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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난을 넘어 영광으로(사63:6-12, 빌2:5-11)(사순절 설교) / 호현낙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3. 25. 06:49

고난을 넘어 영광으로 사63:6-12, 빌2:5-11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 있는 낡은 교회 마당에 두 손을 활짝 편 예수님의 대리석 석상이 있었습니다.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폭탄이 그 마을 가까이에 떨어져서 그 석상은 그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적군이 물러가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아끼던 그 석상의 조각들을 찾아서 다시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나 베르니니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 석상은 마을 사람들의 삶의 일부였고 그들은 몹시도 그 석상을 아꼈습니다. 다시 붙여 만든 상처투성이의 몸체는 주님의 고난의 흔적이 드러나기에 여전히 아름다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석상의 양 손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손이 없는 그리스도는 더 이상 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다” 누군가가 그렇게 한탄했습니다. “상처투성이 손이라도 괜찮다. 하지만 손이 없어서야 어떻게 주님이라고 하겠는가? 결국 새로 석상을 세우는 도리밖에 없다.” 그때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그 제안이 기꺼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석상의 받침대에 “나에겐 손이 없지만 당신들에게는 손이 있도다.”라고 쓰여 진 놋쇠 판을 붙인 것이었습니다. 수년 후 어떤 사람이 놋 비문을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짧은 시가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내겐 손이 없으나 오늘 내 일을 행할 너희의 손이 있도다. 내겐 발이 없으나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할 너희의 발이 있도다. 내겐 입이 없으나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말해줄 수 있는 너희의 입이 있도다. 내겐 아무런 도움이 없으나 사람들을 하나님 편으로 이끌 수 있도록 돕는 너희의 도움이 있도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은 주님의 손과 발을 대신하여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워 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네 번째 주일을 맞아 “고난을 넘어 영광으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님이 보여주신 고난의 길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전적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한 고난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구약 본문 사53:5-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은 이 같은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몇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먼저 자기를 부인하신 모습입니다. 자기부인은 신앙생활 입문에 첫 관문이요, 주님의 제자가 되어 그 뒤를 따르려는 데 첫 조건이 됩니다. 신약 본문 빌2:6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말씀으로 주님의 철저한 자기 부인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의 고난의 쓴잔을 피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의 길인 것을 아시기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시므로 자기를 부인하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다음에 겸손의 모습입니다. 서신서 본문 빌2:7-8절에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되시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낮아져서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더 이상 낮아지려야 더 낮아질 수 없는 자리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신 것을 비롯하여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오시어 천대와 멸시로 일생을 보내시며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약자를 도우시며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죄인을 용납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희생의 모습입니다. 빌2:8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인류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주님은 요12:24에서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하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은 강도 취급을 당하시고 온갖 수모를 당하시며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마침내 사형 언도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이 보여 주신 고난의 길은 자기 부인으로, 겸손으로, 자신의 희생으로 이루셨습니다.

2.주님을 믿는 자들이 가야할 고난의 길을 상고합시다.

어느 도시에 아름다운 소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비록 동상이었지만 그 소녀 동상의 모습은 아름다운 얼굴과 우아한 자태와 고상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가난한 시골 소녀가 그 동상을 보았습니다. 시골 소녀는 그 동상에게 반한 듯이 한참을 쳐다보다가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세수를 하고 머리 모양을 단정히 했습니다.

다음 날 소녀는 다시 동상 앞에 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그녀의 누더기 옷을 수선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도 소녀는 동상 앞에 서 있었습니다. 소녀의 모습은 매일 단정하고 우아해져 갔으며 더욱 세련되어 갔습니다.

시골 소녀는 동상을 보며 아름다운 모습을 배우고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모습을 보며 배우고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 역시 주님을 본받아 주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도 주님처럼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어느 동물원에서 사슴이 새끼를 낳을 때 무통분만(無痛分娩)을 시켰더니 새끼를 본척만척하며 돌아보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이 없이는 모성에도 발휘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영광은 참된 영광일 수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고난을 맛보지 않고 영광을 얻으려는 것이요 노력의 아픔을 겪지 않고 결실의 기쁨을 맛보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짜를 선호하여 가짜를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가짜 명품, 가짜 학위, 가짜 기름, 가짜 고춧가루, 가짜지폐를 만들어 쉽게 돈을 벌어 마음껏 누려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풍토는 신앙생활에까지 침투되어 아주 쉽게 편안하게 예수를 믿으려는 사람들로 교회는 만원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속했으니까 이제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믿는 일에 힘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는 죄의 회개를 통해 예수로 말미암아 오는 사죄의 은혜를 귀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더욱 뜨겁게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고 헌신과 봉사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랐던 사도 바울은 갈 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으며, 갈 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했고, 고전 9:27에서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했습니다. 이 모습은 모두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본받아 겸손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겸손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겸손해야 주님처럼 어려운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섬길 수 있고, 자기를 들어내지 않고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주님의 인정을 받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을 본받아 희생의 길을 가야 합니다. 교인들 가운데에는 성령 체험을 통하여 방언도 하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지만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자리에선 뒤로 물러나 앉는 자들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져야 할 자리에선 뒤로 물러나 앉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왜 내가 십자가를 또 다시질 것인가 하면서 고난과 희생을 회피하는 성도들 입니다. 고난이 없는 신앙, 십자가를 지지 않는 신앙이란 결국 알맹이 없는 쭉정이 같은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한 신앙을 가지고 십자가 희생의 길을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고난의 길을 넘으면 진정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모든 면에서 높아지고 싶은 마음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에게서도 그러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예수님께 와서 주께서 영광을 얻으실 때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않게 해 달라는 청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높임을 받고 영광에 이르는 길에는 세 가지 면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스스로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눅 14:7-11에서 잔치의 상석에 않았다가 높은 사람이 왔을 때 주인이 이 자리를 내어 주라 해서 그때 말석으로 내려가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하였습니다(마 23:12).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자들은 결국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왕상 1:5-10). 천사가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주변 사람들이 높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 12:21-23에 보면 헤롯이 어느 날 왕 복을 입고 백성들 앞에 섰을 때 백성들이 이는 신의 소리라고 아첨하는 말로 높이니까 정말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교만함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징계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높여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행 14:11-15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면서 기사와 이적이 많이 일어나게 되니 무리들이 자기들이 섬기는 허메와 쑤스 신이 자기들 앞에 나타났다고 신전으로 데려가 그들 앞에 제사 드리려 할 때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으며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행 10:25-26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도 기도하던 중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고 욥바에 기거 중이었던 베드로를 초청하여 집에 왔을 때 발 앞에 엎드려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나도 같은 사람이라고 하며 높임을 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본받는 겸손한 신앙의 사람은 사람들이 아무리 높여도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높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약 본문 사 53:12에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존귀케 해 주시리라는 말씀입니다.

신약 본문 빌2:9-11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 주님은 처음에는 겸손히 비하(卑下)의 신분을 취하셨는데 나중에는 지극히 높여 승귀(昇貴)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수치스러운 자리를 택하셨는데 하나님께 그를 가장 높고 고귀한 자리로 높이셨습니다. 부자의 묘실에 장사 되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게 하시고, 무리들이 보는 앞에 승천하게 하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시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도록 높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살면 주님을 높이신 하나님이 우리도 높이십니다. 잠언에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하였습니다(잠 4:8).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높여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마귀나 스스로 높아지는 것이나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도리어 그것 때문에 헤롯과 같이 망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높이시면 누구도 그를 끌어내릴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랑 받으며, 존귀하게 여김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정리합니다. 사순절 네 번째 주일을 맞아 “고난을 넘어 영광으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고난의 길을 묵상했습니다. 그 길은 자기 부인, 겸손, 희생의 길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 역시 주님이 가신 그 고난의 길을 가야합니다.

◉.고난의 길을 넘으면 진정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아멘.

<2017. 3. 26.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호현낙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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