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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자서전 내고 나니 장기가 빠져나간 듯 허전”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6. 5. 18:59

황석영 “자서전 내고 나니 장기가 빠져나간 듯 허전”

등록 :2018-06-05 12:30수정 :2018-06-05 13:37

 

외교사절 모임 ‘서울문학회’ 강연
“지금 철도원 삼대 이야기 쓰는중”
“한국문학은 독특한 활력 지녀”


소설가 황석영이 4일 저녁 서울 성북구 성북동 주한 스웨덴 대사관저에서 열린 서울문학회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소설가 황석영이 4일 저녁 서울 성북구 성북동 주한 스웨덴 대사관저에서 열린 서울문학회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작년에 두권짜리 자서전 <수인>을 내고 나니 마치 간과 위장이 빠져나간 것처럼 허전하더군요. 1998년 출옥 뒤에 쓴 장편 열편 중 두셋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근년에 쓴 것들은 장인의 완숙함은 있는데 열정이 사라진 것 같아요. 이러면서 ‘존경 받는 원로 작가’로 죽는 건 아닐까 싶은 위기감이 있습니다. 제 나이로 봐서 10년 뒤면 절필하게 될 텐데, 그때까지 근사한 장편 세편 정도 쓰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무튼 내년부터는 이런 자리에 절대 안 나올 생각입니다.”

4일 저녁 서울 성북구 성북동 스웨덴 대사관저. 주한 외교사절이 중심이 된 모임 ‘서울문학회’의 제46회 행사가 열렸다. 이날 주빈으로 참석한 소설가 황석영은 “얼마 전부터 익산에 집필실을 얻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철도원 삼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문학회는 한국 작가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고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 문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자는 취지로 2006년 만들어졌다. 지금은 안 회그룬드 스웨덴 대사가 회장을,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이 당연직 부회장을 맡고 있다. 김사인 원장은 인사말에서 “지금 한반도를 중심으로 거대한 정치적 변화가 진행 중”이라며 “많은 것이 아직은 불확실하지만, 서울문학회에서 북한 작가를 초청하거나 이 모임을 개성 또는 평양에서 열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기대를 표했다.

김사인 원장의 소개에 이어 강단에 선 황석영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시작될 무렵에 출발한 한국 근대문학의 역사를 개관하며 한국 문학의 개성과 특징을 소개했다.

“외국에서 이런 모임에 가면 한국 문학은 어떤 문학이냐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저는 한국 문학이 인접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독특한 자기 세계를 지니고 있다고, 동양 삼국 가운데 가장 힘 있는 문학일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아마도 20세기 초 아일랜드 문학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는 “선전 선동의 정치적 활동에 치우쳤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문학은 당황 속에 자아와 일상을 확인하고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갔다”며 “그런데 외환위기와 구제금융을 거치면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사회 전체가 음울하게 가라앉자 작가들이 다시 방에서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는 젊은 작가들이 현실과 맞서서 또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넘어서려 하고 있고, 그것이 한국 문학에 대단한 활력을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황석영은 또 “2000년대 초부터 한국 문학은 본격적으로 세계와 대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아직은 세계 문학이라는 백화점에 작은 매대 하나를 놓은 정도일 뿐이지만, 세계 문학과 출판계는 한국 문학의 새로움과 독특함에 놀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북한 문학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는 “북한 소설은 수령 찬양과 당 정책 선전을 목적으로 한 것들이 주를 이루지만, 비교적 체제와 무관한 역사 소설 그리고 북한 인민의 일상을 계몽적으로 교양하는 소설도 있다. 특히 역사 소설과 일상을 다룬 소설들은 북한 작가들에게는 숨통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그중에는 매우 뛰어난 문학성을 지닌 작품들도 있다”고 말했다.

황석영의 강연이 끝난 뒤에는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하임 호센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히브리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은 장편 둘과 단편 선집 한권이 전부”라며 “그 책들을 읽은 인상은 한국 문학이 매우 슬프고 비극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역사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데, 내가 한국 문학을 올바르게 이해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황석영은 “한국 문학에는 매우 다양한 세계가 있는데, 대사님은 아무래도 한국 문학의 슬픈 얼굴을 보신 듯하다”며 “한국 문학의 그런 다양한 세계를 충분히 알리려면 역시 유능한 번역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마르코 델라 주한 이탈리아 대사와 번역자인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 김태훈 해외문화홍보원장, 한국에 유학 중인 스웨덴 유학생 등 50명 가까운 청중이 참여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소설가 황석영이 4일 저녁 서울 성북구 성북동 주한 스웨덴 대사관저에서 열린 서울문학회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소설가 황석영이 4일 저녁 서울 성북구 성북동 주한 스웨덴 대사관저에서 열린 서울문학회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47736.html?_fr=mt3#csidx4c05ff6bcac1aa8865fb39885bc3b5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