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나를 알게 하소서[파키스탄 전총리 부토 피살,헬렌켈러=비전]/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14:52

20071230 나를 알게 하소서 ( 39: 1~7)

성경본문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여러분도 뉴스를 들어서 아시겠습니다만 권투선수 최요삼 선수가 시합에서 맞은 충격으로 뇌출혈로 지금 사경을 헤매는 중입니다. 1999년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슈가레이 레너드라는 아주 탁월한 선수를 기억하는데 그 선수를 많이 닮았다는 평가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IMF 이후에 경제적 어려움과 더불어 복싱 열기가 식어 버리고 또 챔피언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배신을 겪고 체중 감량의 고통을 겪고 또 타이틀을 뺏긴 이후에 세 번이나 정상 탈환에 실패하는 등 너무나 많은 고통이 있었죠.

얼마 전에 그의 일기가 공개 되었습니다. 그가 쓰러지기 며칠 전까지 일년 반 동안 기록한 일기에 보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맞는 것이 두렵다. 더 이상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끝내고 싶다. 내가 너무나 많은 잘못을 지었나 보다. 그런 두려움이 나중에는 죄의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챔피언의 꿈이 무엇인가? 뜻밖에 아주 소박한,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예요. 저 푸른 초원 위에 예쁜 집을 짓고 사랑하는 내님과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 사람이 그토록 원하는 꿈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박한 일상이었다고 하는 것이죠.

오늘 성경본문에 또 한 사람의 챔피언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다윗 왕입니다. 그는 그저 권투시합에서 한 순간의 챔피언이 아니에요. 한평생 걸쳐서 드디어 권력을 쟁취했습니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말년을 맞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영광 뒤에 감추어진 깊은 고통을 오늘 토로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은 그 말년에 고통 끝에 건강을 상실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피를 토하며 기도하는 것이죠. 그가 왕이 된 이후에 그 집안에 왕자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일어나죠. 많은 왕자들이 그 와중에 죽어 갑니다.

며칠 전에 파키스탄에서 부토 전 총리가 피살되지 않았습니까. 사실 그 집안은 완전히 파키스탄 민주화의 희생제물이 된 집이죠. 그녀가 스물 일곱이었을 때 그 이전에 파키스탄의 총리였던 아버지가 군부 쿠데타로 무너지고 처형당하죠. 그리고 또 27년이 지난 올해  그 역시 54살로 희생되었죠. 그의 남동생들도 이미 다 테러로 죽었습니다. 권력에 가까이 가면 다치게 되는 거죠.

오늘 다윗은 말합니다. 입을 다물겠다. 오늘 자기가 당하는 이 고통을 누구에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믿지 않는 자들이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조롱할까 두렵습니다. 심지어는 믿는 자들에게까지도 이 일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오해가 있을 터이니까. 그러므로 아예 입을 닫습니다. 그러나 입을 닫고 이 일을 생각할 때에 끝없이 자기 내면으로부터 의문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은 언제입니까? 내가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산다 한들 그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을 겨우 손 한 뼘 길이밖에 안되게 하셨습니다. 한때 온 권력을 쥐고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는 것도 한 순간의 입김같이 한 순간의 일입니다. 온 나라를 다스리고 모든 재물을 거두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경비행기가 추락했는데요,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 그 사고로 딸과 함께 죽었다고 합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편집자주: 원래 일어날른지로 표기된 것을 바로 잡음] 아무도 알지 못해요. 그런데 지금 다윗에게 있어서 더 가슴 아픈 사건은 이것이 자기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 밧세바 사건이 일어납니다. 부하장수의 아내를 빼앗고 완전범죄를 꾸미기 위하여 부하장수를 전장 한 복판에 내보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한 사건이죠. 아무도 몰랐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그것을 들추어서 다윗을 책망하시고 이 일로 인하여 네 집안에 끝없는 살육이 있을 것이다 말씀하셨어요.

액자를 걸려고 못을 쳤습니다. 그런데 걸어보니 잘못 됐어요. 위치가 틀렸어요. 그래서 다시 못을 뽑았어요. 못은 뽑았습니다마는 흔적은 남아있고 상처는 남아 있듯이. 우리가 주님께 용서를 받죠.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로 인하여 내 삶과 내 가정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죠. 다윗은 자기 집에 일어나는 이 참혹한 어려움이 바로 자기의 죄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다윗이 말합니다. 하나님, 나를 알게 해 주십시오. 그 밧세바 사건이 한때 잠깐의 실수가 아닙니다.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잠깐 실수해서 죄 짓는 게 아니에요. 죄를 먹고 마시는 거예요. 순간순간 하나님이 지켜주신 거예요. 무지합니다. 또 안다 한들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순간순간 욕심에 끌리고 본능에 끌립니다. 그러다가 나그네같이 쓰러져 사라지는 인생입니다. 챔피언이었던 다윗이 이제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이까. 나의 소망은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주님이 사죄하시고 용서하시는 그 은총이 아니고서는 세상에서 권력으로 명예로 부로 진정한 평강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이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얼굴을 돌리셔서 밝은 얼굴로 나를 보아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이죠.

이번에 새로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이 되니까 나라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함께 희망을 가지고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 일을 위해 함께 기도해 왔던 한국 교회가 다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에게 거는 기대는 경제적인 위기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거예요. 경제 대통령의 출현이에요. , 당연한 요구죠. 그러나 여기에 역설이 있어요. 우리나라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잘 살아야 되겠습니다마는 잘 살면 어떻게 되느냐. 이미 앞선 서구사회에서 나타난 대로 잘 살면 잘 살수록 하나님을 멀리 떠난다고 하는 통계가 나와있어요. , 아이러니해요. 잘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죠. 진정으로 잘사는 것이란 그런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을 넘어서서 오늘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따라가는 비전이 있어야 되는 거죠. 잠언 29 18절 말씀에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헬렌 켈러 여사를 아시지 않습니까. 눈 멀고 귀 멀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를 겪고도 인생을 극복한 사람인데 그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눈 먼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있을까요? 그때 그가 말합니다. 눈은 떴으나 비전이 없는 인생이 더 큰 불행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비전에는 거짓 비전이 있어요. 성공에 눈 먼 것은 거짓 비전이에요. 생명을 주지 못하는 것은 거짓 비젼이에요. 역사적 교훈이 있어요. 나치의 히틀러가 등장할 때의 독일의 상황입니다. 사실 독일 자본주의 발달이 늦었거든요. 그러니까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다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지를 독차지 했어요. 독일이 뒤따라 갈려니까 어려워요. 그래서 싸움이 일어난 게 일차 세계대전이에요. 그 전쟁에 졌어요. 나라는 폐허가 됐어요. 어마어마한 빚 더미에 올라 앉았어요. 좌절과 절망에 빠진 독일 민족 앞에 히틀러가 등장하죠. 다시 한번 독일 민족을 일으켜 세우지 않습니까. 여기에 그만 독일 사람들이 다 휘말려 들어 갑니다. 심지어는 독일의 교회도 휘말려 들어 갔어요. 그래서 뭐라고 고백을 했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히틀러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오셨다. 히틀러와 그가 주장하는 국가 사회주의가 우리 독일 민족을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뜻이요, 성령의 길이다. 이게 역사적 경험이에요. 그래서 온 나라를 전쟁의 불구덩이 속에 밀어 넣고 파멸로 치달았던 거죠.    

사실 장로 대통령의 경험은 우리가 일찍이 했습니다. 아주 쓴맛을 본 거예요. 그러므로 교회가 덩달아서 흥분하면 안돼요. 오히려 조용한 곳에서 정말 이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고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죠. 권력의 속성과 권력의 구조를 개인이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독일이 이렇게 어그러져 갈 때에 이에 맞서 싸운 인물이 있습니다. 칼 바르트라고 하는 목사요, 신학자이죠. 그는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라고 하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독일이 그렇게 잘못 되어 가고 독일 교회가 휘말려 들어 갈 때 뜻있는 사람들이 고백교회라고 하는 교회 모임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바르멘 신학선언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것을 기초한 사람이 칼 바르트예요. 그가 그 신학선언 1조에서 말하기를 요한복음 146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계시요, 그 어떤 인물이나 정치 조직이나 사회 체제도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이죠. 물론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없죠.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도 하나님의 계시는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길이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요한복음 10 19절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양의 문이다. 이 양의 문을 통하지 않고 우리에 들어가는 자는 도적이요 강도다 생명을 걸고 히틀러에 맞서 싸웠던 사람이에요. 칼 바르트 <로마서 강해> <교회 교의학>이라는 저서는 방대할 뿐 더러 하나님을 빗나가던 자유주의 신학을 말씀의 신학으로 되돌려 놓는 놀라운 업적이 되었습니다.

1968칼 바르트 8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을 치릅니다. 그때 그와 한평생 학문과 우정을 나누었던 카톨릭 신학자 한스 큉은 조사에서 바르트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바르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 신앙이 훌륭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신앙이 훌륭한 사람은 아닙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내가 죽어서 천국을 갈 때 내가 이제까지 쓴 <로마서 강해> <교회 교의학>이라는 이 방대한 책을 짊어지고 천국에 들어가려 한다면 천사들이 다 웃을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에 관한 이런 우스개가 있죠. 어느 장로님이 돌아가셨어요. 천국에 갔어요. 그랬더니 천국문에 베드로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 내가 왔다고 베드로까지 마중을 해 주는구나 베드로의 안내를 받아서 천국의 화려한 식당으로 갔어요. , 이제 드디어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는 구나 했더니 웬걸 빗자루를 주는 거예요. 청소하라는 거예요. 아니, 도대체 웬 일이냐 당황해 가지고 빗자루를 들고 구석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마침 자기가 아는 집사님이 저쪽에 있는 거예요. 서로 알아 보고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당황해서 묻습니다. 맛있는 음식 대신에 이 빗자루가 웬 말입니까 그랬더니 그 집사님 하는 말이 , 조용히 하고 그냥 하세요. 지금 목사님은 배달 나갔어요.

교회에서 큰 일을 하고 많은 일을 했다고 해서 천국에서 대접받는 것이 아니다 라는 거죠. 칼 바르트가 말합니다. 나는 천국에 올라가서 단 한마디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주님 이 불쌍한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실 이 대목은 모짜르트의 레퀴엠에 나오는 가사였거든요. 살아생전 칼 바르트는 모짜르트의 음악을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아주 전문가였어요. 그래서 칼 바르트는 자기의 서재 한쪽 벽에 칼빈의 초상화를 걸어 놓았어요. 그는 종교 개혁자요, 위대한 신학자였으므로 자기의 신학은 그로부터 이어진 것이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뜻으로 칼빈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맞은 편에는 모짜르트의 초상화를 걸어 놨어요. 왜 그러냐, 모짜르트는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이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그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칼 바르트가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아마 하늘나라에 가면 공식적인 예배석상에서는 바하의 음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바하는 한평생 교회를 지키고 수많은 찬송곡을 지은 인물이죠. 그러나 천사들이 예배가 끝나고 자기들끼리 모이면 모짜르트의 음악을 즐겨 들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도 그것을 슬며시 엿들으시면서 좋아하실 것이다.

제가 며칠 전에 아침에 일어 났는데 나도 모르게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이게 쑥 나오는 거예요. 찬송가인 줄 알았더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노사연의 만남 이잖아요. 어쩐 일인가 했는데 이 글을 읽고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렇죠. 내 마음에 있는 것이 나오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연약함도 아시고 나의 모든 것을 아시기에 아마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만남이라는 노래를 들으시면서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실 거예요.

칼빈의 초상과 모짜르트의 초상 그리고 자기의 책상 정중앙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없고 오직 십자가에 죽으신 그 놀라운 사건 그 은총으로만 갈 수 있다는 것이죠.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죠. 씨 뿌리는 비유를 들었어요. 씨가 옥토에 떨어질 때 30, 60, 100배의 결실을 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신 다음에 연이어 사건이 일어나요. 여러분 우리 인생에 3D라고 하잖아요. 3D 업종,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 그러나 진정 인생의 문제는 성경에 보니까 4D라고 했어요. 풍랑을 만나요(danger), 위기에요. 누구나 다 삶 속에 풍랑이 있어요. 문제는 거기에 주님이 함께 하시느냐 안 하시느냐는거죠. 그 다음에 넘어 가보니 거라사의 귀신 들린 자를 만나요(demon). 사단의 역사가 있어요. 열두 해 혈루증 앓는 여인을 만나요(disease). 질병의 고통이 있어요. 그리고 야이로 회당장의 딸, 그 딸의 죽음을 만나게 되죠(death). 그러니 이 4D는 인생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우리의 삶의 조건이에요. 거기에 주님이 함께 하시면서 길을 여시는 거예요. 사람이 할 수 없는 거예요. 오직 주님이 하시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루를 살더라도 종말론적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하시고 기다리시는 그 결정적 미래를 바라보고 오늘을 살아가야 되는 것이죠. 길고 짧게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니에요. 사도 바울이 살아서 주님의 일을 했다면 스데반은 죽어서 주님의 일을 한 사람이에요. 죽고 사는 것은 주님께 맡깁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 돌이켜 볼 때 모든 것은 주님의 은총이요, 주님의 보호하심이었어요. 감사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날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2007년 파란만장했던 올 한해 그 폭풍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오늘 이렇게 마지막 예배에 주님께 감사하며 예배하게 하시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힘이나 지혜로가 아니라 주님의 숨겨진 그 손길 속에 오늘까지 왔사오니 다시 한 번 그리스도 십자가의 그 놀라운 은총에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을 열고 감사함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으로 새해를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