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마지막 1퍼센트 [화룡점정,마지막1%=하나님이 일으키신 부활] / 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10:32

080323 마지막 1퍼센트 ( 24:17-27)

성경본문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1,500년 전 중국 양나라에 장승요 라고 하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때 안락사라고 하는 큰 절이 지어졌는데 요청을 받았습니다. 절 벽에 그림을 그려 주십시오. 그래서 벽화를 그렸어요. 다 됐다고 해서 가보니까 용 그림을 크게 그렸는데 눈을 안 그렸어요. 장승요를 불러서 아니, 왜 눈을 안 그립니까? 그랬더니 눈을 그리면 안됩니다. 왜 안됩니까? 눈을 그리면 용이 살아서 하늘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자 모두 깔깔 웃으면서 말했어요. 에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눈을 그려 넣어주십시오. 눈을 그리고 눈동자를 찍는 순간 꽝 하고 벽이 터지면서 용이 하늘로 올라 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컬어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용 그림의 마지막 눈을 찍는다. 마지막 결정적인 한 점을 더해서 전체가 살아나게 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에 손을 대어서 완성 시킨다. 그런 말이죠.

우리 신앙에 있어서 부활신앙이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는 신앙, 그 부활을 실제적으로 믿는 신앙.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아무리 그림이 요란해도 벽안에 갇혀있는 용하고 벽을 터뜨리고 하늘로 솓구치는 용, 물론 고사요, 전설이지만 얼마나 시원합니까. 이렇게 다르게 만드는 거예요. 신앙의 색깔을 바꾸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분명 부활의 아침이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들은 지 며칠이 된 거예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고 하는 동네로 두 제자가 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까 근심이 있어요. 슬픈 빛을 띠고 있어요. 혼란스러워요. 심지어는 예수님이 나타나셨어요. 예수님이 같이 걸어가고 있어요. 예수님과 같이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어요. 자기 염려와 근심과 혼란에 매여 가지고 혹 우리 신앙이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고 이제까지 우리의 호흡도 지켜 주시고 건강도 지켜 주시고 걸음 걸음 모든 것을 주장해 주시건만 우리는 마치 주님이 없는 것 같이 자그만 일에도 쓰러지고 넘어지고. 만약에 살아계신 주님을 분명히 알고 고백할 수 있다면 이거 완전히 다른 거예요. 비유하자면 애인이 없이 일에 치여서 살아가는 사람, 그러다가 누군가를 딱 만나서 눈이 맞고 사랑에 빠졌을 때, 환경은 변한 거 없어요. 여전히 일이 있어요.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벌써 세상이 달리 보이는 거예요. 마음이 바뀐 거예요. 삶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에요. 그 사랑의 눈으로 모든 것을 해석해요. 고된 일 하고 돌아와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장갑도 짜고 옷을 짜요. 피곤한데도. 사랑의 능력이에요. 사랑의 위대한 힘이에요. 부활의 비밀이 바로 그러하죠.

또 예수님이 짐짓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부활의 주인공이시지만 제자들에게 물어요.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랬더니 오히려 성을 냅니다. 당신 보아하니 예루살렘에서 오는 사람 같은데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도 모른단 말이오. 그리고는 좌악 얘기합니다. 예수님은 말에 권세가 있고 이적을 베푸시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대제사장과 관원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이 그가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났다고 하는데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가서 빈 무덤을 보았다고 합니다. 제자 중에 몇이 또 가서 보았는데 역시 빈 무덤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훤히 다 알아요. 그런데 결정적인 마지막 한 마디가 빠졌어요. 그 말을 뭐라고 맺었냐 하면 빈 무덤은 보았는데 예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몇 년 다니면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많아서 다 알아요. 다 아는데 마지막 그 결정적 한 가지가 모자라요.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시므로 내게 생명이 주어졌다는 것, 이게 바로 복음이고 생명이에요. 사실 교회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이거 하나에요. 이 고백을 놓친 사람은 헛수고 한 거예요. 이게 비밀이에요. 이것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아 들일 때 선물로 받아 들일 때에 우리의 신앙이 바뀌는 거예요.

제자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은 탄식합니다. 굉장히 화가 나셨어요. 미련하고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대놓고 야단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런데 이게 복이에요.

제가 학교 다닐 때 하도 키가 작아서 맨 앞자리에 앉잖아요. 앞 자리에 앉으면요, 복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때리기도 좋아요. 저 멀리 있는 애는 소리로 야단치고 맙니다. 쫓아가서 때릴 수 없으니까. 그러나 얻어 맞으면 정신이 버쩍 나고 다시 들여다 보게 돼요. 공부하게 돼요. 제자들을 지금 야단하셨어요. 그러면서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 아니냐. 당위(當爲)에요, 당위. 너희들이 성경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구약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구약 성경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그것은 메시야에 관한 것인데, 메시야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다. 수많은 계명이 있어요. 수많은 사건이 있어요. 수많은 스토리가 있어요. 그러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에요. 핵심을 알아야죠. 

5년 연속 자동차 판매왕이었던 최진성이라는 분이 세일즈 강의를 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 물이 몇 도에 끓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100도에 끓죠. 그러나 물이 99도에 머물러 있는 한 물은 절대로 끓지 않습니다. 2분을 기다려도 2시간을 기다려도 2년을 기다려도 물이 99도에 머물러 있는 한 끓지 않습니다. 마지막 1도를 더하면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자동차를 만들었습니까? 회사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돈을 투자해서 자동차를 만들어서 TV에 광고까지 했는데 이제 마지막 1퍼센트 남았어요. 나가서 팔아라. 마지막 1퍼센트는 내가 해야 되는데 사력을 다해야 된다. 그러면서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해요. 어느 날 초등학교 다니는 자기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호출을 했어요. 좀 학교로 오시죠. 왜 날 부르시지. 애가 뭘 잘못했나. 갔어요.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뭐라고 하냐면 아버님, 제가 차 한대 사겠습니다. 깜짝 놀라서 아니, 선생님이 왜 차를 사십니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이 딸아이도 차 세일즈 홍보 카탈로그를 가져와서 애들에게 나눠 주더래요. 아버지가 얼마나 미쳤으면 딸도 자연스럽게 너희들도 하나씩 받아 봐라.했을까요. 선생님이 그걸 봤어요.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들어보니 참 대단한 집이로구나. 아버지 좀 오시라고 해라. 제가 차 한대 사겠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차를 만들 필요 없어요. 그야말로 운전만 하면 돼요. 다 만들어 논 차. 운전만 하면 되요. 모터쇼에 가 보셨죠. 얼마나 차들이 요란 합니까. 얼마나 비쌉니까. 그러나 운전 못하는 사람한테 그거 준다고 하면 고민이에요. 그걸 짊어지고 다닐 거예요? 매고 다닐 거예요? 끌고 다닐 거예요? 그러나 운전을 배웠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지막 1퍼센트, 하나님이 일으키신 부활이에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에요. 그래서 이건 엄밀히 말하면, 죽어봐야 제대로 아는 거예요. 우리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 , 이게 부활이었구나. 그렇게 돼요. 그렇다면 지금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응답을 통하여 부활에 대한 소망을 키워가는 거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어요. 이 우주가 얼마나 신비합니까.

  며칠 전에 어떤 선교사님이 저희 집에 들리셨는데, 이 분은 수지침과 귀침을 하시더라고요. 저를 딱 보더니 당장 진단을 해요. 어디 어디가 안 좋으신데요. 거 희한해요. , 정말 그런데요. 침을 탁탁 맞는데 아프다는데 맞으니까 되게 아파요. 때로는 피도 나와요. 그건 진짜 안 좋다는 거죠. 이 귀가 말이죠. 어린 아이가 태에 뒤집어져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대요. 인터넷에 찾아 보니까 귀에 혈맥이 600개가 있구요. 보통 90개를 침으로 찌르면서 다스린다는 거예요. , 하나님은 너무나 오묘하고 신비하셔요. 그거 한 군데만 고장 나도 여러분 그냥 안녕이에요. 그거 내가 관리하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오늘 사는 거예요. 신비해요. 이런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일으키셨어요.

김동길 교수님이 옛날 강의할 때 이런 대목이 있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에요. , 여러분, 예수님께서 동정녀 처녀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말씀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들도 간혹 있던데 나는 그 분들이 이해가 안됩니다. 아니,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시겠다고 하면 귀하신 분인데 꼭 우리 같은 방법으로만 오셔야 된다고 고집해야 될게 뭡니까. 하나님, 알아서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하시던지 저렇게 하시던지 하나님이 우주를 지으시고 생명을 지으시고 오늘도 주장하시는 분인데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에 대해서 가타부타 얘기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아이고, 하나님이 어련히 그렇게 남다르게 하셔야죠.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HOW 어떻게 방법을 얘기하는 책이 아니에요. 그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있는 거예요. 단 하나 왜 그렇게 하셨는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는가. 그 이유를 물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을 왜 일으키셨는가. 성경을 읽어보면 한마디로 요약이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이 어리석어서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은혜를 외면하고 타락해서 죄에 빠져 죽게 된 것을 하나님이 내치지 아니하시고 그를 붙들고 싸 안으셔서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일으키셨다. 하나님이 다 이뤄놓으신 거예요. 이제 우리는 그것을 받아 들이면 되는 거예요.  

차를 다 만들어 놨어요. 모터쇼에 차를 전시해 놨잖아요. 그러나 그건 아직 불완전이에요, 미완성이에요. , 차라는 것은 누군가 몰고 어디 가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이지, 만약 그것을 전시만 해 놓는 다면 그거는 딱 1퍼센트 모자란 거예요.

저는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기계에 약해요. 운전도 굉장히 어렵게 배웠어요. 제가 고등학교 교사로 있었을 때 여름방학 때 보충 수업도 하고 그랬거든요. 선생님들 몇 분이 그러더라고요. 우리 그러지 말고 운전면허 공부 같이 하고 면허 좀 땁시다. 열명이 넘으면 강사가 와서 가르쳐 준다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저도 엉겁결에 같이 배웠어요. 필기시험이야 제가 잘 보죠. 한번에 붙었죠. 문제는 실기죠. 첫날, 크랭크에 가서 떨어 졌어요. 한달 후에 갔더니 이번엔 T에 가서 떨어 졌어요. 얼마나 열이 나는지. 다른 사람은 척척 붙어서 합격해서 일행이 다 떨어져 나가잖아요. 그 다음에 한달 후에 갔더니 S에 가서 또 떨어 졌어요. 드디어 혼자 남았어요. 저 한남동까지 가야 돼요. 시간 내기도 바쁘고 괴로워요. 그거 스트레스 엄청 받았어요.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러다가 그래도 가야지. 그래서 크랭크, T, S를 성공적으로 통과했어요. 너무 감격스럽더라고요. 이어서 주행시험을 봤는데 떨어 졌어요. 마지막에 저 혼자 남았어요. 기가 막히더라고요. 이젠 눈이 날리더라고요. 늦여름에 시작했는데 벌써 눈이 와요. 해가 넘어 가기 전에 어떻게든지 꼭 따야지. 면허 시험장이 한남동에서 잠실로 옮겨 갔어요. 더 멀어졌어요. 기도 많이 하고 갔어요. 어떻게 운전면허 시험이 대학시험 보다 더 어렵습니까, 주님 그날이 눈 오는 날이었어요. 합격했지 않습니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오늘 세례를 받는 분들이 계셔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 솔직히 다 믿어서 드리는 것도 아니에요. 봐 드리는 거예요. 왜 그러냐하면 제가 중학교를 시골에서 나왔잖아요. 고등학교 때 서울 올라가서 전기, 후기 다 떨어졌어요. 어떡해요. 앞이 캄캄하고 답답하죠. 그래서 제가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랬더니 제 풀죽은 얼굴을 보시더니 괜찮아, 괜찮아. 우리 학교 오면 돼. 그때 학교는 그런 융통성이 있었어요. 괜찮아, 괜찮아, 다시 와서 열심히 하면 돼. 제가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믿어가는 거예요. 오늘 다 믿을 수도 없는 거예요. 주님 앞에서 오늘 내가 그 말씀을 들었으니 받아드리고, 넘어졌다가 또 일어나고 그러면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믿음에 대해서 염려를 많이 해요. , 저 사람은 믿음이 있는데 나는 믿음이 없을까. 제가 답을 말씀해 드릴게요. 성경 말씀 좀 읽으세요. 성경은 딱 덮어 놓고 어떻게 하늘에서 믿음이 떨어지길 기대해요. 오늘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어요. 제자들이 나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풀어 주실 때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그걸 경험했기에 예수님이 자기를 떠나가시려 할 때 제자들이 말씀을 더 들으려고 예수님에게 강권합니다. 주님 가지 마시고 우리와 여기 하루 더 머무시죠. 함께 식사하시죠. 똑똑하다고 믿음이 절로 생기는 것 아니에요.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께서 그 말씀 속에서 내게 역사하시는 거예요. 말씀은 기록된 말씀이요, 객관적인 계시예요. 그 말씀을 펼쳐 읽을 때에 성령께서 주관적인 계시로서 우리 마음에 보여주시는 거예요. 성경은 그저 당근이니 감자니 하는 재료라고 할 수 있어요. 설교는 그걸 가지고 만든 요리예요. 여러분 단 한끼 식사라도 좀 별난 분 말고 요리로 만들어 먹듯이 말씀과 설교를 읽고 들어 보세요. 처음에는 운전면허 따는 것 같이 약간의 수고와 애씀이 있어요. 그러나 나의 1퍼센트 투자에 비해서 그것이 통과 되었을 때 99퍼센트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세계가 내 앞에 활짝 열리는 거예요. 그럴 때 할렐루야가 나오고 감사가 나오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감당하고 나아가는 거예요.   

한 친구가 지갑에서 아내 사진을 보여 줍니다. 다른 친구가 깜짝 놀라며 자네는 애처가네. 어떻게 아내 사진을 가지고 다니나.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늘 새 힘을 얻는다네. 아니, 어째 그런가. 이렇게 어려운 문제도 내가 끌어안고 사는데 저것쯤이야.

여러분 이제는 아내 사진도 가지고 다니고 부활의 믿음, 부활의 약속을 붙들고 사세요.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이렇게 밝은 날 아침, 부활의 아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한 것을 주님은 너무도 잘 아시기에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 신앙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고, 또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말씀을 펴서 읽을 때에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감사와 감격이 터져 나오게 하시고 헌신하고자 하는 열망이 불일 듯 일어나게 하시는 주님, 부활의 아침을 맞았아오니 그러한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