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하나님과의관계가회복되어야사랑느껴짐]/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15:44

071118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5:19-25)

성경본문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단지 15분뿐> Just 15 minutes라고 하는 짧은 연극이 있습니다. 20대 청년이 있습니다. 박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논문을 제출했습니다. 교수들에게 아주 우수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장래가 총망되는 청년입니다. 핑크빛 미래가 활짝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슴에 통증을 느낍니다. 그 아픔을 참을 수 없어서 병원에 가서 진단한 결과 놀랍게도 폐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됩니다. 급히 입원했습니다마는 시간은 속절없이 흐릅니다. 대책이 없습니다. 이제 1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 병상에 누워 있는 그에게 한 통의 전보가 옵니다. 억만장자인 삼촌이 돌아가시면서 유산을 다 당신에게 남겼습니다. 어서 오셔서 상속 절차를 밟으십시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10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또 한 통의 전보가 옵니다. 대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 학교가 개교한 이래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 논문 시상식에 참석해 주십시오. 그토록 수고하고 애를 써서 얻은 열매이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5분 남았습니다. 또 한 통의 전보가 옵니다. 자기가 청혼했던 연인에게서 오랫동안 애태우며 기다렸던 전보였습니다. 결혼을 승락한다는 전보였어요. 그러나 그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세 통의 전보를 손에 쥔 채 그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있습니다. 돈도 중요하고 명예도 중요하고 사랑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죽음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건 잠깐 기쁨을 주고 마는 것이지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에게는 돈을 벌어도 의미가 있습니다. 공부를 해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을 해도 그 안에 풍성한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러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은 하나님을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나도 오늘 호흡하고 살아 있는데 왜 우리가 제대로 만나지 못합니까.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이죠.

제가 휴가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까 에어컨이 고장이 났더라고요. 나 또 그렇게 고장나는 에어컨은 처음 봤어요. 자기 마음대로 켜져요. 시도 때도 없이. 큰일 났다 이걸 어떡하면 좋으냐. 우리 교회에서 일하는 전기 기사를 불렀죠. 그랬더니 한참 만지더니 센서가 고장 난 것 같다고 해요. 빨리 사서 바꿔 껴라. 센서를 바꿔 꼈어요. 다 고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다시 켜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기사라는 사람도 저걸 못 고치니 어떡하겠어요. 드디어는 그 에어컨 메이커의 애프터 서비스 센터를 찾아서 연락해가지고 기사가 왔어요. 잠깐 올라가서 만져 보더니 고쳐 논 거예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뭔가 했더니 너무 지저분해서 막혔대요. 센서가 고장 난 게 아니고 제대로 청소를 안 해서 막힌 거예요. 하나님도 살아 계시고 우리도 호홉하며 삽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아니하고 왜 그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이런 말씀하셨어요.말씀이 너희 속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 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곧 말씀이라는 거죠. 예수님은 곧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다 하는 거죠.

제가 근 한 달을 한국에 머물게 되었는데요. 한 달도 짧더라고요. 마지막 주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일을 마무리하느라고 여기저기 약속을 하고 다닐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월요일 밤에 뜻하지 않게 미국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아주 오랜만에 여동생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왠 일인가 했더니 오빠가 시간을 내서 꼭 좀 도와 주어야겠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 했더니 미국에 출석하는 교회에서 새롭게 만나서 교제하는 어떤 여 집사님과 얘기를 하다 보니 여 집사님의 여동생이 한국에 있는데 지금 폐암 말기라는 겁니다. 다 죽어 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가 아직도 예수를 모르고 복음을 모르니 너무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 오빠가 마침 한국에 나와 있다 그러면 꼭 좀 부탁해서 내 동생을 찾아 가서 복음을 전해 줄 수 없겠느냐 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알았다고 하고 그 집 전화번호를 받아 들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찾아 갔습니다. 서대문구청 근처 높은 산 위에 있는 연립이더라구요. 물어 물어 찾아 갔습니다. 갔더니 이제 39살 된 여자 분인데 폐암으로 완전 바짝 말랐더라고요. 거실 쇼파에 겨우 몸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다 일하러 나갔고 퇴직한 아버지가 옆에서 수발을 들고 있더라고요. 먼저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참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이렇게 병들어 언제 죽을는지 모르는 이 순간에도 아직 예수를 모르다니, 너무 불쌍한 거예요. 제가 말씀을 전하니까 아버지가 이렇게 말해요. 그저 딸이 낫게만 된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게 아버지의 사랑이죠. 병든 딸일수록 더 안타깝게 사랑하는 거죠. 하나님이 바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헤매는 우리를 더 안타깝게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그러나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나사로 이야기 아시죠? 거지 나사로와 부자가 있었는데 죽어서 나사로는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부자는 지옥 불 못 가운데 떨어 졌습니다. 그 뜨거운 고통 속에 괴로워하던 부자가 눈을 들어보니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 안에 안겨있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내가 목말라 죽을 지경이니 나에게 물 한 모금만 혀 끝에 적셔 주었으면 좋겠다. 또 말합니다. 내가 살아 생전에 죽은 이후에 이런 고통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아직도 내 동생들이 저 세상에 있으니,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서 동생들에게 나의 고통을 얘기하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이 고통을 면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아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가 있고 말씀이 있다. 부자가 말합니다. 아닙니다. 나사로를 보내서 나의 이 모든 것들을 알려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다시 말합니다. 나사로가 살아서 그들에게 간다 할지라도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병에서 일어나기만을 원해요.  눈 앞에 이적이 보인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얘기해요. 속지 마세요. 그 이적보다 더 엄청난 이적은 이 시간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예요. 살아 숨쉬는 이 이상의 이적이 없어요. 이제는 말씀을 들을 차례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그 영이 살아날 때에만 구원이 있는 거죠.

이제 그 딸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했어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벌써 2년여 넘어 이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요. 자기가 처음에 병들었을 때 어떤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 기도를 받곤 했는데 그때 내가 믿었으면 나았을텐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후회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이제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있고 사람의 일 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에요. 내가 하나님께 구할 수는 있죠. 그러나 결정은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를 믿는 것 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안에 영원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함께 기도했어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했어요. 제가 먼저하고 따라 하게 했어요. 그리고는 가족들이 다 모여서 다시 한 번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가 가능합니까.  다들 일 나가고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밤830분이나 되야 다 모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따 밤에 다시 오겠습니다. 가족들이 다 모여서 다시 한 번 예배를 드립시다. 그래서 제가 밤에 다시 갔어요. 밤에 예배를 드린 후 안타까운 마음에 한번 더 예배를 드립시다. 수요일 밤에 다시 한 번 모입시다. 그리고는 자카르타로 돌아 왔습니다. 제가 돌아와 가지고 이일 저일 하다가 깜빡 시간이 지났죠. 한국에 통화를 해 보니까 그 분이 돌아 가셨더라고요. 수요일 밤에 예배를 드렸는데 목요일 날 돌아가셨어요. 서울에 그 많은 교회가 있고 그 많은 목사가 있어도 죽어가는 사람이 의지하고 부를 한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저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하나님이 나를 쓰셔서 마지막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그 영혼을 부르셨다.

목사의 첫 번째 일이 뭔지 아세요. 한 사람 한 사람 다 천국 보내는 거예요. 언젠가는 다 죽기 때문에. 부자도 죽어요. 학자도 죽어요. 미인도 죽어요. 천국을 보낼 뿐 아니라 그 마지막 시간에 이렇게 안타깝게 예수 믿고 떠나는 삶이 아니라 이제까지 한 평생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송하면서 평안한 얼굴로 천국가는 것 그게 제 일이에요. 두 번째 일은 죽어서 천국 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습니다. 오늘 살아서 그 천국을 누리며 사는 거예요.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가지만 그 아들 예수를 오늘 내가 믿으므로 말미암아 오늘 약속하신 대로 영생을 얻었고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풍성한 삶을 오늘 살아가는 거예요.

곽 목사님(=곽선희 목사)이 지난 시월 첫 주에 소망교회 은퇴하고 만 4년 만에 소망교회 30주년 기념예배 설교를 하셨더라고요. 곽 목사님은 세계적인 설교가죠. 흉내 낼 수는 있으나 따라가기는 어렵죠. 그 분 설교를 연구한 논문이 많이 나와 있어요. 그 분이 가장 마음에 새기는 한 대목이 있더라고요. 감리교 신학대학의 김홍기 교수가 곽 목사님의 설교를 평하면서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춘원 이광수가 이 신학적 설교를 들었더라면 그는 결코 불교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분, 바로 이거예요.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설교라고 하는 것은 말씀이 인간을 고용해서 생명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편이에요. 수단이요. 그래서 말씀을 들어야 해요. 목사의 일은 예수님을 정확하게 증거하는 거예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은 참 놀라운 분이시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베데스다 연못에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셨어요. 38년 고통 하던 자를 일으키셨어요. 그의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주위의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오늘이 안식일인데 병자를 고치다니 이것은 율례에 어긋나는 일이다. 기쁨을 함께하지 못해요. 논리를 가지고 교리를 가지고 따지기에 바빠요. 생명은 안중에도 없어요. 이 왜곡된 종교 그리고 헛된 열심, 왜 그럴까요.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 거예요. 여러분 달란트 비유를 아시죠.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사람이 열심히 나가서 수고해 가지고 또 5달란트, 2달란트를 벌어 가지고 주인에게 가지고 왔을 때 주인이 기뻐하면서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1달런트 가지고 간 사람은 땅 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꺼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가지고 잃어 버릴까봐 두려워서 우리 주인님은 아주 엄격하신 분이기에 실수하면 큰 일 날 것 같아서 그대로 가지고 갔다가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주인이 화를 내지 않습니까. 왜 화를 냅니까. 주인을 잘못 알아 봤어요. 주인을 아주 엄격한 사람으로 아주 못된 사람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참 중요해요.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 무서움을 상쇄하려고 겉으로는 더 열심히 얘기하고 부르짖고 몸부림칠지라도 그 안에 자유함이 없어요. 소리는 나직해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이 정말 좋으신 분이시다라고 하는 평안이 있어야 해요. 그게 신앙의 핵심이에요. 그런데 예수님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다. 그는 나를 아들로 삼으시고 나를 사랑하사 모든 것을 보이시고 모든 것을 다 맡겨 주셨다. 심지어는 사람을 살리는 능력과 심판하는 권세까지도 다 내게 맡겨 주셨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다 예수님을 다른 각도로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요한복음은 우리 신앙의 가장 높은 경지를 말해요. 왜냐, 예수님이 자신을 뭐라고 말씀하셨냐하면 말씀이 육신을 입어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나는 하나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선언이에요. 이 복음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 사랑에 감격했기 때문에 이것을 알지 못하는 연약한 인생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쏟으며 죽으셨던 것이죠.

제가 돌아오는 마지막 날입니다. 제 동생이 승용차를 가지고 왔어요. 짐을 다 실어 가지고 공항에 안내해 주려고 막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제 동생이 어디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 감이 얼마나 좋은지 말하는 소리가 다 들리더라고요. 제가 설교집을 가지고 가서 나누어 주었는데 제 동생이 ROTC 1년 후배에게 책을 하나 줬대요. 그 사람의 형편을 잘 알기에 어떡하던지 전도하려고. , 근데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 형님. 제가 좀 기초가 없잖아요. 교회 나가서 좀 들으려고 해도 뭐가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 수가 없는데, 글쎄 형님이 준 책을 읽어 보니까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서 오셨다고 하는데 그 십자가에 죽은 것이 나 때문이로군요. 제가 정말 놀랐어요. 사실은 저 그 얘기 하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재밌다고 그러는데 그런 응답은 유감이에요. 그 마지막 결론을 들으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죠.

지난 95일은 마더 테레사 가 서거한지 10주기를 맞는 날입니다. 그 날에 맞추어서 그의 전기가 나왔어요. 그에 앞서서 시사 주간지 타임에서 그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제목을 붙이기를 <마더 테레사의 믿음의 위기>라 했어요. 여러분 테레사가 누굽니까. 그가 인도에서 수녀로 17년 동안 교사로 일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50년 동안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돌보는 빈민사역을 했어요. 그래서 그를 성녀라고까지 부르잖아요. 그런데 그 책에서는 그의 솔직한 내면을 고백하고 있어요. 그의 영적인 메마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이 늘 환하지만은 않죠.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려고 할 때에 때때로 어둠을 만나죠. 성녀라는 이름, 많은 사람들의 칭찬이 있습니다마는 그 역시 피조물이요 인간이기에 우리와 똑 같은 연약함을 고백하고 있는 거예요. 그에게도 그의 신앙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 주는 멘토가 있었어요.  그 영적인 멘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이 올 때 인간적인 처방은 없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그런 시간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죠. 또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라는 하나님의 임재의 느낌을 갈망하지만 그 임재의 느낌만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하는 증거는 아닙니다. 여러분, 물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시기도 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보다 훨씬 크신 분이에요. 우리의 모든 것을 내다 보세요. 때때로 우리의 마음의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면서 우리를 내다 보셔요. 우리에게 뜻을 가지고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다. 그는 이 조언으로 비로소 마음의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결단합니다. 내가 이제부터는 내 느낌으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내 의지를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드리고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겠다.

뉴스에 의하면 한국은 오늘 겨울이 시작되었나 봐요. 영하로 뚝 떨어 졌대요. 춘하추동 사계절이 있지요. 겨울을 다 불편해 하고 싫어하죠. 그러나 겨울을 통해서 우리는 더 강해지는 거예요. 거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무엇을 감사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이 소중한 생명 그리고 새 생명. 그런데 이 새 생명은 말씀을 들을 때 살아 납니다.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 나리라.

이번에 한국 갔더니 이종원 집사님이 자기를 꼭 만나주지 않으면 앞으로 자카르타에 가도 한마음교회에 절대로 안 나가겠다고 막 협박을 하더라고요. 그러실 거 없는데요. 그래서 시간 약속을 하고 갔어요. 신림동에 강강술래라고 한우고기 집인데요. 진짜 맛있더라고요.  아주 환대를 해 주시는 거예요. 한마음교회에서 지냈던 이야기도 해주시고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관해서도 얘기하시는 거예요. 또 자기 차로 우리를 데려다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설교 테이프를 트시는 거예요. 제 설교 테이프를 몇 개 구해서 반년째 다 늘어지도록 듣는다는 거예요. 이게 좋아서 이게 기뻐서 꼭 대접하고 싶었다. 저는 고기도 맛있었지만 그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여러분, 말씀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에요. 성경공부가 아니에요. 그 말씀이 내 삶의 주체예요.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변화시키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자도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 드리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무엇을 감사하겠습니까. 주신 생명 감사하고 이 생명이 새 생명이 되도록 말씀주신 것 그것이 감사의 제목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또 이렇게 한 해가 흘러 추수감사 주일을 맞습니다마는 참으로 우리는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빈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하나님 죽은 자 같은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주신 생명을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게 하옵소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지혜와 생명이 나를 새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