다니. 충격을 받아요. 더 이상 나는 아이들에게 부끄러워서 교단에 설수 없다. 교직을 떠남과 동시에 폐결핵에 걸립니다. 그리고 무려 13년 동안을 꼼짝도 못하고 수 차례 입원하게 되고 병으로 드러눕게 됩니다. 그는 깊은 허무에 빠집니다. 그래서 쉽게 결혼을 약속했던 약혼자가 몇 년씩이나 기다렸는데 어느 날 그를 찾아 갑니다. 파혼을 통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 물 속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합니다. 극적으로 구출되어서 목숨은 얻었습니다마는 그는 살았으나 죽은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때 같은 동네에 소꿉친구였던 마에까와 다다시라고 하는 남자가 나타납니다. 그를 늘 지켜보고 그의 형편을 알고 있던 그는 그녀의 상한 마음 깨어진 마음을 묵묵히 기다려 주면서 다시 신앙으로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기독교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그녀를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참아줍니다. 그녀는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해요. 그러다가 전도서를 읽게 됩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이런 허무가 어디 있어요. 해 아래 새것이 없도다.미우라 아야꼬는 깜짝 놀랍니다. ‘아,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깊은 허무가 여기에도 있구나. 나는 병들어서 허무했지만 이 사람은 왕위를 누리고 최고의 지혜를 누리면서도 그 밑바닥 깊은 곳에 인생의 허무를 안고 있구나.’그 전도서를 끝까지 읽다보니 그 맨 마지막 장에 뭐가 나옵니까. 너는 청년의 때 늦었다고 후회하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미우라 아야꼬의 마음을 흔들어 놨어요. 그리고 어느 날 마에까와 다다시와 함께 들판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허무에 사로잡혀 있는 그녀를 안타까워하며 마에까와 다다시가 말합니다. ‘제발 그 허무를 떨쳐 버려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라고.’ 그러더니 갑자기 돌을 들어서 자기의 발등을 내려찍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아니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나의 연약한 믿음으로는 도저히 당신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어 너무 안타까워서 나를 자책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미우라 아야꼬는 말합니다. ‘그래, 이 남자가 이토록 나를 사랑한단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한번 속는 셈치고 이 남자가 가는 이 길을 따라가 볼까.그게 바로 <길은 여기에>에요. 그래서 그가 좁은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 성경을 펼쳐서 읽기 시작합니다. 의문을 던지면서도 하나님 앞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미우라 아야꼬를 몇 년 동안이나 돌보던 이 마에까와 다다시 역시 폐결핵에 걸려서 먼저 죽습니다. 그리고 유서를 남겨요. 그 유서에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고 풀길 없는 수수께끼이지만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고 끝까지 살기를 바란다.’ 그 남자가 먼저 가요.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할 수밖에 없어요. 불평할 수밖에 없어요. 탄식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그 남자의 약속을 기억하고 다시 성경을 읽는 중에 신약성경 마지막 요한일서에 보니“하나님은 사랑이시다.”그 대목을 읽는 순간 이제까지 자기는 하나님을 찾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연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닫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불평만 해왔구나. 그날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엽니다. 마에까와 다다시가 그러했듯이 이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해요. ‘부정에서 긍정으로’그 때부터 변화가 일어나요.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어요.“너는 피투성이 일지라도 살아다오.여러분, 부정에서 긍정으로 몸을 돌릴 때 놀라운 변화가 그녀의 삶 속에 시작되어요. 그 이야기가 바로 <길은 여기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오늘 어떤 고통이 있을지라도 비록 피투성이가 되어 울부짖을지라도 내 너를 사랑하고 너와 함께한다. 살아만 있어다오. 그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을 잘 아시는 하나님, 태어나는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는 걸음으로 원망하며 불평하며 온전한 믿음을 보이지 못하며 살아 왔건만 끝까지 내치지 아니하시고 오늘 여기까지 이끌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몸을 돌이켜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생각을 열고 부정에서 긍정으로 주의 빛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참으로 우리 삶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사랑이 있음을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깨닫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