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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창골산 칼럼 제1520호 /우리는 저 천국을 향해 가는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15. 10:33

창골산 칼럼 제1520호 /우리는 저 천국을 향해 가는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제15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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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온 일백 아흔 세 번째 편지

  우리는 저 천국을 향해 가는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오늘 날 우리는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1980년에 출판된 국어대사전에는 찾아 볼 수도 없는 단어였습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고대 그리스어로 '분산' '이산'을 뜻하는 단어인데 어원적으로 보면 그리스어 전치사 dia(“over,” “~를 넘어”)와 동사 spero(“to sow,” “뿌리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970년대에 출판된 15전집으로 된 방대한 자료를 자랑하는 세계대백과 사전을 보니까 ‘디아스포라’를 이렇게 간단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티나이외의 지방으로 이산한 유태인. 바빌론의 포로가 되었을 당초에 도망하여 이집트에 거주한 자, 또 헬레니즘 시대의 국제통상 때 국외로 나온 자.”

 

    30년 전까지만 해도 ‘디아스포라’란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은 ‘디아스포라’는 단지 유대인 디아스포라만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닌 전 세계 곳곳에 자신의 나라를 떠나 흩어져 사는 자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어 오고 있습니다. 즉 ‘디아스포라’란 특정 인종 집단이 기존에 살던 땅을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으로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컬으면서 그들이 구성하는 전통, 문화 등을 통칭하는 언어로 사용되어져 오고 있습니다.

 

     사실 ‘디아스포라’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성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모압평지에서 모세가 행했던 세 번째 설교 중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고” 에서 디아스포라 단어의 뿌리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네 대적 앞에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한 길로 그들을 치러 나가서는 그들의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고”(신28:25) 이 후 히브리어 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기원전 607년 바벨로니아인들이 이스라엘에서, 그리고 기원 후 70년 로마 제국의 유대 지방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내는 부분에서 디아스포라는 단어가 쓰이면서 이 말이 사실 상 지금의 의미를 얻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영어 대문자 D로 시작하여 “Diaspora”로 표기하는데,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바빌론 유수 (586 B.C.) 이후 팔레스타인 밖에서 흩어져 사는 유대인 거류지” 또는 “팔레스타인사람 또는 근대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 ‘디아스포라’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디아스포라’는 유대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국제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민족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역사 속에서 최초의 ‘디아스포라’는 아담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이 살기에 최적의 곳인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최상의 조건인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허락하셨지만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담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과실을 따먹음으로써 하나님께 범죄하고 맙니다. 그리고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합니다. 이것이 인류에게 있어서 최초의 ‘디아스포라’입니다. 아담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 때문에 처음 주거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3:23)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인간을 위하여 만드셨던 보기에 좋았던 완벽한 곳에서 황량한 사막과 같은 불완전한 이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디아스포라’는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과 함께 자손을 번성케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의 시작입니다. 또 남자에게는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또한 인류 문화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디아스포라’가 된 인류에게 하나님은 아주 소중한 약속을 하여 주셨습니다. 비록 인간을 범죄케 한 뱀에게 말씀하신 것이지만 이것은 모든 피조물에게 주신 거룩하신 약속이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바로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성자를 천상의 자리에서 지상의 자리로 ‘디아스포라’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인류의 역사 속으로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인간과 똑같은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인류의 역사 속에 오셨고 그의 이름은 호적에 등재되었고 모든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며 사고하면서 이 땅의 이민자로서의 삶을 사셨습니다. 또 실제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애굽으로 피난을 가셨습니다. 헤롯왕을 피하여 팔레스타인에서 애굽으로 피난하여 실제로 이민자의 삶도 사신 것입니다. 비록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였을 때이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모든 인간에게 ‘디아스포라’의 종결자로 오셨습니다.

 

    ‘한국인 디아스포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 또는 은자의 왕국으로 불리던 조선의 백성들이 19세기 중엽부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만주와 연해주로 떠나면서 시작한 한민족의 이주와 정착의 역사는 어언 1세기 반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한민족은 미국, 멕시코, 일본, 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스페인, 캐나다, 호주, 인도네시아 등 거의 전 세계로 퍼져나가 초기 정착의 힘든 역경을 딛고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습니다. 자녀의 영어 조기교육을 위해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어머니가 자녀들과 함께 떠나고 아버지는 한국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기러기 가족’은 디아스포라의 새로운 풍속도이며 급기야는 자녀에게 미국 또는 캐나다 시민권을 주기 위해 출산을 앞둔 산모가 출국하는 소위 ‘원정출산’이 매년 5,000∼6,000명꼴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한민족의 이주와 정착은 이미 끝나버린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진행 중인 다이내믹한 과정입니다. 낯설고 물 설은 이국 타향에서 마음의 고향을 찾아 그들이 찾아오는 곳이 교회입니다. 뿌리가 뽑힌 실향민과 같은 처지에서 방황하는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마음의 고향, 소속감을 갖게 해 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온 분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주택과 직업 알선, 통역 등의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척박한 이민 생활 속에서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것을 같이 아파하고 고민하고 또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민교회는 마음의 고향이며 동시에 사회의 손과 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상이한 배경과 동기를 가지고 조국을 떠나 다양한 유형의 정치경제, 사회문화, 민족관계를 가진 거주국에서 살아가는 경험을 ‘디아스포라’라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들을 이제 신령한 의미로 재해석합니다. 즉 우리들은 영원한 본향을 향해 이 땅에서 지금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 천국을 향해 가는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영원한 안식처인 그곳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을 통해 우리의 삶을 ‘나그네의 삶’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고통의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디아스포라’를 해 주셔서 우리는 오늘도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영원히 천상으로 ‘디아스포라’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원히 ‘디아스포라’할 그 나라를 향하여 이 땅에서 땀 흘리면서 수고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김해찬목사

(창골산 칼럼니스트)

호주시드니하나교회

 hanachurchmo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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