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1310

[세상읽기] 걷기, 가장 자연 상태에 가까운 행위 / 이병곤

[세상읽기] 걷기, 가장 자연 상태에 가까운 행위 / 이병곤 등록 :2021-05-05 15:17수정 :2021-05-06 02:39 이병곤ㅣ제천간디학교 교장 걷기로 했다. 작년 10월 일이다. 우리 학교 ‘기후위기비상행동’ 소속 학생 20여명이 교내 포럼을 조직했다. 이 행사의 ‘패널’로 교장을 초대한 셈인데, 발표 전 아이들이 던진 첫 질문은 “앞세대로서 현재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아이들 기세에 기가 팍 눌렸다. 무조건 “잘못했다” 인정하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발표자료 거의 마지막 슬라이드는 창고 속에서 먼지 뽀얗게 뒤집어쓴 내 자전거였다. “이 지도를 보자. 샘 집에서 학교까지는 6.7㎞야. 일주일에 3일 자전거 타기나 걷기로 출퇴근하면 42㎞. 한달이면 내 경차 ..

김세희 작가, 소설로 ‘아우팅’ 피해 주장에 법적 대응 예고

김세희 작가, 소설로 ‘아우팅’ 피해 주장에 법적 대응 예고 등록 :2021-04-26 15:31수정 :2021-04-26 15:39 장편 ‘항구의 사랑’과 단편 ‘대답을 듣고 싶어’ 논란 김세희 작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세희 작가의 소설들 때문에 강제 ‘아우팅’ 피해를 당했다는 네티즌의 주장에 김세희 작가가 사실 무근이라 맞서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네티즌 ㄱ씨는 지난 23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자신이 김세희 작가의 장편소설 에 등장하는 ‘인희’이자 ‘에이치’(H)이며 역시 같은 작가의 단편 ‘대답을 듣고 싶어’에 등장하는 ‘별이’라고 주장했다. 에는 2000년대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칼머리의 퀴어 청소년 인희와 동료 H가 등장하는데, ㄱ씨는 그 모델이 자신이라며 “김세..

씨앗의 힘으로 틔워올린 새싹, 그 생명력의 사치

씨앗의 힘으로 틔워올린 새싹, 그 생명력의 사치 등록 :2021-04-24 09:44수정 :2021-04-24 09:48 [토요판] 이런 홀로 씨앗 출석부와 베란다 농부 봄바람 불자 사온 꽃과 허브 씨앗들 키친타월 깐 쟁반에 밤낮으로 물주며 말랐나, 자랐나 턱 받치고 관찰한 몇주 힘차게 고개 내민 나팔꽃부터 마지막까지 애태운 로즈메리까지 저마다의 속도로 차례차례 핀 새싹들 베란다 화분에 옮겨심으니 ‘쑥쑥’ 여름이면 피어날 꽃을 만나겠지 생각만 해도 만족감이 차오른다 허브 중 가장 먼저 터진 것은 바질. 바질의 떡잎은 성장한 바질 잎처럼 동글동글하고 귀여웠다. 게티이미지뱅크 봄이 오면 늘 박완서 작가가 말했던 ‘꽃 출석부’가 생각난다. 자신은 늘 마당에 100가지도 넘는 꽃이 있다고 으스대지만 기화요초가 ..

내 안의 파시즘 찾기

내 안의 파시즘 찾기 등록 :2021-04-23 05:00수정 :2021-04-23 09:40 파시스트에 철저히 빙의한 작가가 서술한 ‘고백록’ 현실에 빗대어 읽어보면 ‘꿀잼’, 필요한 것은 성찰 파시스트 되는 법: 실용지침서미켈라 무르자 지음, 한재호 옮김/사월의책·1만3000원 나는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민주주의는 쓸모없을 뿐 아니라 해롭다. 솔직히, 일반대중에겐 이런 주장을 할 필요도 없다. 파시즘이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민주주의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늘 이야기하고, 자발적으로 파시즘으로 눈길을 돌린다. 문제는 민주주의에 지친 교양 계층이다. 이들에겐 왜 민주주의가 유해하며 파시즘이 필요한지 가르쳐 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프랑스어에 바짝 붙은 ‘어린왕자’ 번역본

프랑스어에 바짝 붙은 ‘어린왕자’ 번역본 등록 :2021-04-20 18:21수정 :2021-04-20 19:40 고종석 작가, 고수들 각축에 한 권 보태 “이 책에 혹시 오자는 있을지 몰라도 오역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것만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의 한국어 결정판을 자부한다는 번역자의 목소리는 자신감에 넘쳤다. 이미 100여 종이 훌쩍 넘는 한국어판이 나와 있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명저 의 새 번역본을 내놓은 언론인 출신 작가 고종석(사진)의 장담이었다. 도서출판 삼인을 통해 번역본을 낸 그는 20일 낮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 번역이 가장 뛰어난 번역이라는 건 아니지만, 여태까지의 한국어 번역본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는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

걱정 마세요, 무척 예의 바르니까요[토요판] 이충걸의 인터+뷰

걱정 마세요, 무척 예의 바르니까요 등록 :2021-04-17 14:32수정 :2021-04-17 14:40 [토요판] 이충걸의 인터+뷰 셀프인터뷰: 토요판이 묻고 이충걸이 답하다 ‘토요판’ 인터뷰이에서 인터뷰어로 내밀한 인터뷰는 주변부 장르 아닐까 괴로운 시절 하나의 힌트 얻을 수도 인터뷰는 전장에 나가 시합 벌이고 돌아와서 몸에 묻은 피를 닦는 일 정글 탐험의 고단함과 허무함 알아 이제는 호기심 갖고 들여다보고파 사이 뚫고 들어가 시선 드러낼 것 어쩌면 시대를 기록할 수도 있겠죠 “제가 결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쩌면 이 시대의 공기를 기록하고, 이 시절의 한 신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충걸 전 편집장. 강봉형 작가 제공 1990년대, 한국 사회에 ‘문화’라는 것이 폭발했다. 대학교 학생회실에선..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도전보다 어려운 단어, 단념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도전보다 어려운 단어, 단념 등록 :2021-04-14 18:17수정 :2021-04-15 02:34 바로 전 개봉한 영화 에서의 배우 윤여정씨. 그는 당시 시사회에서 “60살이 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작품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영화 스틸컷 김은형ㅣ문화기획에디터 1970년대 초 일본에서 출간돼 스테디셀러가 된 (戒老錄)의 저자 소노 아야코는 잘 나이 드는 비결의 주제어를 몇 가지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단념’이다. 최근 나온 에세이 에서도 그는 단념을 “인생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지혜로운 어른만이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적었다.‘단념’. 품었던 생각을 아주 끊어 버림(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포기와 단념은 비슷하게 쓰이지..

[최재봉의 문학으로] 김수영과 그의 적들

[최재봉의 문학으로] 김수영과 그의 적들 등록 :2021-04-08 17:01수정 :2021-04-09 02:38 생전의 김수영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최재봉ㅣ책지성팀 선임기자 한국문학에서 2021년은 무엇보다 김수영 탄생 100년이 되는 해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27일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6월15일 밤 서울 마포구 구수동 집 앞에서 버스에 치여 이튿날 숨을 거두었다.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그는 식민 지배와 분단, 전쟁, 4·19 혁명과 5·16 쿠데타 같은 현대사의 질곡을 두루 겪었다. 전쟁통에는 인민군에 동원되었다가 체포되어 만 2년이 넘는 포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시대의 격랑과 개인적 시련을 헤치며 그가 남긴 글들은 두 권의 두툼한 전집(시·산문)으로 갈무리되어 있다. 한..

포로수용소의 ‘셰에라자드’

포로수용소의 ‘셰에라자드’ 등록 :2021-04-02 04:59수정 :2021-04-02 10:54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유제프 차프스키 지음, 류재화 옮김/밤의책(2021) 단박에 읽어버릴 만큼 얇은 책의 표지를 보며 여러 단상이 떠올랐다. 라는 제목에서 어떤 존엄을 향한 열망을 읽어냈다. 부제에 눈길이 갔다.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 생뚱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누가 포로수용소에서 프루스트를 강의한단 말인가. 분명히 그 난해하다는 를 주제로 강의했을 텐데, 이게 가능한가 싶었다. 그러다 서문을 채 몇 줄 읽지 않고 책에 매료되고 말았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일군의 폴란드 장교가 1939년 10월부터 1940년 봄까지 스타로벨스크 포로수용소에 갇..

[조은 칼럼] 어떤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조은 칼럼] 어떤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등록 :2021-04-01 14:17수정 :2021-04-02 02:05 가난한 층의 일상어와 중산층이 쓰는 일상어의 발음이나 어의와 어휘가 다르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번은 너무 자주 일자리를 바꾸는 이 집의 장남에게 “성실하게 살라”고 말했는데 “성실한 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기술공고도 나왔는데 성실하다는 단어를 모르다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단어 뜻을 물은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를 보고 나오면서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 칼럼의 제목이다. 언어의 계급성과 위계성이 새로운 문제처럼 다가왔다. 미국 자본으로 미국에서 미국 시민(비록 한인 2세이지만)이 만든 영화임에도 극중 대화에서 영어 비율이 50%가 안 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