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성령의 사람[성령에관한 명품설교,삼위일체,성령 하나님]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0. 10:14

051211 성령의 사람 (2:25~35) 

성경본문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이미 여러분 다 아시겠습니다만, 며칠 전에 2006년 월드컵 조 추첨이 있었는데 이제까지 우리나라가 추첨했던 그 어떤 때보다도 가장 희망적인 그런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합니다. 반면에 일본은 이제까지 얻었던 중에 최악의 상대들을 만나게 됐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호기심이 발동해서 벌써 다 상대가 결정되니까 몇 월 몇 일 시합이다 한 순간에 나와 있는걸 제가 내년도 수첩의 캘린더를 봤어요. 주일이 또 꼈는지, 주일이 끼면 아주 머리가 아픕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중에 하나가 주일이더라고요. 새벽4시 그날 예배시간에 또 많은 분들이 예배에 졸던지 빠지겠구나.

 퍽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한국 축구 대표팀이 두 달 만에 그 모습이 많이 바뀌었어요. 새로 감독이 온지 이제 두 달 조금 지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전에는 아주 절망이었어요. 도대체 2002년도의 그 멋있는 모습은 다 어디 가고 이게 어떻게 된 거냐. 그런데 새로운 감독을 모시고 두 달 만에 아주 일신해서, 그리고 나서 또 이렇게 좋은 희망을 가지게 돼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또 교회와 연결시켜서 생각했어요. 어떤 교회가 멋있는 교회일까? 카리스마틱한 성령의 은사가 충만한 그런 리더가 앞장세우고 나아가면 교회가 부흥하고 막 뜨끈뜨끈 하지요. 그게 우리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 더 생각할게 있어요. 언젠가 차범근, 명선수이자 지금은 감독입니다만, 인터뷰에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월드컵 우승이래요. 참 놀랬어요. 그게 2002년 이후에 있었다면 그저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그게 아니고 훨씬 전이예요. 월드컵에서 단 1승도 못했는데 월드컵 우승이 그의 꿈이에요. , 월드컵에서 우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브라질을 넘어서야 되거든요. 브라질 축구는 얘기가 다른 거예요. 이건 수준이 다른 거예요. 우리가 그같이 강한 감독 밑에서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투지와 체력을 가지고 밀어붙이면 넘어지는 나라들이 많이 있지만 제가 보기엔 브라질은 그렇게 밀어붙여도 안 됩니다. , 개인의 탁월한 기술이 있고 거기에 팀워크가 조화가 되어서 찬란한 조화를 이루면서 실력을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강한 리더가 있고 카리스마가 있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을 찾아가 보면 성령이 주도하시는, 성령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알고 성령을 향하여 마음을 연 그런 교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거예요. 왜 그러냐? 우리 어른들이 옛날 군대생활 하던 얘기를 하시면서 요즘 군대에서 이런 저런 사고가 일어나니까 이렇게 견주어서 얘길 하세요. “요즘 젊은이들이 다 매가리가 없어가지고 옛날 군대같이 빳다를 맞고 해야 정신을 바짝 차리지.” 저는 반대입니다. 세상이 변했어요. 이제는 로봇 전쟁이에요, 로봇전쟁. 직접 나가서 싸우는 전쟁이 아니에요. “돌격 앞으로가 아니에요, 이제는.

몇 년 전에 연평해전이 있지 않았습니까? 북한의 공격이 있었는데 남한 해군들이 맞서 싸워서 격침시켰잖아요? 그때 그 해군 지휘부에 있던 장군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 젊은이들이 다 매가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제는 컴퓨터 전쟁이거든요. 뭐 기관포를 사실 내가 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 안에서 조작을 하면서 쏘는 거거든요. 여기에 북한이 못 당한 것이죠.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단 말이죠. 우리의 그 옛날 사고방식을 젊은이들에게 요구할 때 젊은이들이 답답해서 감당하지 못했던 거예요. 그들에게도 열정이 있고 그들에게도 하고 싶은 열망이 있고, 사랑이 있는 거예요. 그걸 끄집어 내줘야 되는 거예요. 디지털시대가 된 거예요.

이번에 독일에서는 우리나라의 2002년 월드컵의 길거리 응원을 수입해 간다고 합니다. 와서 잘 배워가지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길거리 응원의 핵심이 뭡니까?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모여가지고 순간순간 창의적으로 정말 너무나 멋있게. 저 북한의 아리랑 축제하고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그건 완전히 로봇 같아요.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자유롭게 자기를 다 드러내고 표현하면서도 놀랍게 그 안에 자유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요 너무 강한 리더에 의해 조직화된 교회는 리더가 죽거나 떠나면 교회가 무너져요, 흔들려요. 이제까지 억압되었던 자기들의 여러 가지 욕구들이 한 순간에 돌출이 되어 교회가 터져 나갑니다. 성령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져주셔서 각 사람의 개성이 어우러지고 꽃피고 자라나야 하는 거예요.

그 옛날 고향 교회에서의 중학교 시절이에요. 전도사님이 설교를 하셨어요. 그때 전도사님이 이제 삼십이 갓 넘으신 분인데, 그때 설교의 내용이 성령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어요.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그런 주제로 설교를 했는데 그 후에 장로님이 제동을 거셨어요. “어떻게 성령이 하나님이십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교회는 다녔지만 성경은 읽지 않았고, 교회는 다녔지만 기도하지 않은 거예요. 교회는 다녔지만 정말 마음을 드려서 하나님을 갈망하며 찾지 않았기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죠.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이 있을 지어다.’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아기 예수가 탄생하셔서 8일만에 그들의 율례를 따라 교회에 나옵니다. 할례를 행하러 나오는 거죠. 하나님 앞에 아기를 드리는 것이죠. , 그런데 시므온이라고 하는 사람이 함께 그 자리에 나와서 아기예수를 맞이하고 축복하죠. 그리고 이 아기의 운명에 대하여, 이 아기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그 십자가의 사건을 예언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니 성령이 그와 함께 하신다. 성령이 지시하시더라.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셨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 우리의 느낌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항상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는 올바른 신앙이라 얘기할 수 없습니다.

여기 보니 시므온이라고 하는 사람은 나이가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의 형편을 보면 소망이 없었어요. 로마의 지배에 눌려 있었어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했어요. 절망이에요. 제가 지지난 주에 니아스 섬과 아체를 돌아보면서, 거기 가서 보니까 우리나라의 60년대 초반이나 되려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만큼 모든 상황이 열악합니다. 참 그걸 보면 사람의 마음으로는 별로 소망이 발견되지 않아요. 희망이 안보여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120여 년 전 미국과 캐나다, 호주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그 상황은 그것과는 또 비교가 안 되는 것이죠. 더 열악했던 것이죠. 한번 전염병이 지나가면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던 그런 절망 속에, 그리고 그나마도 일본에게 짓눌려서 나라를 빼앗기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시고 말씀을 전해주셨서요. 그런데 어디를 둘러봐도 소망이 없기에 이제는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열은 거죠.

 왜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가, 아직도 내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먹고 사는 것은 이제 살만해졌어요. 그러나 백 평 아파트에 살아도 심사가 들끓기는 어제나 그제나 똑같습니다. 백 년 전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주택의 구조는 바뀌고 삶은 여러 가지로 달라졌는지 몰라도 근본 그 사람 속에 들어가면 변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미워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는 건 여전하고 자기의 삶을 내다보면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기에 시므온은 그 절망 속에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아니면 아무런 응답이 없고 해답이 없다고 하는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찢으며 간구하게 되요. 바로 그런 자에게 성령이 그 위에 함께 계셨다. 가난한 마음에 성령이 함께 하셨다.

이제 그 시므온에게 성령께서 놀라운 말씀을 주십니다. ‘네가 죽기 전에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근래 나온 책 중에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49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제가 책을 살펴봤습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가족들과 화해하고 친구들과 화해하는 등등 여러 가지 목록이 있어요. 그러나 성경이 말합니다. 당신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만나야 됩니다. 그 사건이 없으면 나그네 인생이 되는 거지요. 그러나 그를 만나면 우리의 나그네 인생 같은 이 삶 속에 우리는 순례자가 되는 거지요. 엄청나게 달라지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냐? 자기의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되요. 신앙의 그 핵심이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야 되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는 사람, 그리고 오늘의 삶 속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며칠 전에 어떤 집사님이 저에게 물었어요. “목사님, 이제 크리스마스도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를 주셨다그렇게 말씀하시고, 또 그렇게 믿는데, 어떻게 그런 예수님이 하나님이실 수가 있습니까? 영 혼돈이 되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질문했어요. 소위 신학적으로 삼위일체 문제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그 신앙고백, 성경에는 그 표현이 없습니다만 신학적 표현으로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같은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그러면 우선 예수님을 말하는 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에는 뭐라고 말합니까? 우선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복음은 그 누구를 얘기합니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를 설명합니다. 예수의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저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고난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그 내용이 조금 더 깊어져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가 누구시냐? 이스라엘 백성이 수천 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메시야, 그분이 바로 예수시다. 같은 예수지만 신앙고백이 점점 깊어지고 있어요. 그럼 이제 유대인이 아니고 헬라 사람들, 이방 사람들, 로마 사람들, 전 세계 사람들을 향해서는 복음이 뭐라고 말하느냐? 누가복음에서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누가복음을 읽고 있어요. 누가복음을 보니 예수는 아기로 태어나셨어요. 그 어린 아기로 태어나셔서 한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실 분, 그런데 그에게는 독특한 면이 있었어요. 뭐냐? 성령이 함께 하셨다. 성령의 감동으로 그 아기가 예비되었고, 성령의 은혜 속에 태어났으며, 성령의 감동으로 인해 성전으로 나아가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광야의 시험을 이기고,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을 완성하셨다. 예수에 대한 영적인 해석이에요.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지나서 이제 요한복음에 들어서면 한 차원 더 깊어집니다. 십자가에 죽으셨던 그 예수, 성령으로 충만하여 한 평생 사셨던 그 예수를 뭐라고 설명하느냐,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셨다. 세상을 창조하신 바로 그 말씀이셨다. 그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 부활하셔서 그 자리로 돌아가셨는데 알고 보니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으며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며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가씨를 만났어요. 불이 번쩍 했어요. 둘이 막 좋아합니다. 불이 붙었어요. 머리에 호르몬이 분비가 되고 머리가 벌게 졌죠? 사진 찍어보면 머리가 벌겋습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그러다 결혼했어요. 그리고 살면서 아이를 낳았어요. 행복하게 살아요. 중년이 되었어요. 이제 그 낳은 아이가 또 자라가지고 또 결혼했어요. 이제 손자 손녀를 보게 됐어요. 여기 손자 손녀 보신 분들 계시죠? 왕년에 부부끼리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만 우리 손자 손녀를 품에 안는 순간 오, 우리의 만남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요, 인도하심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땐 자기가 좋아서 만난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세월을 겪으면서, 생명을 맛보면서 그 신앙고백이 점점 더 깊어지고 더 풍성해지는 거예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데 그 말씀 중에서도 누구를 알게 하시느냐, 예수 그분이 과연 누구신가 하는 것을 누가 알려 주시느냐, 세상의 학자가 알려 주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처음에는 샘 같더니, 시냇물 같더니, 강같이 넓어지고 나중에는 바다같이,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오늘 하루의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음을 고백하며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삼위일체를 이렇게 해석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어떻게 그 한 하나님이시냐, 그 참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예를 들어요. 어떤 사람이 집에서는 아빠요, 직장에 나가면 그 직장의 직원이요, 또 친구들을 만나면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는 게 아니냐. 한 사람이지만 어디에 가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역할이 바뀌지 않느냐. 그것을 신학적으로 양태론 이라고 말해요. 얼마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한 분이시다 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려웠으면 이런 양태론을 갖고 설명했을까. 그러나 여러분 엄밀히 말하면 그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에요. 그래서 이 삼위일체를 가지고 오백 년 동안 성경을 해석하고 신학자들이 논란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어요. 어떻게? 우리가 연구한 결론은 이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항상 함께 계시면서 창조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고 날마다 저들을 새롭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여러분 누구에게 기도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합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의 죄를 용서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놀라운 권세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기도할 때 성령은 뭐 하십니까? 로마서 8 26절에 보면, 성령이 우리가 필요할 때 함께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기도한다. ? 우리가 우리 육신에 매여서 기도하니까 저게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왜 저렇게 기도할까, 왜 깨닫지 못할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의 기도를 도우셔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가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우리가 올바로 받도록 도와주시는 거죠.

 여러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은 다른데 계시지 않아요.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로 그 시간에도 함께 역사하셔서 그 기도가 응답 받게 하십니다.

 오늘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갈 때, 성령의 감동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만납니다. 아기 예수를 만나는 사건은 평생을 기다려 오던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사건이에요. 제가 지난주에 반둥에 가서 이제 인도네시아 선교를 위해서 들어오신 한 여선교사님을 안내해서 자카르타에 왔어요. 차 속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어요. , 그랬더니 이분은 이미 저 아프리카 케냐에서도 사역을 하셨고, 그러다가 말라리아에 걸려가지고 너무 너무 고통 가운데 치료를 받으시다가 다시 이곳으로 오시게 됐죠. 다 여기에 올 때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증거가 있지 않겠어요?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그분이 마지막에 그래요. 저에게 하나님이 놀라운 복을 주셨어요. 가는 곳마다 참 좋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 바람에 제가 그날 참 좋은 사람이 됐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감사한지.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복 중의 복이에요. 그분이 먼저 말했습니다만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정말 고마워하는 것은 가는 곳마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세요. 마치 빌립집사와 저 에디오피아의 장관이었던 내시를 광야 한복판에서 만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 같이 우연인 것 같지만 우연은 없어요. 벌써 성령께서 내 삶 속에 오셔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 앞에 나타나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만남이에요. 뭐 누구 누구를 가릴 것도 없어요. 지금 이 시간, 지금 내게 주신 이 일, 그리고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이 오늘 하나님의 예비하심 속에 만나고 있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성령의 인도를 깨닫고 그 인도를 따르는 사람, 그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에요.

 

기도

하나님, 성탄을 눈앞에 두고 한 해의 삶을 돌아보는 이 시간, 성령의 인도를 의식하며 성령께 온전히 마음을 열고 따르지 못했던 우리의 무지와 불신앙과 불순종을 고백하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아기예수를 기다렸던 시므온 같이 기도하며 준비하는 가운데 만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더 깊어지고 더 새로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신 귀한 삶과 가정과 일터와 건강과 그리고 오늘의 고난과 문제까지 하나님의 은총 속에 있는 놀라운 계획인 것을 알게 하시고 찬송하며 성탄을 맞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