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8348

성선설(性善說)의 올바른 해석 [박석무]

제 1198 회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성선설(性善說)의 올바른 해석 다산 학문의 근본은 경학(經學) 연구에 있었습니다. 다산의 500여 권이 넘는 저서의 232권 이상은 경학연구에 관한 저서임을 알게 되면 금방 짐작이 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공부로 밑바탕을 다진 뒤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날 정치의 득실과 치란의 이유를 캐보아야 한다 (「寄二兒」)”라고 말하여 학문은 경학공부부터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산은 경(經)의 뜻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서야 인간의 일이나 국가의 일이 절대로 바르게 갈 수 없다고 확언하고 있습니다. “경전의 뜻이 밝아진 뒤에야 도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 도를 얻은 뒤에야 비로소 마음가짐(心術)이 바르게 되고, 마음가짐이 바..

“십자가로 세워진 교회” 갈 6:14-15

“십자가로 세워진 교회” 갈 6:14-15 6:14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 교회는 세상에서 불러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고, 따를 때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부른 사람들입니다. 2. 물론 부른다고 다 나오지 않습니다. 선뜻 따라 나서기가 어려운 길입니다. 사실 제 정신으로 따라간다면 오히려 미심쩍은 길입니다. 3. 왕궁을 데리고 간다고 해도 의심하고 주저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이건 대놓고 십자가의 길입니다. 죽으러 오라는데 걸음이 떨어집니까? 4. 예수님은 속이지 않습니다. 달콤한 말로 속삭이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이 길은 고난의 길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고난은 반드시 따릅니다. 5. 그러나 ..

고전 2:1-9 “반드시 알아야 할 것”

고전 2:1-9 “반드시 알아야 할 것”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1. 바울은 대체 왜 소아시아를 거쳐 그리스와 로마까지 가게 되었을까요? 왜 예루살렘에서의 성공적인 삶을 뒤로 하고 그 길을 떠났을까요? 2. 예수를 전해야 한다는 일념 때문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예수가 메시아다 그 한가지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받은 때문입니다. 3. 그도 나름대로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유려한 말과 사람의 지혜로 무엇인가를 설득하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4. 그러나 그는 복음이란 사람의 말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5. 바..

기본만 잘해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 [봉민근]

기본만 잘해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 글쓴이/봉민근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때에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자신의 위치와 처지를 바로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하나님의 종이다. 종도 여러 부류가 있다. 신실한 종이 있고 눈 속임으로 하는 척하는 종이 있다. 또한 주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종도 있다. 예전에 한 동안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일을 한 적이 있다. 시켜야 일하는 사람이 있고 시켜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오히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말이 많고 불평도 많은 반면 자신의 일도 제대로 잘 감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늘 게으른 사람들의 표적이 된다. 당신 때문에 우리까지 힘이 들..

말라기 2:10-16 “제물보다 중요한 것”

말라기 2:10-16 “제물보다 중요한 것” 2:13-14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1. 부모자녀 관계이건 부부관계이건 친구관계이건 정직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거짓으로 유지되는 관계란 없습니다. 2. 사실 알고 보면 모든 관계의 기초는 신뢰입니다. 믿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하고 믿을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게 출발점입니다. 3. 신앙은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신앙이란 믿음으로 위를 우러르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대상과의 관계는 믿음으로만 지켜질 뿐입니다. 4. 말라기 선지자가 신랄하게 지적합니다. “유다는 거짓을 행했고 성결을 욕되게 해 이방신의 딸과 결혼했으니 제사가 무슨 소용이..

주님을 예배하는 성경적 이유 [창골산 봉서방 제1326호]

주님을 예배하는 성경적 이유 1. 주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시편 95:7) 2. 주님이 예배를 명령하시기 때문에(시편 148:1~3) 3. 주님이 존귀하시기 때문에 (시편 18:3) 4. 주님의 신실하심 때문에(시편 100:5) 5. 주님의 사랑 때문에(역대하 20:21) 6. 주님의 위대하심 때문에(시편 95:3) 7. 주님의 구원 때문에(시편 27:1) 8. 주님의 전능하신 행사 때문에(시편 145:4,6) 9. 주님의 거룩하심 때문에(시편 99:3,5) 10. 주님의 창조하심 때문에(요한계시록 4:11) 11. 주님의 능력 때문에(요한계시록 11:17) 12. 주님의 기적 때문에(마태복음 9:8)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다양한 예배의 방법 (시편 95:6 ) (역대하 20:18 ) (시편 47:1)..

예배에서의 희생이란? [창골산 봉서방 제1325호]

예배에서의 희생이란? 첫째, 에너지를 지불하는 것이다.(energy) 한 주간 일을 하면서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예배에 나와 휴식을 취하며 편하게 있고 싶어 하기 때문에 예배에 일어서고 앉고 손을 듣고 크게 찬양하는 것에 피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배는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노동의 시간이다.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모두 바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나의 모든 에너지를 예배에 쏟아야 한다. 예배자는 영적 에너지, 정신 에너지, 의비 에너지, 감정 에너지, 물질 에너지를 모두 드리는 예배가 희생이다. 둘째, 준비에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preparation)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정결한 예배이다(시24:3-4). 고백과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

“십자가에서 만나는 것” 요 11:45-53

고난주간 묵상 “십자가로 돌아가다” 2 “십자가에서 만나는 것” 요 11:45-53 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1. 십자가는 절묘한 교차로입니다. 인간의 죄악과 하나님의 용서가 만나는 곳입니다. 함께 하기 어려운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곳입니다. 2. 십자가는 또 한가지가 더 만납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적 소명과 예수님을 죽이려는 종교지도자들의 음험한 계략이 만나는 곳입니다. 3. 분명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있습니다. 사전에 음모를 꾸미고 십자가형을 언도하고 집행한 자들, 그런 무리들이 있습니다. 4.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서 서두에서부터 이 기이한 만..

“십자가를 져야 가는 길” 마 10:34-39

고난주간 묵상 “십자가로 돌아가다” 1 “십자가를 져야 가는 길” 마 10:34-39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1. 예수님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가 들어도 충격적이고 급진적입니다. 결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편하게 들을 수 없는 그런 말씀입니다. 2. 당시 유대 사회가 기대했던 메시아의 메시지와는 상반되는 말씀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마치 단단한 얼음을 깨뜨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3. 그러나 그 말씀들이 세간의 기대와 달랐다고 해서 토라, 구약 성경 전체의 메시지에 반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본질의 확인입니다. 4. ‘고난 받는 메시아’가 그렇습니다. 누구도 이사야 53장의 의미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구약 전체에 스며 있는 메시아 상을 외면했습니..

핑계 대지 말고 전도 해야 한다 [봉민근]

핑계 대지 말고 전도 해야 한다 글쓴이/봉민근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가 분명하신 분이시다. 사랑하기에 심판 할수 없고 공의로우시기에 심판을 건너 뛸수 없어 자신이 인간이 되시어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만 강조 할뿐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무관심 내지는 방치 수준으로 일관 한다. 성도에게는 복음을 전할 책임과 의무를 주셨다. 전하여도 믿지 않는 것은 듣지 않는 자의 책임이요 전하지 않은 피의 값은 전하지 않은 자의 책임이다. 복음전파는 성도에게 주신 책임이요 의무다. 나는 구원 받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달란트 받아서 땅에 뭍어둔 자와 같다. 기도하다가 문듯 그런 생각을 했다. 나가서 전하지 못해도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는 할수 있지 않겠나? 쉬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