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1310

[이충걸의 세시반] 요리를 못하는 남자의 오묘한 생존법

[이충걸의 세시반] 요리를 못하는 남자의 오묘한 생존법 등록 :2020-08-02 18:03수정 :2020-08-03 02:38 스무살 청년이 ‘이충걸의 세시반’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강릉원주대학교 조형예술디자인학과 1학년 이충걸 ㅣ 에세이스트 며칠 전, 친구들과 ‘요즘 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 세가지’를 서로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각각 “네살 된 아이가 건치 대회 나갈 듯 활짝 웃을 때” “월요일마다 카드 회사에서 입금되는 소리가 휴대폰에 연속으로 울릴 때” “자기가 만든 요리가 정석대로라는 걸 손님이 알아주었을 때”라고 답했다. 내 차례가 되자 그들은 나름대로 추측했다. 책을 읽을 때? 글을 쓸 때? 와인 마실 때? 아니. 나의 대답은 “직구 사이트에서 인스턴트커피를 구매할 때”였다. 이것저것 ..

[이충걸의 세시반] 왜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할까

[이충걸의 세시반] 왜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할까 등록 :2020-09-13 17:20수정 :2020-09-14 02:38 스무살 청년이 ‘이충걸의 세시반’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충걸 ㅣ 에세이스트 다들 걱정이 커지다 못해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는 ‘메타 근심’에 사로잡혔다. 이때 나의 불안은 보다 사적인 것이 되었다. 무감동한 것, 신세 지는 것, 거절하는 것,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아예 귀찮아하는 것, 그 대가로 한없이 편협해지는 것. 혼자 있을 땐 부적응 메커니즘이 자꾸 움직여 내 자신에 대해 최악의 비평가가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을 보면 아예 커크 대령처럼 “공포, 공포 그 자체!”라고 읊조리게 된다. 얼마 전, 오래 알던 친구와 처음으로 불편해졌다. 그렇게 잘 꾸미고 문화..

[말글살이] “999 대 1” / 김진해

[말글살이] “999 대 1” / 김진해 등록 :2020-09-13 16:22수정 :2020-09-14 02:39 김진해|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어떤 언어든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게 있다. 프랑스어는 모든 명사에 남성, 여성 중 하나를 꼭 표시해야 한다. ‘사과’는 여성, ‘사과나무’는 남성. ‘포도’는 남성, ‘포도나무’는 여성. 독일어는 남성, 여성, 중성 셋이다. ‘태양’은 여성, ‘달’은 남성, ‘소녀’는 중성! 이곳 사람들은 명사에 성 표시하기를 피할 수 없다. 페루의 어떤 원주민은 과거를 최근 한 달 이내, 50년 이내, 50년 이상 등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눠 쓴다. 셋 중 하나를 반드시 골라 써야 한다.이렇게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요소들은 어릴 때부터 마음의 습관으로 자리 ..

[숨&결] 직면과 존엄 / 김보라

[숨&결] 직면과 존엄 / 김보라 등록 :2020-09-14 18:53수정 :2020-09-15 13:17 김보라 ㅣ 영화감독 한 작가가 자신의 딸에게 편지를 쓴다. 그 딸은 태어나지 않은 상상 속의 딸이다. 책 는 미국 캔자스에서 자란 세라 스마시가 ‘백인 빈곤층’인 자신 가족의 삶을 집대성한 책이다. 책에 나오는 여자들, 즉 작가의 엄마, 외할머니, 증조할머니 등은 모두 십대에 엄마가 되었고 남성의 폭력을 경험했다. 스마시는 이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십대에 아이를 절대 낳지 않기로 했고, 태어나지 않았으나 그 존재를 강하게 느꼈던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은 통계와 숫자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가족의 구체적..

요순정치 복원을 꿈꾼 17세 소년(다산 정약용) / 박석무

제 1129 회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요순정치 복원을 꿈꾼 17세 소년 다산은 어린 시절부터 큰 꿈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나의 큰 꿈(大夢)은 대부분 성호(星湖)선생을 사숙(私淑)하는 가운데 깨달아졌다.”(余之大夢, 多從星湖私淑中, 覺來. : 年譜)라고 말해 요순시대의 복원을 위해 일생동안 학문을 연구했던 성호의 유저를 읽으면서 자신의 큰 꿈이 세워졌노라고 말했습니다. 다산은 16세에 성호의 유저를 읽었노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내 나이 스무 살 때에는 우주간의 모든 일을 다 깨닫고 그 이치를 완전히 정리해내려 했다. 서른, 마흔 살이 되어서도 그런 의지가 쇠약해지지 않았다. 신유옥사(1801)를 당한 뒤에는 백성과 나라에 관계되는 모든 일, 즉 전제(田制)·관제(官制)·군제(軍制)·세제(稅制) 등으로..

코로나19에 비대면 ‘랜선 사주’ 보니…“몇년 후 보세요. 얼마나 맞는지”

코로나19에 비대면 ‘랜선 사주’ 보니…“몇년 후 보세요. 얼마나 맞는지” 등록 :2020-09-12 09:14수정 :2020-09-12 09:46 [토요판] 발랄한 명리학 5. 랜선 사주의 세계 게티이미지뱅크 전국 방방곡곡에 사주 단골집이 있다는 친구가 있다. 일상에 지칠 땐 부산에 가서 밀면, 돼지국밥, 회를 실컷 먹고 근처에 유명하다는 곳에 들러 사주를 보면 1박2일 힐링 패키지로 딱 알맞다는 것이다. 그렇게 친구는 부산, 춘천, 공주, 목포, 전국 팔도에 단골 사주집이 있었다. 몇년 전 제주도에 갔다가 친구처럼 나도 단골집이 생겼다. 머리를 식힐 겸 그저 바다를 보러 간 것인데 역시 사주는 휴가지에서 보는 게 제맛이다. 일상을 내려놓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재충전을 하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지가 ..

[크리틱] 아틀라스의 짐 / 이주은

[크리틱] 아틀라스의 짐 / 이주은 등록 :2020-09-11 17:21수정 :2020-09-12 15:24 리 로리(Lee Lawrie, 1877~1963), (Colossal Atlas), 청동, 뉴욕 록펠러센터. 여럿이 함께 산에 오를 때면 의아한 게 있다. 같은 코스를 걷는데도 배낭의 크기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내 경우엔 갈증을 해소할 이온음료와 당 떨어질 때를 대비한 에너지바, 그리고 얇은 바람막이 옷 정도를 배낭에 넣으면 충분하다. 짐 싸기에 관한 나의 철학은 직장 새내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 행사로 등산을 가는 날이었는데 평소처럼 나는 거의 맨몸으로 집합 장소에 나갔다. 그런데 하필 행사를 준비한 팀에서 내 배낭이 텅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는 여럿이 나눠 먹을 간식과 여분의 생..

[삶의 창] 디지털 시대의 상실과 애도 / 정대건

[삶의 창] 디지털 시대의 상실과 애도 / 정대건 등록 :2020-09-11 17:23수정 :2020-09-12 15:41 정대건 ㅣ 소설가·영화감독 2013년 즈음에 내가 즐겨 하던 란도(rando)라는 앱이 있었다. 원형으로 된 프레임에 사진을 찍으면 그 사진이 세계 어디론가 랜덤으로 전송되고, 한 장을 보내면 세계 어디에선가 사진을 한 장 받을 수 있는 앱이었다. 채팅을 할 수도 없고 사진이 찍힌 지역만 알 수 있는 단순한 기능이 전부였다. 북유럽 끝에서부터 중동, 아프리카, 남미까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지명에서 날아온 이국적인 풍경의 사진들(음식, 동물, 간판의 글씨 등등)을 보면 참 신기하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 어떤 사진을 받게 될지 두근거리고 설렜다. 그렇게 삶의 낙이 ..

[유레카] ‘어우흥’은 없다 / 김창금

[유레카] ‘어우흥’은 없다 / 김창금 등록 :2020-09-08 17:42수정 :2020-09-09 02:09 여자 프로배구의 신조어에 ‘어우흥’이 있다. ‘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의 약자다. 어벤저스에 빗대, ‘흥벤저스’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세계적 선수인 김연경을 비롯해 다수의 국가대표 선수를 보유한 무적의 팀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스포츠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지난주 열린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결승에서 지에스칼텍스가 3-0 완승의 이변을 낳았다. 스포츠의 가변성은 1%의 가능성이라도 도전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드라마라는 말이 나온다.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은데도 부딪치는 것은 ‘야성적 충동’과 같은 스포츠의 원초적 힘을 보여준다. 지에스칼텍스는 당연히 우승할 것이라는 흥국생명의 방..

나에게 친구란...[박완규]

나에게 친구란... 친구란 누구입니까? 또 다른 나입니다. 친구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보지 마세요. 친구는 나의 또 다른 분신이니까요. 그래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잖아요. 거의 틀림이 없어요. 모든 인간관계는 믿음과 의리로써 이뤄져야 하는데 친구지간은 더욱 그래야 해요.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그것은 친구도 아니니까요. 우리가 인생을 살만큼 살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요? 남는 게 거의 없어요. 딱 하나.. 관계만 남아요. 인생을 잘 살았으면 좋은 관계가 많이 남고 인생을 잘 못 살았으면 언짢은 관계만 잔뜩 남아요. 좋은 관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친구가 있어요. 좋은 친구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는 너무나 고마운 존재예요. 내가 기쁠 때 내가 진짜 힘들 때 내가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