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아름다운 소문[로마인이야기,NoblesseOblige,로마서명확논리적]/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3. 15:51

071111 아름다운 소문 ( 16:17~20)

성경본문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많이들 읽으시기도 하고 또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가 1992년부터 작년 2006년까지 15년 동안 매년 한 권씩 써낸 책입니다. 그가 그것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합니다. 글쓰는 작가로 한 20년 지나다 보니까 이름이 알려지고 여기저기 초청을 받아 다니다가 어느 날 내가 과연 이렇게 살 것인가. 다시 한번 나를 다잡고 내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에 쏟아야 되겠다. 그 삶을 한곳에 집중해서 새로운 것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로마인 이야기>예요. 그가 55세에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69세에 그 일을 마쳤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병원에도 가지 않았대요. 괜히 건강검진 했다가 병 있다고 드러나면 그 일에 차질이 있을까봐 의사를 피해 다녔대요. 기어코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천년 로마의 주인공인 로마 사람들을 더 가깝게 이해하기 위해서 물론 그는 오래 전부터 이태리에 살았습니다마는 로마인의 생활습관과 생활방식 그대로 살았답니다. 로마인을 호흡하고 느낄 수 있도록. 그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독특한 재미를 알게 될 겁니다.

그가 완간하고 나서 기념 인터뷰를 할 때 그것을 다 쓰고나니 이제 비로소 로마를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펴내는 목적은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공생의 세계를 알려 주고 싶었다. 관용의 세계를 알려 주고 싶었다. 특히 그 천년 로마 중에서도 공존이 가능했던 그 시대, 전쟁이 없었던 그 시대를 흔히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얘기하죠. 로마의 평화, 200년 동안의 로마의 평화 그것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 로마의 평화 시대를 가져온 인물이 바로 우리가 씨저 라고 알고 있는 카이사르 아닙니까. 그 팍스 로마나를 연출한 사람이 씨저이다.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이기에 그는 나의 연인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리고 그 씨저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상징적 사건이 뭐였느냐. 로마 성벽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성벽을 무너뜨림으로써 다양한 민족들을 포용하기 시작했다. 개방주의예요. 관용이 있고 화해가 있고 조화가 있다.

그러면서 로마 지도자 계층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냈는데 그게 요즘 많이 회자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라고 하는 말이죠. 귀족들은 이러한 의무가 있다라고 하는 말에서 나온 거지요. 가진 자들의 사회적 도덕적 책임. 카이사르를 위시해서 수많은 로마의 지도자들과 왕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가지고 콜로세움을 비롯한 여러가지 공공 건물을 세웁니다. 모두를 위한 건물을 세워요. 길을 닦아요. 그리고 거기에 자기의 이름을 붙여요. 물론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헌신과는 거리가 있는, 로마 지도자들이 명예욕, 허영심, 그리고 정치적 동기에서 자기의 이름을 남기고자 그런 공공건물을 세운 것이죠. 그러나 국민들은 도덕적이지만 무능한 사람을 원하지 않아요. 흠이 있지만 국민을 잘살게 해줄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을 원해요. 이게 현실이죠. 그러면서 한가지 아쉬움을 얘기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쥬라고 하는 윤리는 정말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더 가치있는 생을 소망하는 자들이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다. 그러나 로마의 지도자들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자기의 명예욕, 허영심 또는 정치적 의도에서 이러한 일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로마시민 모두에게 유익이 되었다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로마를 정복한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거예요. 그게 바로 로마교회 사람들이에요. 로마교회를 위시한 초대교회 교인들이에요. 그 한복판에 사도 바울이 있어요. 오늘 이 글은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아직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가보지 못했어요. 가고 싶은 뜨거운 열망이 있어요. 로마의 지정학적인 위치와 역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곳에도 복음을 증거해야 되겠다고 하는 거죠. 결국 이들이 로마를 정복합니다. 팍스 로마나라고 하는 사회적 정치적 안정이 있지만 그 속을 생명으로 채워 놓은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죠.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가. 그게 바로 로마서죠. 노블레스 오블리쥬가 보다 나은 생을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들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삶을 넘어서서 가치 있는 삶의 내용을 제시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러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음에 한 사람 두 사람 들어와서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죠.

 로마서는 성경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냐 라고 하는 그 물음,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나님으로부터 지어졌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죄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또 하나님을 알지만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삶의 모습을 가지고 몸부림 치는 사람들, 육신적인 존재들. 그러하기에 사회적 요구와 율법과 도덕적인 요구들을 이루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무능한 사람들,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 살았다고 하지만 실상 내면은 죽어있는 사람들. 이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실상이에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게 하시므로 이제 우리로 하여금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셔요. 행위가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는 의인으로 우리를 부르셨어요. 그리고 이제는 성령을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셔요. 이제는 율법에 매어 사는 게 아니라 날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좇아 살아요. 그럴 때 생명이 있어요. 이게 우리의 정체성이에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에요.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분명히 알면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하죠.

그리고 로마서에는 한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하나님이 어떻게 이끌어 가실 것인가 하는 역사가 다 나와 있어요. 나와 내가 존재하는 이 세계의 역사를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죠. 그리고 이 일을 교회에 맡겨 주신 거예요. 그러기에 교회는 소중해요.

 제가 이번에 한국에 나가니 참 소문은 무서워서요. 다 알더라고요. 우리교회 얘기를 다 알더라고요.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예전에 곽선희 목사님이 미국 유학을 가셨을 때 주일 저녁에 어느 집을 찾아가게 되었답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 보니까 아차 그 집의 정확한 주소와 약도를 빠뜨리고 온 거예요. 예전에 한번 가 본적은 있지만 잘 기억을 할 수가 없는데 그걸 빠뜨리고 온 거예요. 동네까지는 온 것 같은데 도저히 그 집을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역시 머리가 좋은 분은 달라요. 창을 다 내렸어요. 창을 다 내리고 천천히 돌기 시작하니까 어디서 된장 냄새가 솔솔 나더래요. 그 집을 찾아 들어 갔더니 영락없이 그 집이었대요. 한국 사람은 어쩔 수 없죠. 된장 냄새, 김치 냄새, 마늘 냄새가 나게 돼있지요. 사람이 모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는 반드시 소문이 나게 돼있어요. 발 없는 소문이 천리를 가는 거예요. 다 알죠. 다행히 우리 교회의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교회에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가 있고 자기 배만 섬기는 자가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배만 섬기는 자, 자기 유익만 추구하는 사람 그게 뭐겠어요? 보통 사람과 리더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먼저 앞세우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리더는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앞세우는 사람입니다. 지위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 사람의 생각이 모두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리더예요. 그러면 왜 자기 배만 채우게 되었을까.  좋은 말씀 듣는 교회에서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이 닫혔을 때예요.

제가 이번에 나가서 오랫동안 미뤄왔던 치질 수술을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에게 면담을 했더니 한번 수술을 하면 3주간은 비행기를 타는 것을 자제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양해를 구해서 최대한 빨리 수술해 주십시오. 그 바람에 좀 늦추어졌습니다. 감사한 것은 여자 의사분이 수술을 하셨어요. 아주 깨끗하게 성형이 된 거죠. 요즘은 전문 병원에서 현대식 의술로 하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마취를 하니까 잘 모르잖아요. 수술 첫날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하루 종일 잤습니다. 그 다음날은 정신이 좀 들었는데 병실이 얼마나 답답한지요. 다행히 이틀 만에 퇴원을 시키더라고요. 이젠 더 있을 필요가 없다. 나가서 집에서 하면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때부터가 문제더라고요. 하루에 한번 화장실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제가 그 시간에 아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전에 그토록 자유롭고 편안하게 화장실을 쓰던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이었는가 하는 것을 온몸으로 절절히 깨달았어요. 죽을 때까지 이 상태로 간다면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런데 많은 선배들의 얘기가 조금만 참으면 아주 깨끗해진다. 미래의 소망을 믿음으로 붙들고 용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짓궂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수술하신 의사 분도 치질 수술을 했을까. 하고 안하고 많이 다르잖아요. 치질 수술을 경험하지 않은 분도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수술 할 수 있고, 또 배우고 들은 대로 며칠이면 어떻게 되고 어떻게 될 겁니다 하고 설명해 줄 수 있고 또 설명한 대로 되겠지요. 그러나 본인이 만약에 그것을 먼저 경험한 사람이라면 환자의 마음까지도 아는 거죠. 뭐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지겠어요. 얼마나 공감하겠어요. 그러니까 일을 하더라도 사무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부딪치죠. 세상 살아가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그저 냉철한 전문가로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그것과 더불어 마음으로 나누고 교감하면서 살아 갈 수 있겠구나. 경험이 중요하죠.

그래서 이 번에는 멀리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서울에 머물면서 여러 사람들도 만나고 성장하는 교회들도 찾아가고 설교도 하고 병원에도 가고 학교에도 가고 극동방송에도 가고, 이야기도 하고 교제도 나누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생각이 닫힌다는 게 별게 아니에요. 혼자 웅크리고 있으면 슬슬 고립되는 거예요. 책을 통해서도 세상을 알아야 되고 교제를 통해서도 세상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새삼 얼마나 이것이 중요한가 하는 것을 이번에 깊이 깨달았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개인과 세계 역사를 다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한 다음에 마지막 로마서 16장을 할애해서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당신들이 알아야 할 수많은 다른 교회 일꾼들을 소개합니다. 그 이름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소개합니다. 문안하라 합니다. 여기 약 30명의 이름이 나와 있어요. 그 외에 수많은 교회와 사람들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일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더불어 같이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온 세상 곳곳에서 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모든 곳에서 함께 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네트워크에서 벗어나면 안돼요. 스스로를 고립시키면 안돼요. 또 하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살펴보고 그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평민도 있지만 귀족도 있어요. 부자들도 있어요. 받은 바 은사와 처지대로 다 힘을 모아서 함께 일해야 되는 거죠.

제가 모처럼 오랜만에 다녀 오니까 교회가 많이 달라졌어요. 특별히 우리 미술반에서 그림 이야기 전시회가 있네요. 주제도 다름, 그 아름다움 바로 그거죠. 저 없이도 여러분이 잘 하시는 걸 보니까 너무 감사해요. 요한 복음 15 15절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라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었음이라. 여러분 종으로 살 것입니까, 친구로 살 것입니까? 종은 부지런히 일하지만 주인의 일을 알지 못해요. 그는 끌려가는 인생이에요. 매여 있는 인생이에요. 그러나 친구는 하나님의 비밀을 깊이 아는 사람이에요. 소통하는 사람이에요. 교제하는 사람이에요. 시대와 소통해야 되요. 시대에 뒤떨어지면 안돼요. 한 발 앞서가는 사람은 평생 앞서가요. 한 발 뒤쳐지면 평생 뒤쳐져요. 현대인과도 소통해야 되요. 여기에 이 미술 전시회의 의미가 있는 거예요. 문화의 필요를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그림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펼쳐 보이는 거죠.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요즘은 하도 스타들을 찾는 시대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이 노래하는 것은 사람들이 보려 하지 않아요. 그러나 여기에는 아주 위험한 것이 있어요. 노래 제일 잘하는 사람만 노래하게 하고 그림 제일 잘 그리는 사람만 그리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에요.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죠. 모든 게 서로 다릅니다만 서로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뤄 아름다움이 되는 교회.

이번에 많은 도전을 받고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마는 어떤 교회가 정말 아름다운 교회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말씀에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교회. 교회가 커지다 보면 조직이 필요하고 행정이 필요해요. 다 필요하게 되요.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그야말로 교인들을 관리하게 되요. 조직관리 하듯이. 그게 아니라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감동이 늘 살아있는 교회. 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감동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교회,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상황을 따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예배하고 섬기고 참여하는 교회. 그게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여러분도 소식은 들으셨겠습니다. 리뽀 까라와치의 로고스 교회의 박근재 목사님, 그분은 선교사로 이곳에 오셔서 11년째 사역을 했는데요. 제가 휴가를 나가고 수술을 받고 하는 동안에 알고 보니 그 분도 나오셨더라고요. 어디 딱히 아파서 나온 것이 아니고요, 일이 있어서 나왔다가 모처럼 건강 검진을 한 번 받아보셨는데, 그만 신장에 물혹이 많이 드러나서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검진 받고 며칠 후에 수술을 하셨어요. 문제는 이 수술이 잘못됐던 것 같아요. 제가 그 다음날 이메일을 통해서 수술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고 수술 후 중환자실에 계신다고 해서 제가 쫓아 갔습니다. 중환자실에 가서 보니까 상황이 안 좋은 것 같더라고요. 말도 할 수 없었고요. 그런데 그 다음날 다시 연락을 받았어요. 재수술 중에 돌아가셨다고. 그분은 올해 이제 마흔 일곱이거든요. 또 샬롬신학교 저와 늘 가까이 했고 교제했고 누구 못지 않게 서로 아는 처지였죠. 깜짝 놀래가지고 병원에 달려 갔습니다. 가보니 사모님 외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럴 밖에 두 분이 일보러 들어가서 건강검진하고 느닷없이 수술하고 그 일을 당했기 때문에. 후원하는 대구에 있는 교회도 그제야 소식을 듣고 올 차비를 하는 중이었고요. 제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마지막으로 시신을 봤습니다. 의문 조차도 나오지 않을 만큼 실감이 나지 않더라고요.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주 생생하게 먹고 마시고 이야기 하던 사람이 이렇게 한 순간에. 손을 만져보고 이마를 만져보니 아주 차갑더라고요.

여러분, 팍스 로마나 가지고는 안됩니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이 부를 존재이기 때문이고 오늘이야말로 새로운 인생의 첫날일 뿐이에요. 내일은 결코 내가 주장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거에요. 모든 사사로운 계획과 욕심을 깨끗하게 내려놓고 주님 앞에 순종하며 교회를 섬겨야 되겠다.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교회를 가꾸어 가야 하겠다. 이것이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사람의 삶일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같이 떠났지만 한 사람은 돌아오고 한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주님이 부르시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 부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임을 절감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계획하고 많은 것을 준비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결정은 주님이 하신다고 하셨사오니 우리로 참으로 겸손하게 하시고 부질없는 욕심에 매여 인생을 낭비하고 허비하지 않게 하시고 하루하루 내게 주시는 말씀과 은혜를 깨끗하게 받고 순종하게 하시고 선한 일에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시고 악한 일에 순진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