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ellent sermon 51

신의 성품 [봉서방]

신의 성품 봉서방* 추천 0 조회 80 21.02.03 02:41 댓글 4 현재페이지 URL복사 https://cafe.daum.net/cgsbong/20g7/62296?svc=cafeapiURL복사 신의 성품 신의 성품에 참예하자(벧후 1:1-11)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

성령에 관한 예화 모음

성령에 관한 예화 모음 성경강해설교+전도교육자료 2015. 2. 12. ▣ 곁에 있는 보혜사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실 때, 그분이 사용하신 말은 성령이 단지 하나의 힘이 되거나 혹은 하나의 비인격적인 영향력이라는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라고 하셨다. 희랍어의 '또 다른'이라는 말은 '동일한 하나'를 의미한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동일한 분이시며 하나의 인격이시다. '보혜사'라는 말은 '곁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파라클레테'라는 희랍어에서 온 것이다. 이 말은 요한일서 2: 1에 나오는 '대언자'로 번역된 말과 똑같은 말이다. 만일 이 말이 인격적인 존..

출애굽기 6:2-13 “왜 말씀만 하시는가”[말의 힘][언어의 창조적 능력]

출애굽기 6:2-13 “왜 말씀만 하시는가” 6: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1. 모세와 바로의 일차 접전은 모세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실의에 빠졌고 백성들은 바로보다 이들을 더 탓하기에 이릅니다. 2.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을 더 무겁게 했고 이들의 하소연에 채찍을 들었을 뿐입니다. 결국 모든 원망은 모세와 아론을 향합니다. 3. 모세도 내심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제가 원래 입이 둔해서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불만 또한 전형적인 불신앙과 같습니다. 4. 모세의 볼멘 소리를 들은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계속해서 이름을 들려주십니다. “나는 여호와다.”..

출애굽기 3:13-22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애굽기 3:13-22 “스스로 있는 자니라”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 도대체 어떤 종교가 신의 이름을 묻도록 허락하며 이름을 묻는다고 직접 가르쳐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2. 모세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설 수가 있단 말인가? 생각이 복잡합니다. 3. 조상들의 하나님이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셨다고 하자. 그 때 그들이 보내신 분 이름을 물으면 뭐라고 답하지? 모세가 이름을 묻습니다. 4. 마치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명함을 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하나님이 명함을..

출애굽기 1:1-14 “불안한 권력의 논리”[고난이 선물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시간은 늘 고통입니다.]

출애굽기 1:1-14 “불안한 권력의 논리” 1:8-9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 탈출 기록입니다. 창세기 끝은 요셉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한 시대의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입니다. 2. 애굽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왕좌에 오릅니다. 사가들은 셈 계통의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등극한 18왕조의 왕으로 추정합니다. 3. 새 왕조의 세 번째 왕 투트모스 1세는 전 왕조의 셈계 혈통 흔적을 지우고자 했고, 야곱 자손의 생존을 위한 노력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4. 권력의 교체기는 항상 긴장이 고조됩니다. 새 왕은 이스라엘 자손을 희생양으로 택합니다. 억지논리를 만들어..

마태복음 28:1-20 “아직도 의심하는 자”

마태복음 28:1-20 “아직도 의심하는 자” 28:16-17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 같이 시작했다고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끝까지 남는 것도 아닙니다. 열두 제자로 시작했지만 유다의 죽음으로 열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2. 예수님은 부활의 첫 증인들을 보내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제자들을 다시 믿음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3. 낙심하고 절망한 제자들입니다. 심한 자책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입니다. 믿음과 인생이 무너진 상태입니다. 4. 갈릴리 산에 모인 제자들은 아마 누구도 얼굴을 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산은 예수님으로부터 첫 설교를 들었던 자리였을 것입니..

마태복음 27:57-66 “드러나지 않은 제자”

마태복음 27:57-66 “드러나지 않은 제자” 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자 그 곁에 머물러 슬퍼하고 애통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이 아니라 연약한 여인들입니다. 2. 예수님이 숨을 거두자 그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사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던 제자들이 아니라 뜻밖에 한 공회원입니다. 3. 과연 누가 진정한 제자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다 위기의 순간에 배신하거나 달아난 열두 제자입니까? 아니면 여인들과 부자 요셉입니까? 4.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공회원에 부자입니다. 또한 누가는 그를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5. 특히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결..

마태복음 27:45-56 “예수님이 울부짖다”

마태복음 27:45-56 “예수님이 울부짖다” 27:46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1.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기막힌 기도입니다. 2. 우리는 근거가 있는 비난이라 할지라도 자신에 대한 비난은 단 한마디도 못 참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한 죽음 앞에서 기도합니다. 3. 그 와중에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했고, 십자가의 한 강도의 구원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셨습니다. 목마르다고 고통을 표했습니다. 4. 또 한마디가 부르짖음입니다. 울부짖음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

마태복음 27:27-44 “자기를 구원해보라”

마태복음 27:27-44 “자기를 구원해보라” 27:40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1. 우리는 무능한 자를 기대하거나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들어줄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한 존재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2. 그래서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인간을 메시아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보다 상식에 반하는 믿음도 없습니다. 3. 그러나 우리는 자녀의 죽음을 대신한 부모를 몰상식하다고 비웃거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불길 속에 뛰어든 소방관을 조롱하지 않습니다. 4. 죽음의 이유를 알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왜 불길을 보고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그 불길 속에 뛰어들었는지 알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5. 예수님은 운..

마태복음 17:1-13 “해같이 빛나는 얼굴” [조정민 목사]

마태복음 17:1-13 “해같이 빛나는 얼굴” 17:1-2 (예수께서 제자들 셋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1. 신앙 생활에 신비적인 체험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믿음의 다음 단계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금물입니다. 이단의 길입니다. 2. 그렇다면 신비한 체험은 무슨 까닭일까요? 원한다고 다 그런 체험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미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3.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메시아 되심을 밝히셨습니다. 비로소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길을 가르치고 준비하게 하십니다. 4. 누구든지 십자가를 지고 좇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두려움 없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갈 수 있습니까? 오..